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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 샤넬
스스로 미래를 개척한 여자
코코샤넬-이름보다도 향수샤넬5로 세계에 더 널리 알려진 여자다. 여고 가사교과서에도 그녀의 이름이 언급될 만큼 유명인이지만 그녀의 인생 초반이 고아로서 그토록 불우했던 것을 알면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고아로서의 비참함과 어두움이 평생 그녀의 인생에 그늘을 드리웠을 테지만 그렇다고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현대화된 세계에서 고급기생이나 창녀만으로서도 살 수 없는 시대에 그녀는 당당하게 디자이너의 길을 선택했다.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당시 여성에게 전문 교육을 시키지않았던 시대에 고아소녀로서 할 수 있는 일이란 하녀나 바느질하는 여자밖에 없었을 테니... 그렇다고 그녀가 처음부터 유명디자이너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아니다. 그 시대에도 바느질이란 여성이기때문에 할 수없이 살아가기 위해 택한 일이었고 전문직으로서 인정받지도 못했다. 그녀도 다른 여인처럼 보조 재단사로 시작했고 그녀의 첫 사업도 은행가정부의 도움을 빌어 의상점이나 보석점이 아닌 모자가게로 시작했다. 그리고 성공했다. 그녀는 단순히 사업수완이 좋았던 것이 아닌듯하다. 당시 여성들의 요구사항과 사회의 변화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시도하며 성공으로 이끌었다. 많이 배우건 못 배우건 사업이나 장사의 생존본능에는 예나 지금이나 이것이 필수적이다.이점은 요즘의 벤처기업 같다. 그녀가 남들 하는 방식대로 가게를 운영했더라면 결코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샤넬은 날카로운 직관과 실천력이 있었던 것을 보면 상당히 머리가 좋은 여자다. 스커트길이를 끌어올리고 마부의 옷을 본뜬 승마복-처음으로 여성의 겉옷으로서의 슬랙스를 디자인한 사람-샤넬... 코르셋이나 페티코트를 사용하지않고도 여성의 몸의 선을 자연스럽게 나타내는 그녀의 옷들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기능성과 활동성을 중시한 것을 나도 인정한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인기가 있는데 그 시대에는 얼마나 센세이션을 일으켰을까... 그녀의 첫 정부의 말이 유명하다-장난감을 쥐어주려고 했었는데 자유를 주고 말았군- 그녀의 사생활은 문란했다. 정부만해도-그것도 결혼을 해서 아내를 둔-여러 명에 이른다. 아마 부모의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어린 시절의 상처가 그런 요란한 연애행각을 벌인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19세기말-20세기 초의 그 보수적인 사회에서 그녀가 여성으로서의 자존심과 존재가치를 잊지않고 자신의 위치를 꿋굿이 지켜나간 것은 높이 살만하다.

한편으로 그런 사생활 속에서 그녀는 당대의 예술가 지식인들과 교우했다.그것은 재단사로서의 한계를 뛰어넘어 그녀의 예술적 영감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녀의 디자이너로서의 성공은 자신의 천재성 외에도 이런 내적인 교류가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그녀의 영감은 끝이 없었다.모자로 시작한 사업은 의상뿐 아니라 보석, 구두 악세사리, 향수, 화장품에 이르기까지 확장되어갔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가 평생을 노력한 결과였고 한편으로 디자이너를 전문인으로 키워내는 계기가 되었다. 그녀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한 결과는 그녀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도 전문인으로서 여성의 지위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샤넬에서 이점을 높이 사고 싶다. 패션사뿐만 아니라 현대 여성사에서도 샤넬이 빠지지않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사업을 하고싶은 여자면 한번쯤 샤넬전기를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스스로 운명을 개척한 여자, 샤넬-그녀의 용기와 재기를 배우고 싶다.


by 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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