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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화통역사 정택진]
곱슬곱슬한 머릿결, 유난히 작은 얼굴, 파리한 피부색, 게다가 호리호리하고 자그마한 체구.
수화통역사 정택진씨는 첫눈에 다소 나약해 보인다. 정택진씨는 농아인을 위한 KBS 1TV 프로
“사랑의 가족”에 지난 1999년 10월부터 고정 출연해 왔다. 그가 맡은 역할은 말 못하고 듣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방송 내용을 수화로 전달하는 일. 그가 이 일을 맡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그전에 그는 농아원을 찾아다니며 수화도 가르쳐주고 무언극이나 음악회 공연도 벌여 원생들
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그 고마움을 어떻게 표현할까 궁리하던 농아인들이 정택진씨에 관한
글을 방송국에 팩스로 보냈던 것이다. “정선생님은 수화 통역 실력이 우리 나라에서 최고 수준
이며, 우리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베푸는 훌륭한 분”이라는 내용이었다.
정씨는 1984년 교회에서 호기심으로 수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수화를 배우면서 농아인들이
생활하면서 겪는 고충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대한항공 항공정비사였던 그는 아예 직장을
그만두고 정식으로 수화를 배우는 한편 인천 소재 농아원인 “성동원”에서 주말마다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지금의 아내 이주순씨(35세)도 만났다. 농아에다 고아인 그녀와 결혼하겠
다고 하자 주위에서 모두 반대했다. 하지만 그는 농아인들만 참석한 가운데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다. 그후 그는 농아인들을 돕는 일에 더욱 발벗고 나섰다. 정택진씨는 인하대학교에서도
“장애인 복지와 수화의 이해”라는 교양과목을 가르친다. 또한 경기도 평택의 에바다농아원,
기흥의 삼성반도체, 수원의 무궁화전자 등을 찾아다니며 수화를 가르친다.
그런데 사실 정씨는 몸이 성치 않다. 6살 때 한동네 사는 서너 살 위의 아이와 레슬링을 하다가
발길에 걷어차여 오른쪽 대퇴골을 다쳤다. 그후 20여 년 동안 고생하며 지내던 정씨는 1995년에
수술을 받았다.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어떻게 알았는지 농아들이 병문안을 왔다.
그들이 돌아갈 때 슬그머니 놓고 간 봉투 속에는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가 서너 장씩 들어 있었다.
그는 올해 정말 큰 결심을 했다. 한국복지대학 수화통역과에 39세의 나이로 입학한 것이다.
“체계적인 대학교육을 받고 그동안 현장에서 쌓은 풍부한 경험을 살려 전국 10만 농아인들의 삶에
‘빛과 소금’ 같은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정택진씨의 말이다.
[리더스다이제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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