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joungul.co.kr 에서
제공하는 좋은글 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
|
|
|  | 서유기 1 |  | |
| ‘사오정 시리즈’는 알아도 「서유기」는 모른다고?
‘사오정 시리즈’라는 우스개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남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동문서답을 하거나 맥락에 맞지 않게 행동하는 사람을 희화시킨 유머시리즈인데, 사오정은 TV 애니메이션 〈날아라 수퍼보드〉에서 따온 캐릭터였다. 잘 알다시피 〈날아라 수퍼보드〉는 중국의 4대 기서(奇書) 중 하나인 「서유기」에서 등장인물과 기본설정을 인용한 작품이었다. 그 외에도 「서유기」를 바탕으로 제작된 만화영화 시리즈는 예전에도 적잖게 있었고, 여러 아시아 국가에서 영화로도 만들어졌었다. 잘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삼국지」나 「수호지」, 「금병매」 등과는 달리 「서유기」는 우리에게 구전 설화라는 느낌이 강하다. 여태껏 우리나라에선 제대로 된 「서유기」 번역본이 없었기 때문이다.
흔히 동양적 상상력의 원천이라 불리는 「서유기」는 7세기 초, 당나라 승려 현장이 오늘날 인도 지역인 천축을 여행한 역사적 사실에 손오공, 사오정, 저팔계의 여행 무용담을 곁들여서 탄생한 환상적인 이야기로 알려져 있다. 1000여 년 동안 저잣거리의 민담으로 떠돌던 이야기들과 장터 이야기꾼에 의해 채록된 대본 등 여러 판본들을 종합해 하나의 소설적 완결성을 갖추게 된 건 16세기 명나라의 불운한 선비 오승은에 의해서였다. 이번에 나온 「서유기」는 바로 ‘오승은 저자론’에 입각해 국내 최초로 완역된 작품이다.
중국 군사사 연구와 중국 고전 및 현대문학 번역에 힘 쏟고 있는 옮긴이 임홍빈씨는 1999년 대산문화재단이 실시한 외국문학 번역공모에 당선된 이후, 오로지 「서유기」 번역에만 매달렸다고 한다. 베이징과 홍콩 등을 수 차례 방문해 원전을 확보하고 670여 개에 달하는 주석도 손수 달면서 4년 동안 채워 나간 원고지 매수만도 200자 원고지 1만 6000장. 그 만큼 「서유기」 번역은 병법에 대한 이해는 물론, 주된 사상적 배경이 되는 불교와 도교에 대한 교리 등, 치밀한 사료검증과 이해가 요구되는 작업이었다.
임홍빈씨가 주된 텍스트로 삼았던 판본은 「신각출상관판대자서유기」, 명나라 만력 15년(1587)을 전후해 화양동천주인(華陽洞天主人)이라는 사람이 교열하고 금릉(金陵,난징) 세덕당(世德堂)이란 곳에서 출판된 판본이다. 거기에 6종의 청나라 판본을 대조, 검토함으로써 보다 정확한 해석에 심혈을 기울였다.
뿐만 아니라 임씨는 그 동안 우리나라에서 출간됐던 여러 종의 번역본들도 참조했다. 가장 성실한 번역본이라고 알려진 김광주씨의 1965년도 판 「서유기」는 원문에 대한 문헌 비평이 충분하지 못했다는 점과 출판사가 폐업함으로써 이미 절판됐다는 점 외에도 에피소드 위주의 진행과 원문의 시구가 누락됐다는 점에서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임홍빈씨의 작업은 바로 거기에 초점을 맞춰 진행됐다. 때문에 이번에 출간된 「서유기」는 기발하고 황당무계한 상상력을 보다 힘있고 흥미진진하게 이끌어간다는 점과 인도 및 중앙 아시아의 유적들을 꼼꼼히 살피는 재미도 선사한다. 손오공, 사오정, 저팔계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원작자인 오승은은 별다른 관직에 오르지도 않고 평생을 청빈하게 살다간 명나라 시대의 선비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그가 정리한 「서유기」가 명대(明代)의 정치·사회적 상황을 알레고리화하고 있다고 봐도 별 무리는 없다. 실제로 많은 학자들은 오승은이 「서유기」에 나오는 재치 있는 익살과 풍자를 통해 당시 왕이 빠져 있었던 불교와 도교 사상을 조롱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서유기」에 담긴 방대한 모험담과 온갖 마귀들의 출몰을 단순한 정치적 알레고리로만 파악한다면 이 작품의 절반도 못 읽은 게 된다. 삼장 법사 일행이 천축으로 향하는 여정은 그 자체로 중국과 인도로 대변되는 동양 정신의 극치를 보여준다고 해도 무방하다. 지금으로썬 상상도 못할 기발한 이야기들과 동양 특유의 초월적 비약의 모험은 요즘 유행하는 서사 위주의 판에 박힌 판타지 소설들의 평면적인 도식을 다시금 제고할 수 있게 해준다. 농익은 시정(詩情)과 종교에의 깊은 이해, 그리고 인간 내면의 마성(魔性) 및 현실에 대한 지독한 풍자가 이토록 화려하게 배합된 판타지가 요즘에도 존재하는가. 문득 톨킨이 「서유기」를 읽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현재 3권까지 발간된 「서유기」 완역본은 5월말에서 6월 초 사이에 제4권에서 제6권까지 출간되고 7월초에 나머지 4권이 더 출간될 예정이다. 동양 판타지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서유기」를 통해 먼 과거를 크게 휘돌아 미래의 상상력을 재고해보는 건 어떨는지. 21세기에 새롭게(그리고 제대로) 읽는 「서유기」는 그 자체로 상상력의 ‘근두운’이니까. (강정 igguas@libro.co.kr/리브로)
by http://www.libro.co.kr/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