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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만난 시와 시인 |  | |
| 그곳에 시인이 살고 있다
시인을 찾아가는 가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똑 같이 고속도로를 달려도 시인의 고장을 찾아가는 마음은 분명히 다른 서정일 것이다. 시인 이문재의 족적을 따라 20명의 시인을 만나면서 그 만남 자체보다는 만나러 가는 길 위에 깔린 정서와 설렘이 좋았다. 이름만 들어도 금방 그 시인의 무슨 무슨 시의 어떤 구절이 떠오르는 시인도 있었고, 아무리 머리를 굴리며 기억을 떠올려도 도대체가 낯선 이름의 시인도 있었다. 그래서 좋았다. 익숙한 시인은 근황을 알게 되어 반가웠고, 낯선 시인은 새로 알게 되어 기뻤다.
20명의 시인들을 만난 순서나 방법에 어떤 규칙성이 있지는 않았다. 다만, 1990년부터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천천히 이루어진 만남(문학계간지의 인터뷰기사였던 만남들을 묶은 것이기에)이기에 읽으면서도 일부러 천천히 읽게 된다. 시인을 만나고 그 시인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순간에마저 속도전을 펼치고 싶지는 않았기에.....
이 책에서 시인 이문재는 자신의 일방적인 감상을 전달하는 대신 인터뷰 형식으로 꾸밈없는 시인들의 모습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가 하면, 시인이 살고 있는 곳, 시인의 발걸음이 닿는 곳을 따라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시인의 모습을 그리게 해주기도 하고......시인이 만나는 사람들을 같이 만나면서 만남의 폭도 넓혀준다. 거기다가 육필로 적힌 시 한편을 권두시로 글의 초입에 올려놓은 것은 가장 압축된 형태로 시인을 느끼해 해 준 기막힌 장치였다. 혹여, 이 책이 언젠가 나의 책꽂이에서 없어질 지도 모르지만 시인의 자필로 씌어진 이 시들은 복사라도 해서 보관해두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청도-도청-광주사태, 또는 청도-청나라-하늘색 등으로 번지는 언어의 누적, 몸이 겹으로 이루어져 있듯이 언어 역시 겹의 성층임을 말해주는 중년의 이성복 시인을 만나기 위한 대구행으로 시인 이문재의 여행은 시작된다. 이성복 시인의 <남해금산>을 두고두고 외웠던 나로서는 반가움과 떨림으로 독서의 여행도 시작되었다. 사랑의 눈으로 안 보이는 것은 없다, 라고 하는 이성복 시인의 말을 읽었을 땐, 사랑의 부피는 자꾸만 커져가고 부풀려지는데, 그 밀도는 자꾸만 낮아지는 것 같은 요즘의 세상에, 따끔하게 허를 찌르는 말처럼 들렸다.
데뷔30년 만에 첫 시선집을 낸 천양희 시인의 삶의 이면을 읽을 때면, 치열한 삶이 키워낸 시가 어떤 것이며, 시를 키워낸 삶이 또 무엇인지 잠시 그 앞에서 머뭇거리게 되기도 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듯이 벅찬 시를 읽을 때면 시인의 삶이 얼마나 강팍한지 짐작하겠으나, 잔잔한 시를 읽을 때 그런 시인의 마음을 읽기란 쉽지가 않은 법! 하지만, 나는 천양희 시인을 찾은 이문재의 글을 읽으면서 웃음의 이면, 울음의 이면에 얼마나 치열한 삶이 있는지, 삶을 들여다보는 시선을 다시 한 번 정비해 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이 책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이문재가 만난 20명의 시인의 시집도 한 권쯤 필요하겠지만, 그것보다는 우리나라 지도 한 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시인을 찾아 나선 산문집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여행이기며 기행문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우리나라의 곳곳을 헤집는다.
굳이 어느 지방도를 타고 외곽으로 시골로 가지 않아도 서울도 같은 서울이 아니었다. 시인을 만나는 장소로서의 서울은 수직으로 쌓아올린 마천루의 도시가 아니라, 마음과 눈을 수평으로 펼치는 평등한 언어의 도시였고, 낯선 어느 장소도 시인이 살고 있기에 그저 낯선 곳으로서의 장소가 아닌 시정이 흐르는 시의 우듬지로 다가온다. 대구-광주-서울-프랑크푸르트-보은-청주-부산-강화도-양평-청도-명지로 20명의 시인을 찾아 나선 길은 그렇게 시와 삶이 흐르는 길이었다.
시인의 저마다 시인이다. 나름대로 시의 헌법을 보유하고 있는 공화국들!
시인이기 이전에 사람은 저마다 사람이다. 나름대로 삶의 헌법을 보유하고 있는 공화국들!
이 공화국의 사람살이들을 보면서, 그 안에 있는 고통의 흔적들을 보면서, 내 삶이 나에게 주는 상처에 딱 맞는 진통제 한 방 맞은 것 같다. 나만 아픈 게 아니라는 안도의 진통제!
시인의 공화국으로 여행을 떠나보고 싶은 사람, 지금 자신의 삶이 너무나 아픈데 진통제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by 리브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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