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글 나누기
joungul.co.kr 에서 제공하는 좋은글 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작년 6월, 미국의 맹인 등산가 에릭 웨이언메이어(32)는 상처로 얼룩진 손마디를 세차게 흔들며
세계 7대 최고봉 중 하나인 아콩카과봉에 깃발을 꽂았다. 추위와 배고픔으로 몹시 지친 얼굴이었다.
삶과 죽음을 오가는 험난한 싸움은 이미 한 달을 넘어서고 있었다. 옆에 있던 동료들은 모두 얼싸안
으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눈물 섞인 환호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는 그저 무덤덤하게
하늘을 바라보며 소리 없이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기적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단지 노력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사실 그에게도 기적을 바랐던 적이 있었다. 아니, 그의 어린 시절은 온통 기적만을 바라고 꿈꿔왔던
시간들이었다. 열세 살 어린 나이에 시력을 잃으면서 그는 매일 밤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를 했다.
어머니의 자장가가 끝나고 어두운 방 안에 홀로 남겨지면 조용히 무릎을 꿇고 앉아 간절히 기도를
했었다.

내일 아침이 밝아오면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게 해달라고, 예전처럼 친구들과 야구도 하고
농구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제발 앞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매일 밤 기도는 계속되었다.
그를 맞이하는 세상은 늘 짙은 어둠뿐이었지만, 그는 진정 기적만을 바랐다. 기적 없인 삶의 희망도
없었기에. 하지만 기적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그는 더 이상 기적이라는 말을
믿지 않게 되었다.

“나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장애인이었습니다. 야구를 하고 싶어도 공이 보이지 않으니 할
수가 없었고, 농구를 하려 해도 아무도 나와 함께해주지 않았습니다. 가끔 음악을 듣거나 점자책을
읽는 시간이 전부였습니다. 죽음도 여러 번 생각했지만 늘 나를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그것도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바보였습니다.”

그런 그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기적 대신 자신과의 힘겨운 싸움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그의 나이 스무 살이었다.

우선 집 밖으로 나와야 했다. 하지만 집 밖의 공간은 그에게 너무나 낯설었다.
눈앞에 펼쳐진 어둠 속엔 계단이 있었고, 웅덩이가 있었고, 돌부리와 나무가 있었다.
그는 넘어지고 또 넘어졌다. 하지만 세상을 향해 내딛는 첫걸음이었기에 다시 강하게 일어서야
한다고 자신을 향해 채찍질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늦게 발견한 어머니는 만신창이가 된 아들을 부둥켜안고 한동안 말없이 흐느껴 울었다.
스무 살 그는, 늙은 어머니를 멍한 눈으로 바라보며 얘기했다. 괜찮다고, 하나도 아프지 않다고.

그 일이 있은 후, 어머니도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지팡이 하나를 준비해 아들의
손에 쥐여주고, 다른 한 손을 억세게 붙잡았다. 아들의 여린 손이 가슴을 파고 들어왔지만 더
이상 슬퍼하지 않았다. 아들은 지금 행복한 삶을, 적어도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몸부림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 흙투성이가 된 아들이 그녀를 향해 웃으며 했던 이야기가 머리
속에 맴돌았다. 그녀는 다시 아들 손을 붙잡고 힘차게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웨이언메이어는 점점 산을 오르는 것이 익숙해져갔다.
이젠 누군가의 도움 없이도 가까운 산을 오르내릴 수 있게 되었다.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는 상처투성이인 손에 지팡이를 강하게 부여잡고 산악동호회 문을 두드렸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웨이언메이어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늘 당당했다.
그는 암벽 등반을 배웠고, 극한 생존 훈련을 견디어냈다.

그리고 1997년 드디어 세계 최고봉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시행착오들을 겪어야 했지만
한순간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아르헨티나 아콩카과봉을 포함한 4개 봉을 정복하게 되었다.
맹인으로서는 최초의 기록이었다.

웨이언메이어는 지금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등정을 위해 네팔 카트만두에 도착했다.
동료들은 그를 위해 작은 종 몇 개를 준비했다. 좀더 안전하게 그의 앞길을 인도하기 위해서이다.
에베레스트 등정을 앞둔 그에게 사람들이 또다시 물었다. 앞을 보지 못하는데 과연 그 험난한
에베레스트를 정복할 수 있겠느냐고. 그는 사람들의 질문을 향해 당당하게 대답했다.

“등정에 성공할 가능성은 다른 정상인들과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더 이상 앞을 볼 수 없다는
장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극한 상황 속에서 얼마나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느냐, 기상 조건들을
얼마나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저는 일반인들과 동일한 조건에서 등정을 시작할
뿐입니다. 등정에 성공하면 우선 신에게 무사한 하산을 기도할 것이고, 네팔의 법률이 허용한다면
정상에서 작은 돌 하나를 주워 어머니께 선물하고 싶습니다.”

웨이언메이어,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기적이라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발걸음 하나하나에 새겨진 소중한 땀방울을 아름답게 기억할 것이다.

[작은이야기]
 
비즈폼
Copyright (c) 2000-2025 by bizforms.co.kr All rights reserved.
고객센터 1588-8443. 오전9:30~12:30, 오후13:30~17:30 전화상담예약 원격지원요청
전화전 클릭
클린사이트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