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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스카라 |  | |
| 가면 속엔 여러 개의 얼굴이 있다
문학은 근본적으로 가면의 속성을 띤다. 손쉬운 예로 은유는 대상을 감추거나 드러내기 위해 또 다른 대상을 끌어들이는 장치다. 따라서 문학이 진실을 말한다고 할 때, 우리가 직접 목격할 수 있는 건 진실의 실체가 아니라, 진실을 암시하는 가짜 표상인 것이다. 문예창작과 1학년 첫 학기 ‘시창작기초’ 수업에나 나올 법한 얘기를 뜬금 없이 하게된 이유는 국내에 처음 소개된 쿠바소설 「마스카라」때문이다.
흔히 여성들의 속눈썹을 말아 올리는 화장도구로 통용되는 스페인어‘마스카라(mascara)’의 본래 뜻은 ‘가면’이다. 가면의 용도는 여러 개가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쓰임새는 ‘아름다움과 은폐’, 즉 실재를 감춤으로써 미감을 증폭시키는 효과라 할 수 있다. 그건 진실 어쩌구 떠들기 이전의 본능적 욕구에 속한다. 아름다움은 역병처럼 존재의 기반을 뒤섞고, 파기하고, 변형시킨다. 거기엔 사체처럼 방치된 추악한 진실이 존재한다. 이런 사실을 ‘a는 b다’하는 식의 정통 수사학에 대입하면 공식은 파기된다. a라는 진실을 가리는 b는 아름다움이라는 명분으로 a를 은폐한다. 그리고 a를 대신하는 b는 그 자체의 미적 영역만을 극대화한다. 그 순간 가면 속은 텅 비면서 진실은 분산된다. 소위 중남미 포스트 붐 세대의 중심작가로 알려진 레오나르도 파두라는 그렇듯 분열된 가면을 통해 보다 극적인 진실을 발견하고 있다.
단순한 공식을 이렇듯 복잡해 보이는 연산체계로 뒤바꾸는 마술은 「마스카라」의 전편을 휘어잡는다. 무더위와 가뭄으로 숨통을 조이는 어느 여름, 쿠바의 아바나에서 한 여장남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빨간 스카프에 목을 졸린 시체의 항문에서 동전 두 닢이 발견됐을 뿐, 수사는 오리무중이다. 이 그로테스크한 사건현장에 뛰어든 적당히 부패하고 적당히 폭력적인 마리오 콘데 형사는 수사를 하는 와중에 이 사건이 쿠바의 정치적 격동기가 은폐한 진실들과 연관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살해당한 자의 이름은 알렉시스 아라얀. 동성연애자인 그는 쿠바 최고의 권력자 중 하나인 파우스티노 아라얀의 아들이지만,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산다. 카스트로 정부로부터 인민재판을 받았던 예술가 알베르토 마르케스를 추종하는 알렉시스는 아버지로 상징되는 권력의 심부에서 벗어나 박해받는 삶을 자청한다. 그러다가 결국 살해당한다. 그 순간 빨간 스카프와 동전 두 닢, 그리고 여장남자라는 기묘한 상징의 알레고리가 형성되는데, 고교 시절 ‘언더우드 타자기 위에서 땀을 흘’리며 작가를 꿈꿨던 콘데 형사는 이 사건이 숨기고 있는 아름다움에의 욕망과 부패한 권력, 음모와 구원의 연금술을 무수한 문학적 텍스트의 가면들을 통해 풀어나간다.
‘작가의 말’에서 파두라는 다쉴 하메트와 앙토냉 아르토 등 비교적 인지도가 높은 작가들은 물론, 우리에겐 생소한 쿠바작가들의 이름을 거명하며 이 소설의 주인공 마리오 콘데를 ‘단순한 경찰이 아니라 그의 삶이 문학이 허용하는 공간에서 움직이는 하나의 은유적 인물로 보아야 한다.’(P.5)고 말한다. 다른 작가들의 작품과 자기자신의 작품에서 여러 부분을 인용하면서 ‘어떤 부분을 원작을 변형시켰고, 어떤 부분은 원작보다 더 낫게 만’드는 방식으로 독특한 메타 텍스트 구조를 완성시켜 나가는 것이다. 파두라는 ‘나는 가면을 쓰고 이 책을 썼다’고 밝힘으로써 작품의 내용뿐 아니라 형식에 있어서도 가면을 등장시킨 셈이다.
인용부호가 없는 탓에 원전을 알지 못하면 어느 부분이 창작이고 어느 부분이 인용인지 알 수 없지만, 실존인물과 가상인물을 혼합시킨 이 골수 사회주의 국가 출신 작가의 의도는 명확해 보인다. 요컨대 b는 a를 가리킬 뿐 아니라 가리는 역할도 하면서 a 자체가 되는 것이다. 그건 살해당한 동성연애자, 시체의 항문에 남겨진 동전 두 닢, 목을 조른 빨간 스카프 등 일차적인 범행동기와 범인을 암시하는 듯 보이는 단서들이 사실은 범인의 실체를 감추기 위한 가면으로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추리소설의 외양을 띠고 있지만, 「마스카라」는 중남미 특유의 시적 환상과 장엄한 철학적 사유를 현란하게 펼치면서 은유의 양식으로 존재하는 문학의 근본에 대해 과감한 도발을 일삼는다. 그리고 그 도발은 카스트로 혁명정부가 숨기고 있는 위선과 폭력에 대한 미학적 전복행위로 읽힌다. 가면을 가면이라고 정확하게 얘기하는 방식으로 삶의 실재적 외형을 폭로하는 소설. 가면보다 변화무쌍한 현실을 이토록 강렬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까발리는 소설도 드물 것 같다. (강정 igguas@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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