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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힘
조선 선비 채동구의 가출에서 얻는 성석제의 힘
사람을 두고 능청스럽다하면 비루한 것이요, 입담이 있다하면 곧잘 허풍 꽤나 치는 실없는 이라고 짐작하기 쉽다. 성석제는 이 두 가지를 두루 갖췄지만 소설가이기에 요행이다. 밉지 않은 능청스러움과 맛깔난 입담을 가진 그가 소설가가 아니었다면 대관절 무엇이 되어 있을까. 그러나 이번의 장편 소설은 한 줄 건너뛰고 비죽 웃을 성질의 ‘성석제표’ 소설들과 달리 꼼꼼히 읽어야 할 판이다. 난으로 들썩였던 조선조의 역사가 있고 옛날 말투가 있고 생소한 벼슬들과 거미줄 같은 친족도 널려 있다. 그러나 성석제이기에 진지한 서문마저 재미나게 읽힌다. 「인간의 힘」의 선비 채동구는 성석제와 닮았다. 성석제 역시 모든 것을 반갑게 긍정한다. 집 나서는 버릇과 ‘이야기를 좋아하다 못해 이야기를 지어내는’(P.77) 혈통을, 그리고 인간이란 본디 무엇인가, 인간의 힘은 무엇인가에 대해 궁금해했다는 것을. 닮았다 뿐인가. 소설의 주인공 채동구는 그의 외가 평천 채씨의 멀고 먼 어른이다.
성석제는 채동구의 이야기를 두고 소설을 쓰기 전부터 쓰려고 했던 소설의 ‘전생(前生)’이라고 부른다. 그는 10여 년 전 고향의 역사와 문물을 집대성한 ‘상주지(尙州誌)’를 읽게 됐고 외가 십 몇대 손인 채오봉의 행적을 기록한 ‘오봉선생 실기’를 찾아내 인물지에 담긴 채동구의 존재에 흥미를 느꼈다. 그는 조상에게서 ‘이름 없는 민중의 일원으로 스스로 인간임을 자각해가는 한 인간’의 모습을 보고 소설로 옮기기를 결심한다. 성석제는 임진왜란의 혼란 속에서 시골 양반 가문에 태어나 병자호란을 전후하기까지 네 번이나 가출을 감행했던 한 선비의 이야기를 처음 접하고는 ‘이 사람, 웃기는데’ 했다가 ‘재미있게도 살았네’로 변하고 결국 ‘이 양반, 아주 괜찮은데’ 라고 절로 감탄하게 됐다.

소설은 외가 문중 조상의 신도비 고유제에 참석한 ‘나’의 관찰로 시작되는 액자 소설의 형식을 따른다. 제사 중간에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난 젊은 청년의 등장을 통해 ‘조선선비 채동구 가출사건’에 대한 구구절절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채동구는 선조 29년(1596), 조선 전기 과거 삼장(三場) 장원을 한 문신 채담(蔡潭)의 4대손으로 고령에서 태어났다. 후처의 아들로 아버지가 죽자 이복형에게 내쫓겨 분가를 해야 했던 채동구는 여차저차한 사정으로 과거는 보지 못하고 한양의 공론과 소문에 귀를 기울이며 관아 주변을 맴돌았다. 한갓 시골 양반으로 살았지만 앉으나서나 나라 걱정을 하던 채동구에게 인조반정에 뒤이어 일어난 이괄의 난은 첫 번째 가출의 도화선이 되었다.

채담에게서 전해 내려오는 가문의 보물인 환도(녹이 슬었는지 끝끝내 칼집에서 빠져나오지 않는)를 들고 동구는 쫓기는 임금을 호위하기 위해 한양으로 홀로 떠난다. 고생 끝에 어가를 만났지만 알현은 커녕 발치에도 다가가지 못하고 초라한 행색으로 돌아오고 만다. 몇 년 뒤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그는 “지금이 바로 충신 열사가 눈물을 흘리면서 조서를 읽고 혈성으로 의리에 보답할 때이다”(P.115)는 교서를 읽고 ‘충신 열사’라는 말에 경도되어 가출을 감행해 평생 할 고생을 다하며 강화도에 도착했으나 이미 화의가 성립된 후였다. 다시 거지꼴을 하고 돌아온 그에게 쏟아진 건 문중의 냉대와 멸시였다.

병자호란 때 실행한 네번째 가출에서 채동구의 인간됨은 한 번 상승한다. 화약이 터지고 피비린내가 나는 전장을 겪기도 했거니와 그를 따라 나섰던 친척 명선이 청의 병사들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다. 구사일생으로 고향에 돌아온 동구는 단식을 하고 이를 기화로 그에게 등을 돌렸던 형은 물론 그를 우습게 봤던 현감이 그를 찾아 온다(현감이 돌아가자마자 그는 열 그릇의 밥을 먹어 치우고 기운을 회복한다). 동구의 임금과 나라에 대한 맹목적 충정은 혼란한 틈을 타 벼슬 한 자리라도 얻어 차고 이름을 높이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 후에 동구는 임금에게 올렸던 상소가 빌미가 되어 심양으로 끌려가 고문을 당하는 등 여러 곡절을 겪지만 결국 선비들의 추천으로 벼슬길에 오르고 향년 71세로 생을 마감한다.

소설은 다시 액자 바깥, 오토바이를 탄 청년이 신도비 고유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 장면으로 돌아간다. 이원겸의 후손 자격으로 참석한 오토바이를 탄 청년은 3백 53년 전 채동구가 심양에 잡혀갈 때 이원겸이 빌려준 말값을 받고, 신도비에다 대고 집을 나가 무얼 얻었는가를 묻고 있는 ‘나’에게 제사를 준비했던 외숙이 대신 대답한다. “난 이 어른이 뭘 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했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네. 이 어른은 초지일관해서 당신 가실 길을 가셨네. 남들이 우습다고 하고, 미쳤다고도 했지만 어른은 신념을 지키셨네. 신념이 옳다 그르다가 문제가 아니라 끝까지 변함없이 그걸 지킨 것, 난 바로 그게 사람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네.”(P.259)

채동구의 가출담에서 영웅담의 흔적은 눈 씻고 봐도 찾을 수가 없다. 혹여 미화됐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작가가 미리 ‘이것은 과장’이라고 못박아 놓고 있다. 채동구는 오히려 정세에 뒷북치고 앞 뒤 재지 않고 몸을 움직이고 화를 내는 고집불통이었다. 자신의 뜻이 통하지 않으면 으름장도 놓을 줄 알았고 체면치례 할 것없이 앓는 소리를 내뱉던 시골 양반이었다. 내세울 벼슬이 있었던 것도, 만석을 쏟아내던 전답이 있었던 것도 아닌 선비 채동구. 그에게서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욕망이 아니라 신념이라는 것을 배우게 됐다는 것은 성석제는 물론이고 독자들까지 놀라게 만드는 ‘인간의 힘’일 것이다. (김은선 kong@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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