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joungul.co.kr 에서
제공하는 좋은글 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
|
|
|  | 원숭이, 빨간 피터 |  | |
| 원숭이를 흉내내려는 인간이 있더라
이런 잘난체 하는 원숭이를 흉내내는 것 같으니라구! 내가 친한 이의 면전에 대고 흉볼 때 쓰는 거의 유일한 관용어구다. 그런데 카프카의 「원숭이, 빨간 피터」를 읽으며 곰곰히 생각해보니 잘난체 하는 것과 원숭이는 썩 잘 어울린다. 어쩌다가 인간이랑 비슷하게 생겨먹어서 까불고 잘난체 하는 사람에 엮이게 됐을까. ‘개만도 못한 놈’,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에 오르내리는 개하고는 또 차원이 다르다. 원숭이에 빗대어 욕을 듣는 그 사람은 늘 웃곤 했으니까. 그는 어째서 웃을 수 있었던 걸까.
「원숭이, 빨간 피터」는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 〈어느 학술원에의 보고〉을 원작으로 한다. 카프카의 소설을 한 번이라도 펼쳐본 독자라면 여백없이 쓰여진 페이지와 우중충한 내용 탓에 갑갑증까지는 아니더라도 기피하고 싶은 작가 목록에 그를 넣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주아주 쉽게 쓰여졌고 연미복을 차려입은 알록달록한 원숭이 피터의 일러스트까지 가미돼 보는 재미 또한 챙길 수 있으니 안심하시라. 「원숭이, 빨간 피터」는 카프카의 소설을 가볍게 잡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되어줄런지도 모른다. 반면 카프카에 호감을 가졌던 독자라면 일러스트에다가 글까지 쉽다니 어쩐지 김이 빠진다. 그러나 「원숭이, 빨간 피터」도 영락없는 카프카의 소설인지라 밝은 하늘 아래서 읽다가는 금새 주위로 몰려드는 먹구름에 겁을 집어먹을 수도 있다. 「성」을 카펜터즈의 노래를 들으며 읽을 수 없듯이, 「변신」이 조명이 낮은 골방에서 읽어야 제 맛을 내듯이 이 책도 살짝살짝 책 장을 넘기기엔 그리 녹록치 않은 무게를 가지고 있다.
이야기는 “존경하는 학술원의 신사 여러분!” 앞에서 빨간 피터가 지난 5년간 원숭이에서 인간으로 환골탈태한 자신의 역정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사냥 원정대에게 총을 맞고 기선으로 끌려온 한 마리 원숭이는 뺨에 생긴 빨간 상처와 유명한 서커스 원숭이 피터의 이름을 따 ‘빨간 피터’라 불리게 된다. 선원들로부터 침 뱉기, 파이프 담배 피는 법, 술 마시기를 배워 나가던 빨간 피터는 어느 날 독주를 병째로 들이키고는 술에 취해 “헬로우!”라는 인간의 언어를 소리낸다. 이후 철창 밖으로 나온 빨간 피터는 인간을 닮아가고자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스승들을 고용하여 서커스단의 일원으로 대성공을 거둔다.
하나의 동화로도 읽힐 수 있는 적당한 이야기지만 빨간 피터의 어조는 예사롭지가 않다. 빨간 피터의 영광 뒤에는 회한이 감춰져있기 때문이다. 빨간 피터는 궤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자물쇠를 이빨로 끊는 탈출보다는 원숭이이기를 포기하고 인간이 되어야겠다고, 출구를 만들겠다고 결심한다. 빨간 피터는 인간 세계에서 부와 인기를 누리는 행복한 원숭이로 발전한 게 아니라 인간을 흉내냄으로써 원숭이의 본성과 정체성을 잃어버린 가련한 원숭이로 추락하고 만다.
인간 세계로 이어지는 출구는 빨간 피터에게는 ‘슬그머니 달아’나는 길이었던 셈이다. 결국 핵심은 책의 서문에 든 “나는 내가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카프카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빨간 피터처럼 우리도 궤짝 같은 현실에 순응하기 위해서 하나쯤의 잔재주는 부리며 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오늘은 내가 이렇게 살았지만 진짜 내 모습은 이게 아니야” 라고 외친 적이 있다면 빨간 피터의 선택은 정말 끔찍하게 다가온다. 나는 지금까지 몇 번이나 도망가려고 몸부림쳤던가. 아니, 도망은 고사하고 ‘나’를 포기하고 죽여왔을까.
책을 소개하는 입장에서 너무 빠져버린 것 아니냐고, 주제넘게 비장하게 몰고 가는 게 볼썽사납다고 하실 분들도 있으리라 본다. 하지만 “카프카는 몽상가였고, 그의 작품들은 꿈처럼 형상화되어 있다. 그의 작품들은 비논리적이고 답답한 꿈의 바보짓을 정확히 흉내냄으로써 생의 기괴한 그림자 놀이를 비웃고 있다”고 한 토마스의 만의 말처럼 카프카에게서 나는 그럴싸한 교훈이 아니라 인간의 비애를 듣는다. 그리고 그 고발자가 카프카이기에 군소리 없이 받아들인다.
그건 그렇고 원숭이의 재롱은 오래 지켜볼 수가 없다. 그게 꼭 인간에 대한 조롱 같아서 보다가 분명 기분이 나빠지는 시점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눈을 떼지 못하고 끝까지 보게 된다. 결국 나는 원숭이의 재롱을 소화해낸다. “어라 꽤 웃기네” 박수까지 보내가면서. 나에게 원숭이 같다는 흉을 들었던 그 사람은 혹시 빨간 피터를 흉내내려 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그는 분명 앞에 서있던 나라는 한 마리 원숭이를 보고 웃었던 것일 게다. (김은선 kong@libro.co.kr/리브로)
by 리브로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