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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모 파버 |  | |
| ‘기계인간’,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 되다
쓰여져 있는 것 이상의 감정적 공감을 거부하는 것만 같은 냉엄한 단문, 일말의 혼돈도 용납하지 않는 이성적 절제, 그리고 집요한 수학적 추론. 그 차갑고 건조한 문장들은 무료함을 강요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 무료함은 마치 불시착한 황야에서 시간을 모래로 만들지 않기 위해 하염없이 체스판을 바라보는 주인공으로부터 감염된 것인지도 모른다. 바람 드문 사막을 오래 돌아다니고 난 후 문득 온몸에 스적대는 모래알들을 깨닫고는 질겁하게 되는, 그런 섬뜩함. 그러니까 그건 단순한 권태가 아니라, 권태를 가장한 집요한 자기보호본능 같은 것이다. 막스 프리쉬의 「호모 파버」를 읽다가 맨 처음 느낀 감정은 그렇듯 오묘한 무료함과 질척거림이었다.
‘호모 파버’는 라틴어로 ‘기계 인간’을 의미한다. 흔히 ‘도구적 인간’이라고도 번역되는데, 그때의 인간은 쉬운 말로 감정이 거세된 인간, 비이성적인 정념에 휩쓸리지 않는 인간을 의미한다. 그건 인간이 이룩한 과학적인 성과에 일말의 의심도 갖지 않는다. 시간마저 이성의 제어와 관측으로 완전히 계산되고 통제될 수 있다고 믿는「호모 파버」의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타마울리파스에 비상착륙하지만 않았어도 모든 게 달라졌을 것이다. … (중략) … 모든 일이 그렇게 된 것은 단 하나의 우연이라기보다는 일련의 우연의 산물이다. 헌데 숙명이 뭐란 말인가? 비개연성을 경험 가능한 사실로 인정하기 위해 신비주의 같은 건 필요 없다. 나에게는 수학이면 족하다.”(P.37)
2차 세계대전 직전 주인공 발터 파버는 20년 후, 기술자 자격으로 개발도상국가 원조 프로그램을 수행하느라 많은 곳을 여행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비행기 옆좌석에 앉은 독일 출신의 남자를 통해 예전의 친구 요아힘의 소식을 듣게 된다. 그러면서 줄곧 앞만 보고 나아가던 파버의 삶이 슬그머니 시간의 곡률을 거스르며 요동치기 시작한다. 요아힘은 예전 파버가 사랑했던 여인 한나와 결혼했던 친구였다. 물샐 틈 없이 계산된 현재의 시간에 끼어든 과거. 그렇게 해서 ‘기계 인간’의 기억기계에 최초의 오작동이 발견된다.
황야에 불시착한 비행기. 이때부터 파버는 연이은 불시착과 우연, 충동적인 동기들에 휩싸이기 시작한다. 업무를 무시한 채 요아힘을 만나기 위해 독일 사내의 과테말라행에 동행한 파버는 기억의 오지 속으로 느릿느릿 빨려 들어간다. 그러면서 지나치게 되는 멕시코 고대문명의 유적이나 원주민들의 생활방식 등은 파버의 눈에 전혀 무의미하고 부질없어 보이기만 할뿐이다. 그런데 막스 프뤼시는 시간을 거스르면서, 시간 속에 새겨진 개인의 흔적이나 상처, 감추려했던 정념들을 전인류적인 시각으로 통찰해 보여주려고 한 듯하다. 고대 문명의 장엄한 유적들과 대비되는 파버의 추론과 상념들은 이 작품이 내장한 만만치 않은 지적편력과 거시적인 안목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건 역사의 유적 속에 드러나는 삶과 정념의 미궁이라 부를 만하다.
과테말라에서 파버가 볼 수 있는 건 살아있는 친구 요아힘이 아니라, 얼마 전 자살한 시체 요아힘이다. 그건 현재를 미래의 추진기로만 여기는 파버에게 부패한 시간의 흔적을 물질로써 경험케 하는 최초의 징후로 보인다. 이후 파버의 삶은 끊임없이 과거로 소환되어 현재의 질서를 파괴당한다. 파리로 가는 유람선에서 만난 젊은 여인 자베트는 그런 시간적 역류의 극점이다. 파버는 자네트를 통해 자신의 과거, 잘못 예측된 시간과 수학적 개념이 좌초됨을 느낀다. 자베트는 다름 아닌 파버가 잘못계산한 시간의 후손, 즉 한나가 요아힘과 결혼하기 직전 낳은 자신의 딸이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돌연 고대 그리스 비극을 재현하는 형태로 변한다. 우연한 사고로 자베트가 죽고, 소용돌이처럼 이어지는 우연의 연쇄는 현대문명 속의 ‘기계 인간’을 인간의 혼돈스런 정념들을 전형화했던 문명 속의 신화지대로 이끌고 가는 것이다.
마침내 비극신화의 주인공이 된 수학의 사도 ‘호모 파버’. 실제로 건축학도이자 20세기 문명 건설의 첨병으로 일했던 막스 프뤼시는 이 작품에서 현대가 내재한 인간의 문제를 첨예한 수학적 언술방식을 통해 표현한다. 땀과 수염으로 대변될 만한 삶의 불가항력과 근원적 감수성이 수학적 통계치로 적정하게 적분된 듯한 언어 위에 잔잔히 떠오르는데, 그건 꼭 현대라는 표면 아래 깊숙이 감춰진 인류 역사의 영원한 미궁이 솟아오르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여하간 ‘기계 인간’의 최후는 누천년간 내려온 인류의 데스마스크를 새롭게 떠내면서 도래할 인간종족의 미래에 경종을 울린다. 인간은 여전한 미지수일까. (강정 igguas@libro.co.kr/리브로)
by 리브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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