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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인열전 |  | |
| 너무 일찍 생을 마감한 시인들이 그리울 때
요절한 시인을 두고 ´미완의 삶´이라고 말해야 옳은 걸까, 아니면 짧지만 꽉 찬 생을 살다 갔다고 말해야 옳은 걸까? 시인이면서 소설가로, 또 요즘은 대학 강단에서 문예창작론을 가르치는 교수로 활동중인 박덕규가 펴낸「시인열전」은 어쩌면 그런 물음에 대한 실마리를 주는 책인지도 모르겠다. 기형도, 박정만, 김수영, 윤동주, 김소월 등 ´요절´한 한국 시인들의 삶과 문학을 술회하면서 저자는 시인의 삶과 문학에 대해 전문가적 현학을 강조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어눌한 감상으로 일관하지도 않은 채 평범한 독자보다 그저 한 뼘쯤 높은 수준으로 이 책을 메워 나간다. 그 때문일까? 지나간 시간이 그리울 때 사진첩을 뒤적이듯, 이 책은 일찌감치 생을 마감한 시인이 그리울 때 부담 없이 들춰보기 딱 좋은 책이다.
˝기형도 시의 주된 계절적 배경이 되는 눈 오는 겨울 풍경에 취해서 있다가 정신을 차린 나는 두 권이나 되는 이 책 중 한 권을, 갑자기 내 신분과 나이도 잊어버리고 미지의 연인에게 선물하고 싶은 마음을 품었다. 울고 싶다, 시집을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다 따위의 마음이 바로 감상성에 의한 것이고, 기형도의 시는 그 감상성을 자극하는 일면이 있다. 그리고 나는 다시금, 기형도의 시에 그런 감상성의 분출을 통제하려는 면모를 살피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결국 나는 그렇게 해서 이 글을 쓰게 된 것이다.˝ (p. 49)
저자가 중점을 둔 것은 요절한 한국 시인들. 기형도, 윤동주, 김수영, 박정만, 김소월, 이육사, 조태일 등은 모두 아까운 나이에 절명했다. 그리고 이들과 나란히 수록한 백석과 정지용 역시 그 생사를 정확히 가늠할 수 없다는 점에 있어서 그닥 다르지 않다.
시인의 생전 사진이나 일화, 시구를 적절히 사용하여 마치 강의실에서 제자들에게 말 건네듯 이야기를 풀어나가 시종 편안하게 읽힌다는 것은 이 책이 지닌 미덕. 이 점은 문학 이론이나 작가론을 다루고 있는 여타 이론서들이 대중적 정서와는 영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높이살 만하다. 저자 박덕규는 ´정통 문학사도 아니고, 문단 ´야사´로서의 문학사도 아니며, 평전으로서의 문학사도 아닌 나다운 새로운 것, 각각의 문학작품이며 시인이 다 주체가 되면서도 서로 조화로운 관계로 입체적인 구조를 이루는 이야기 형식´(p.35)으로서의 자칭 ´문학사 소설´을 제법 훌륭하게 엮어낸 셈이다.
어떤 이론이나 문학사적 위상의 정립보다는 소박한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의 감상과 회한, 추억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 저자는 어쩌면 요절 시인들의 완성, 미완성 여부는 그것이 남아 있는 이들의 마음 속에 얼마만큼의 불을 지펴주는가, 얼마만큼의 눈물을 어리게 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말해주는 듯 하다.
이 책이 지닌 이 모든 미덕들에도 불구하고 못내 아쉬운 것은 전문성. 이는 어쩌면 ´비평과 소설을 잇는 징검다리´로서의 책을 지향한다는 저자의 의도 때문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 고등학생들만을 위해 쓰여진 책이 아닌 바에야 좀더 깊게, 좀더 상세하게 말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은 줄곧 남는다. 문학과 삶의 한복판에서 치열하게 살다간 시인의 삶이 단순한 감상과 추억만으로 온전히 말해질 수는 없는 것이므로. (이현희 imago@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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