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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학사
이 소설이 모범이다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1547∼1616). 영국이 윌리엄 셰익스피어를 칭송하듯이 「돈 키호테」를 쓴 세르반테스는 스페인이 낳은 최대의 작가로 알려져 있다. 기사도 소설에 빠진 나머지 정신 이상이 생겨 스스로를 기사라 칭하고 산초 빤사를 종으로 데리고 길을 나서는 시골 귀족 돈 키호테. 1605년 이 소설이 처음 나왔을 때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에서는 흥미진진하고 유머러스한 편력기로 읽었지만 훗날 「돈 키호테」의 숨겨진 가치가 속속 발견되면서 근대 소설의 시금석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렇지만 셰익스피어가 「로미오와 줄리엣」 만을 쓴 것이 아닌 것처럼 세르반테스의 업적도 이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세르반테스가 남긴 「모범 소설집」 또한 근대 소설의 발전에 공헌한 바가 크다.
1614년, 「돈 키호테」를 쓰는 중에 발표한 「모범 소설집」은 12편의 단편들을 모은 소설로 두터운 「돈 키호테」를 읽기 전에 워밍업으로 적절하다(굳이 「돈 키호테」가 아니더라도 문학의 고전이라 불리는 소설을 읽기 전에 잡으면 에피타이저의 효과를 톡톡히 맛볼 수 있다). 모범 소설이라, 과연 어떤 의미이길래 모범일까. 세르반테스는 이 소설집의 서문에서 스스로를 소설을 쓴 최초의 스페인 작가로 자처하고 있다. 역시 계급의식과 영웅주의에 물든 옛사람의 잘난 척은 못말리겠군, 하며 투덜대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소설집은 내용과 소재가 모두에게 귀감된다는 그 ‘모범’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이라는 형식의 근본이 여기서 비롯된다는 그의 자부심이 ‘모범’으로 강조된 것에 가깝다. 실제로 스페인을 비롯한 여러 유럽에 걸쳐 많은 작가들에게 사랑 받으며 영감을 일으켰으며 대문호 괴테는 이 소설집을 두고 ‘즐거움의 보고’라고 칭찬했다.

「유리 학사」는 「모범 소설집」의 단편들 중에서 네 편을 골라 담았다. 돈 키호테식의 광기와 재기로 충만한 학사의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을 그린 ‘유리 학사’, 예순 여덟의 나이에 열 서너 살 된 부인을 맞이해 아내의 정조를 지키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부자 카리살레스가 등장하는 ‘늙은 남편의 의처증’, 천민인 두 피가로들을 통해 스페인 하층 사회의 삶과 풍습을 피카레스크 수법으로 그리고 있는 ‘린코네테와 코르타디요’, 에스테파니아에게 속아 결혼하게 되고 그녀에게 얻은 매독을 치료하는 과정을 읊조리는 소위 캄푸사노의 이야기 ‘사기 결혼’이 그것이다.

권선징악의 주제와 민담 형식의 이야기라는 특정한 테두리가 있지만 세르반테스의 소설은 언제나 이야기꾼으로서 소설가가 들려주는 생동감 넘치는 재미를 선사한다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다. 특히 「유리 학사」에 수록된 네 편의 단편들은 모두 풍자와 아이러니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는 것들로 선정되어 있기에 이야기가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더욱이 근대 소설의 포문을 연 세르반테스의 새로운 서사를 지금의 소설들과 비교해서 읽는 것도 가능하다.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기획시리즈 중 또 하나 추천할 만한 것을 꼽으라면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세 개의 짧은 이야기」를 들겠다. 세르반테스가 근대 소설의 효시가 될만한 소설을 썼다면 플로베르는 프랑스 현대 소설의 문을 연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사실주의 작가로 알려져 있는 플로베르는 낭만주의에서부터 출발했었다. 세르반테스는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러서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의미심장한 부분집합이라 할만하다. 두 권을 펼쳐놓고 소설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한 번 볼까, 하는 호기심으로 읽어도 좋고 장돌뱅이나 할머니가 전해주던 이야기의 매력에 빠져버려도 좋다. (김은선 kong@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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