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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로잡힌 영혼 |  | |
| 한 유대인 비평가의 독일문학 편력기
˝문학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비평을 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는 소위 ´문학의 제왕´이라 불리는 폴란드 태생의 유대인이다. 그는 20세기 중후반 독일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문학비평가이자 저널리스트로 통한다. 1988년부터 2001년 12월까지 그가 진행한 독일 ZDF TV의 인기프로그램 ´문학 4중주´는 독일 출판계에 엄청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일테면 요즘 우리나라 모 방송국의 ´느낌표´란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책들이 단시간에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 독일에서도 일어났던 셈이다.
1960년부터 73년까지 ´디 차이트´의 고정비평가, 1973년부터 88년까지 일간 신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문학부장을 지낸 라니츠키의 문학적 모토는 이른바, ˝나는 독자들을 위해 글을 쓰지 결코 전문가들을 겨냥해 글을 쓰지 않는다.˝란 말에 함축돼 있다. 그는 전문 문학가들에게나 통할 학문적 은어의 사용을 강하게 비판한다. 그런 그가 글쓰기의 대원칙으로 삼는 것은 간결·단순·명료·평이함, 그리고 신랄함이다. 이런 요소들을 다 합치면 일반 독자들이 문학작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덕목, 즉 ´재미있는 이야기´의 구성요건들이 만족된다. 라니츠키는 이런 단순하면서도 효과 만점의 문학적 신념을 통해 독일 문학계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됐다.
물론, 그의 문학론에 이의를 제기하고 강하게 비판했던 문학가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동료 문인들의 호된 비판에 라니츠키는 간명하게도 단호하게 응대했다. 요컨대 ˝우정에 매수당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사로잡힌 영혼」은 라니츠키의 이런 꿋꿋한 신념과 문학적 태도의 근간이 흥미진진하게 드러난 그의 자서전이다.
1999년에 초판이 발행된 이 책은 533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읽힌다. 폴란드 시민으로 태어났지만 독일적 교양을 몸 속 깊이 간직하고 있던 부모와 함께 어린 라니츠키는 베를린으로 이주한다. 그러나 나치에 의해 다시 폴란드로 추방당한 라니츠키는 바르샤바 게토에서 평생의 반려자 토이자를 만나 결혼식을 올린다. 그러다가 가스실로 들어가는 줄에서 부인의 손을 붙들고 극적인 탈출에 성공한다. 이후 라니츠키 부부는 농가에 은신해 종전을 맞는다. 폴란드군 장교, 런던주재 영사로 변신했다가 숙청당한 뒤 복권됐지만, 독일 문화에 대한 뿌리깊은 사랑과 질식할 듯한 폴란드에서의 생활에 염증을 느낀 라니츠키는 1958년, 가족과 함께 목숨을 건 두번째 탈출을 시도한다. 서독으로 넘어온 라니츠키의 일생이 오랜 어둠의 껍질을 벗고 빛의 제국으로 입성하게 된 건 그 순간부터였다.
폴란드 생활의 말년이었던 1958년, 라니츠키는 작가를 자칭하는 한 독일 청년을 만나게 된다. 당당한 콧수염과 사나운 눈빛을 한 그 젊은이는 ˝무엇을 쓰고 있느냐˝는 라니츠키의 물음에 ˝정신병원에 수용된 난쟁이 꼽추 얘기를 쓰고 있다.˝고 대답한다. 그 젊은이가 바로 그로부터 41년 뒤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되는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다. 그러니까 난쟁이 꼽추의 얘기란 바로 그라스의 대표작인 「양철북」이었던 것이다. 「사로잡힌 영혼」에는 이렇듯 20세기 독일문학을 대표되는 숱한 작가들에 대한 라니츠키의 개인적인 인상과 평가, 그리고 그들을 통한 독일 문학계 전반에 대한 방대한 지도가 그려져 있다. 귄터 그라스뿐 아니라, 베를톨트 브레히트, 안나 제거스, 잉게보르크 바흐만, 엘리아스 카네티, 토마스 베른하르트, 하인리히 뵐, 볼프강 쾨펜, 막스 프리쉬 등에 대한 라니츠키 특유의 신랄한 애증이 교차하고 있어 기왕에 있던 그들의 일면들을 좀더 새로운 각도에서 접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독일 문학에 대한 심플한 인상기 정도로만 생각했다간 큰코 다친다. ´더 타임스´는 이 책을 이렇게 평가한다. 노상에서 매일 총성이 울리고 사람이 굶어죽는 게토의 언저리에서 삶의 극명한 빛과 어둠을 목도한 라니츠키는 삶과 세계에 대한 기본적이고도 절실한 통찰을 그때 얻었던 셈이다. 그가 문학의 최고덕목으로 ´독자 제일주의´를 꼽았다고 해서 그걸 단순한 대중추수적인 발상이라고 오도해서는 안될 요인이 거기에 있다. 문학이란 요컨대 삶에 대한 사랑, 세계에 대한 따뜻한 이해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독일 전역에 생방송됐던 ´문학 4중주´의 마지막 방송 날 ˝막은 내리고 모든 질문은 그대로 남아 있다˝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문장을 인용하며 끝맺음한 라니츠키의 일성은 여전히 진행중인 문학에 대한 그의 애절한 구애표현에 다름아닌 것이다. (강정 igguas@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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