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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전설
이바구는 거즌말이지마는 노래는 참말인기라
´어머니´라는 이름은 부르기도 전에 목부터 멘다. 어머니의 얼굴 가득 새겨진 주름살은 만져보지 않아도,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목이 멘다. 어머니라는 이름에는 ´나를 낳아준 사람´이라는 뜻 외에 더 많은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는 모든 것의 근본입니다. 모든 능력이 응축되어 내재된 작은 신이면서 동시에 사람입니다. 사람 중에서도 여자입니다. 쪼개지거나 나눠지지 않으며, 닳거나 소멸하지도 않는, 기쁨과 슬픔이 한 덩어리져 그분 안에 살고 있습니다.˝(12쪽)

시인이자 소설가인 정동주씨의 「어머니의 전설」은 모든 어머니들에 대한 헌사라 할만하다. 작가는 어머니 김유복녀(89)씨와 장모 신경남(87)씨가 평생을 입 속에서만 웅얼거리던 구전가요 73편을 채록하고 수많은 문헌자료에 담긴 ´어머니의 노래´를 합해 책을 엮었다. 작가는, 딸이 어머니가 되고 그 딸이 다시 어머니가 되는 시간의 순환이야말로 자연과 닮았다며 이 땅의 모든 어머니와 딸을 ´자연´이라 부른다. 하지만 그 시간의 고리에는 여자이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수많은 고통이 담겨 있다.

옥동 처자 우리 딸아
인물 곱고 맵시 좋고,

바늘살이 질삼살이
보기 좋게 잘도 하고,

살림살이 잘하기는
우리 처자밖에 없네

작년이라 춘삼월에
시집이라 보냈더니,

주야장천 보고 싶어
죽도 사도 못하겄네 (185쪽)

시집보낸 딸자식을 그리워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담은 노래다. 딸자식 칭찬을 마구 늘어놓더니 금세 눈물이 맺힌다. 어머니의 마음이란 그런 것이다. 「어머니의 전설」에는 딸로서, 처녀로서, 어머니로서, 첩으로서 모진 풍파를 이겨낸 ´어머니의 시련´이 시간적 연대기로 담겨있다. ´월간중앙´의 사진기자 권태균씨가 찍은 ´어머니의 사진´은 그 시련을 시각적으로 고스란히 보여준다. 어머니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그 주름의 한 겹 한 겹은 그 수많은 고통의 화석인 셈이다. 어머니의 주름을 만져보지도 않고 보는 것만으로 목에 메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책머리에는 어머니와 여자를 부르는 수많은 이름이 기록돼 있다. 어미, 엄니, 엄마이, 에마니, 오머니라 부르는 곳도 있고, 어멍, 어마니, 어매, 어멍이라 부르는 곳도 있다. 어머니에게는 자신만의 이름이 없었다. 결혼하면 ´안동 장씨´, ´김해 김씨´처럼 가문의 이름을 따르거나 남편의 성씨를 따라 ´김집´, ´박집´이라거나 ´김실 ´, ´박실´로 불렸다. 아이를 낳으면 ´아무개 어미´가 된다. 이름도 없이 고된 시집살이를 겪어야 했다. ˝남자에게는 이승살이와 저승살이만 있지만, 어머니는 시집살이라는 인고의 삶을 더 살아야 했˝다. ˝시어마니 앙살새고 시아바지 유달새고 시누년은 삐죽새고,/ 하다하다 못 살아서 중의 고깔 접어 쓰고/ 중의 바랑 짊어지고 절깐으로 올라가네/ 깎아주소 깎아주소 요내 머리 깎아주소˝라 할 만큼 그 고통은 상상하기 힘든 것이었나보다. 책의 제목을 「어머니의 전설」이라 한 것도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전설´이라 이름 붙이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삶이었던 것이다.

작가의 어머니는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이바구(이야기)는 거즌말(거짓말)이지마는 노래는 참말인기라.˝ 모내기를 하고 삼을 삼으며 또는 신세를 한탄하며 불렀던 그 노래들이야말로 피눈물의 나날을 이겨낼 수 있게 한 치료제였다는 얘기다. 그 노래들은 ˝신과 인간을 향한 기도이자 항의였고, 말없이도 사람답게 살도록 껴안아 다독여준 자연을 향한 화답이었으며, 어머니 안에 들어 있는 어머니의 어머니와 어머니 몸밖에 나와 있는 미래의 어머니인 딸들을 향한 눈물의 고백˝이었다. 직접 어머니의 입으로 흘러나오는 그 노래를 듣지 않아도, 그저 작가가 책에 적어놓은 그 노래말을 읽기만 해도 목이 멘다. 왜냐하면 거즌말이 아니라 참말이기 때문에. (김중혁 vonnegut@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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