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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사, 날다 |  | |
| 여자이거나, 혹은 남자이거나
“만약 네가 천사라면, 너에게 성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면……?”(P.114). 그래서 천사일까? 폴 혹은 드니즈. 그 혹은 그녀는 천사가 아니다. 아니 양성인간이었기에 천사를 꿈꿀 수 있었다고 해두자. 명백한 인간에게 나타난 두 가지 성징은 운이 나빴다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혹독한 시련이었고 잘못이 있었다고 하기에 그의 몸은 결백했다. 「천사, 날다」는 양성인간으로 태어나 40년을 여자로 살다가 드디어 남자로 태어난 인간의 삶을 담고 있다.
드니즈라 불리는 소녀는 자신과 철봉놀이 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빠와 피아노 치는 모습을 보길 좋아하는 엄마 사이에서 언제나 아빠의 맘에 들고자했다. 어릴 때부터 자신을 작은 틈을 가진 남자라고 생각해온 드니즈는 진정한 소년이 되기 위해 여자로 ‘흉내내기’ 하면서 학교를 다닌다. 호르몬 주사를 맞고 치마를 입지만 목소리는 변성기를 지나 굵고 낮은 음성으로 변하고 조금씩 가슴이 불룩해지기 시작한다. 드니즈는 열 두 살 나던 해 스스로 성을 선택하면서 남자로 살 것을 결심하지만 신분증엔 ‘남성적 성징의 부차적 발현 증상’이 지울 수 없는 자국이 되어 남아 있다. 이렇듯 복잡하고 상반된 세계에서 살아온 내면의 고백이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지리멸렬하게 이어진다. 과연 인생이라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남성이냐, 여성이냐에 병적인 집착을 보이는 이야기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지치게 만들 수도 있으리라.
저자 노엘 샤틀레는 육체에 근거한 글을 꾸준히 써왔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뭐 대단히 에로틱하고 오감을 총동원한 글을 써왔다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몸과 정신, 그것의 합일을 이루지 못해 정체성에 혼란을 가져오는 인물들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국내에 소개된 「성형수술 세계로의 여행, 맞춤육체」는 성형수술 전후의 인물을 인터뷰해 그들의 수술장면은 물론 감추어진 심리를 기술한다. 이번 소설에서 그녀가 내세운 주인공 드니즈 혹은 폴의 인생은 그녀의 집요한 시선이 있었기에 그려질 수 있었다. 「천사, 날다」는 마치 그녀의 전작처럼 양성인간과의 인터뷰를 통해 추출해낸 결과물인 것 같다. 혹은 그녀가 양성인간의 정신과의거나 심리삼담가가 아니었을까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소설도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짐작하기 어려운 이방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양성인간을 위한 소설같이 느껴진다.
진부한 주제가 된 것일지도 모르는 양성으로 태어난 존재들의 삶은 이제 의학의 영역이고 생물학의 몫이다. 소설은 주인공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다는 일반론으로 주제를 이끌어내지만 이것은 사회에서 소외된 모든 이들에게도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자신의 비밀을 고백하는 주인공에게 친구가 되자고 손을 내미는 거리의 건달들을 만나는 순간 주인공은 스스로를 괴물이 아니라 ‘귀한 장신구, 보석’같이 느낀다.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간 동성애자의 마을에서 친해지게 된 어린 불량배들은 주인공을 통해 감화된다.
“내 말과 행동에서 나오는 빛으로 사람들이 몰려든다. 나의 빛으로 사람들이 다가온다. 나는 불행한 사람들, 소외계층, 길을 잃고 방황하는 낙오자나 무능력한 사람들, 영혼의 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런데 그건 우선 내 모습이 아닌가? 특히 내 모습이지 않은가?”(P.150)
결국 가슴절제술을 받고 혼란의 터널을 빠져 나오는 구도이지만 주인공은 남자인 폴이 되는데 온 생에 걸쳐 투쟁한 것이 아니었다. 어떤 식으로든 드니즈를 부정할 수는 없었기에 그녀에게 상처나 고통을 주길 원하지는 않았다. “남자든 여자든 둘 다든 그런 건 중요치 않아! 너는 한 존재야!”(P.101) 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자신의 존재를 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없었던 그는 드니즈와 폴의 조화로운 공존을 간절하게 바래왔다. 폴과 드니즈를 한몸에 안고 살기 시작했을 때, 아직 자신의 몸이 가장 큰 적이 아니었을 때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를 치는 행복은 이제야 찾아온다. 드니즈와 폴이 다투지 않고 한 몸에, 한 정신으로 자리하는 아름다운 조화는 서서히 그를 울린다. 천사는 드디어 날개짓을 시작한 것이다. (김은선 kong@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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