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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그리드 카벤
신을 위해 노래했던 냉정한 여자
누구나 제 이름을 갖고 태어난다. 독일의 샹송 가수이자 배우였던 잉그리드 카벤도 자기 이름을 가진 자신의 운명을 안고 살았던 여자다. 여가수는 뭔가 특별하다. 여배우는 어디에서건 빛난다. 그리고 제 스스로 전설이 된다. 소녀들은 “잉그리드는 여가수들의 포르셰예요!”라고 남자들은 “보통 여자와는 달라”라고 입을 모은다.
그녀의 삶을 옮긴 소설 「잉그리드 카벤」 작가 장-자크 쉴은 현재 그녀와 함께 살고 있다. 그는 가장 가까이에서 그녀의 육성을 그대로 옮기고 있다는 느낌을 거리낌없이 드러내고 있다. 지겨울 정도로 빈번하게 보이는 말줄임표, 이어질 듯 끊어지고 불쑥불쑥 끼어 드는 그녀의 목소리, 과거와 현재 시제의 혼재는 우리가 전기적 소설에서 기대하는 흔한 즐거움을 거둬들인다. 남들이 겪어보지 못한 고난과 절망, 그리고 사랑의 실패가 있었지만 결국 이겨내어 스타가 되었노라고. 혹은 우리가 스타라 우러러볼 수 있게끔 해주는 적당한 감상과 동경을 자아내게 하는 소설이 아니다. 샤를이라는 유태인으로 분해 잉그리드 카벤의 생을 파고드는 작가는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과 드라마틱한 사랑을 달콤하게 길어올리지 않는다. 대스타였지만 자아도취란 눈꼽만큼도 찾아 볼 수 없었던 잉그리드 카벤의 삶처럼.

소설은 4살 반의 꼬마 잉그리드 카벤이 크리스마스 병영에서 첫 번 째 콘서트를 가지는 것으로 시작한다. 히틀러의 초상화가 걸려진 병영에서 노래를 했던 그녀가 50년이 지난 후 예루살렘, 유대인들의 땅에서 다시 노래한다. 독일인 장교의 딸이었던 그녀가 마치 화해와 속죄를 위해 무대에 섰다는 도식을 생각하기 쉽지만 그녀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 그녀에게는 성스러운 장소에서 노래한다는 것때문에 긴장될 뿐이었다. 잉그리드가 부르는 노래는 신에게 봉헌하고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음악이지 그밖에 어떤 의미도 끼여들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난 신을 위해 노래했어요. 저녁마다 그리고 일요일마다 신을 위해 혹은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그런데 커리어라고요?! 스타라고요?” 끔찍한 병과 치유할 수 없는 상처와 환상적인 목소리로 야수이면서 신성함을 지닌 그녀는 이미 스타였다!……(P.42)

그녀는 어렸을 때 나병과도 같은 심한 알레르기성 피부병을 앓았으며 그것 때문에 시력마저 잃을 뻔했다. 그녀가 일찌 감히 자신의 작은 육체로 감당했던 고통은 후에 그녀가 스타가 되어서는 운으로 작용한다. 오히려 어렸을 때 깨달은 고통의 정체, 혹은 그녀가 껴입었던 고독은 무대와의 거리두기에 도움이 된다. 그녀는 무대에서 오히려 냉정해진다. 이건 노래 더 너머의 것은 보지 않는다는 뜻을 담고 있기도 하다. 붉은 융단이 무슨 필요가 있냐는 투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에 목매지 않는 옛스타의 의식은 존경할만하다.

움푹 들어간 듯 화장한 큰 눈, 여자치고는 너무 잘생긴 코, 시대의 유행이었을 얇은 입술과 가늘고 정확한 눈썹. 그녀의 스틸 사진은 마를렌 디트리히가 풍기던 남성적인 면모가 강렬하게 뿜어져 나온다. 당시 여자 스타들은 굳이 자신이 여자라는 냄새를 풍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사실 진짜 여왕이라면 굳이 여자의 향을 피울 필요가 없다. 그녀는 마리아 라이너 파스빈더 감독과 결혼해 그의 영화 10여 편에 출연한 파스빈더 감독의 페르소나이기도 했다. “신 앞에서 당신은 항상 나의 부인이오”라고 했던 그는 잉그리드 카벤의 생애를 그린 영화의 시놉시스를 남긴 채 죽는다. 세기적인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의 총애를 받으며 드레스를 디자인 받았던 적도 있다. 동성애자였던 파스빈더에게, 섬세하고 신경질적이었던 디자이너 이브에게 그녀는 분명 여왕이었다.

스타들에게 숙명처럼 따라다니는 막연한 불안과 공포를 잉그리드 카벤은 이겨내었다. 아니 처음부터 그녀에게 그런 것은 없었다. 그녀 스스로가 스타라는 타이틀로부터 결코 도망치지 않았다. 자신의 욕망과 타인의 욕망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가 없었던 스타 잉그리드 카벤. 그녀와는 다르게 때로 우리를 사로잡는 그 무엇으로부터 자신이 먼저 멀어지기도 하는 지금의 스타들에게 신화는 이제 없다. 전설은 이제 더 이상 생기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런 시대는 가버린 것이다. 방사선과 화학 약품을 견디지 못하고 작은 숱만 남긴 머리카락과 158cm라는 작은 키로 노래하는 그녀는 한번도 자신의 숙명을 따돌린 적이 없었다. 그녀는 타고난 스타이자 전설이었던 것이다. (김은선 kong@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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