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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혼례 올린 부부
교실에서 결혼식 올린 선생님들 강성욱·이천순 부부

“삐걱거리는 풍금 소리 맞춰 제자들 앞에서웨딩 마치 울렸어요”


그들을 거쳐간 제자들의 축복을 받으며 신랑 신부 입장을 한 곳은 바로 그들이 수업을 했던
정든 교실. 교사 부부인 강성욱, 이천순 씨의 결혼식은 마을 잔치가 되었고 동네 주민 모두가
즐거운 마음으로 그들 부부의 결혼식을 지켜보았다.

부부가 처음 만난 곳은 경기도 용문에 위치한 용문초등학교였다. 전체 학급이 몇 학급 안 돼
한두 달만 있다보면 전교생과 교사가 모두 친구가 되는 그런 곳이다. 강성욱 씨(40)가 초임
발령을 받아 4년째 근무하던 이 학교에 아내 이천순 씨(37)가 전근을 왔다.
자그마한 학교 교정과 복도에서 자주 마주치다보니 두 사람은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조용한 동네 분위기처럼이나 조용하게 연애를 하고 만난 지 2년 되던 해 두 사람은 결혼 약속
을 했다. 10년 전, 강성욱, 이천순 부부는 이 학교 교실에서 삐걱거리는 풍금 소리에 맞춰
결혼식을 올렸다. 강당으로 쓰기 위해 벽을 터서 넓혀 놓았던 5∼6학년 교실 식장에 모인
사람들은 가까운 친지 몇 명을 제외하면 동네 주민들과 동료 교사, 그리고 그들의 교육을
받고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어간 올망졸망한 초등학생들이 전부였다.

“토요일 수업을 끝내고 식장 꾸미는 일에 교장 선생님 이하 동료 교사가 다 매달렸어요.
붓글씨 잘 쓰던 강 선생은 안내판을 붙여주었고 유치원 정 선생님은 부케를 만들어 주었죠.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게 나네요.”
입장할 때 밟고 들어오는 양탄자는 면의 철물점에서 부직포를 사서 해결했다. 그들 눈엔
한번 쓰고 버릴 물건 대신 두고두고 요긴하게 쓸 부직포가 새빨간 융단보다 더 멋스러워
보였다. 부직포는 결혼식이 끝난 후 아이들의 붓글씨용 받침대로 재활용되었다.
교실 걸상을 모아다 하객들의 의자를 마련했다. 동네 아주머니, 어머니회 학부형들이 모여
음식을 장만하며 웃음꽃을 피우는 결혼식장은 말 그대로 잔칫집 분위기였다.

결혼식의 주인공 강성욱 씨는 혼례 공모전을 한다는 광고를 보고 그때를 회상하며 자신의
결혼식 이야기를 글로 써서 보냈다. 결혼식에 얽힌 추억거리가 많아 즐거운 마음으로 보낸
글이 우연찮게 최우수상까지 받았다니 결혼식 한번 제대로 잘했다는 생각이 더욱 확고부동
해졌다. “결혼식 날 식장을 손보느라고 망치를 들고 왔다갔다하는데 결혼식에 오신 한
할머니께서 여기가 결혼식 하는 곳 맞느냐고 물어보시더군요. 결혼식이 끝나고 보니
그 할머니는 아내의 이모할머니였는데 망치 들고 다니던 사람이 신랑이라 깜짝 놀라셨다고
지금까지 말씀하세요.”

살면서 하나 둘 마련하는 재미
아내는 남들 다 입는 웨딩드레스를 입지 않았다.
대신 예복으로 마련한 한복에 면사포를 둘렀다.
사람들은 전통 혼례라도 올리는 줄 알았다고 너스레를 떨지만 한결같이 아내 이천순 씨의
단아한 모습을 칭찬했다. 그래도 친정어머니만큼은 조금 서운한 듯 보였다. 마을 유지의
딸로 유일하게 그 마을에서 대학을 나온 일등 신붓감인 막내딸에게 근사한 결혼식을 올려
주고 싶었던 어머니의 마음은 기쁨 반, 아쉬움 반이었다. 그러나 이씨의 함박 웃는 얼굴은
그 어떤 신부보다 행복해 보였다.

“결혼식 하는 동안 교실 창문 밖으로 동네분들이며 조기 축구회 회원들이 훔쳐보느라고
밀고 밀리던 광경이 기억에 남아요. 정말 그 날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에 뿌듯하기도
하고 긴장도 되고 그랬어요.”
결혼 당시인 10년 전의 초등학교 교사 월급은 초봉이 38만 원. 부부의 월급을 모두 합쳐
보아도 100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당시 제 작은형 사업 자금이 딸려서 제가 월급을 받으면 꼬박꼬박 그쪽으로 보내드려야
했어요. 6년씩이나 사회생활을 했어도 돈이라고는 모을 수가 없었죠. 매달 3만 원씩 붓던
적금 300만 원으로 결혼자금을 마련하려 했는데 그것 역시 형에게 급한 사정이 생겨 보내
야 했어요.”
강씨는 가진 것 없는 덕에 아내의 고운 마음씨를 확인할 수 있어 오히려 좋았단다.
이천순 씨는 남편의 그런 사정에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자신의 반 지하방에서 신혼살림을
하자고 말했다.

“제가 모아두었던 1,100만 원이 우리가 가진 전 재산이었어요. 결혼식은 조촐하게 하고
살림은 각자 쓰던 것을 가져와 살면 된다고 생각하니깐 그 돈도 많더군요. 남편은 자신이
아끼는 전축과 500여 권의 책을 가져왔는데 그 물건들이 아직까지 있어요.”
세 번의 이사를 거쳐 부부는 현재 경기도 구리시에 25평짜리 아파트를 얻었다.
후배 교사들 신접살림 집들이를 가보면 결혼 10년 차인 그들보다 더 잘해놓고 살지만
부부는 부러워하지 않는다.
“지난달에야 비로소 제가 가져왔던 전축 대신 CD플레이어가 달린 조그만 오디오를
장만했어요. 처음부터 다 갖추어 놓고 사는 것도 재밌을지 모르지만 살면서 하나 둘 살림
느는 재미만은 못할 거예요.”

부부는 ´하루하루 충실히 살면 된다´는 신조로 지난 10년을 보냈다.
참 교사의 길을 걷고 싶다는 부부는 교사생활을 하며 캔꼭지를 모아 장애인들에게 사랑의
휠체어 전달식을 하기도 했고 여러 교육 프로그램 공모에도 참여해 수상한 적도 많다.
강씨는 지난해 말 대학원에서 영어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힘든 교단 생활로 3번씩이나
유산을 경험한 뒤 얻은 7살 난 아들 의현이까지 세 식구는 매일 그렇게 열심히 살아간다.
그들의 소식이 알려지면서 예전 그들의 결혼식을 도와주었던 교사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리고 그들의 결혼식을 지켜보던 코흘리개 녀석 몇몇이 벌써 그들 부부에게 자신의
결혼식을 알리는 청첩장을 보내왔다. 두 사람뿐만 아니라 그때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즐거운 추억을 가슴에 안고 살았나보다.

[여성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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