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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공출신 성악가‘카르멘’프리마돈나 |  | |
| ‘실을 뽑는 여공에서 아리아를 뽑는 디바로’.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오는 18일부터 21일까지 열리는 베세토 오페라단의 ‘카르멘 2002’(연출 장수동) 공연에 ‘여공 출신 성악가’ 이점자 창원대 음대 교수가 출연한다. 테너 박성원·박세원씨가 공동 주인공인 이 작품에서 그는 돈 호세를 짝사랑하는 청순가련형의 시골처녀 미카엘라 역이다. 그의 과거와도 비슷한 연기와 노래를 하게 된 셈이다.
지난해 초 10년간의 오스트리아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 모교에서 교수로 재직중인 이씨는 전남 담양의 가난한 소작농의 딸이었다. 잔칫집에서 얻어온 상한 음식을 먹고 숨진 큰오빠와 집안에 곡기가 끊어지자 피를 판 돈으로 쌀 한 됫박을 사온 작은오빠에 대한 기억은 그의 암울했던 기억의 일부분이다. 이씨는 자신을 채찍질한 삶의 동력이 “세상이 정해준 조건과 끝까지 타협하지 않겠다는 열의 같은 것이 아니었나 싶다”고 말한다.
그가 “내게는 노래로 아름다움을 빚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확신 속에 졸업이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중학교를 마치고 찾아간 곳은 경남 마산의 한일합섬 부설여고였다. 4시간 수면, 8시간 공장 일, 4시간 수업, 그리고 끝없이 매달린 피아노 공부. 쏟아지는 잠 속에 거대한 기계의 톱니바퀴 안으로 손이 말려들어간 적도 있었다. 손가락이 잘리지 않은 것은 피아노를 계속 치게 하려는 누군가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장학금과 아르바이트로 창원대 성악과를 마치자 주변에서는 “장한 일을 해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실컷, 좀더 실컷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보자는 원(願)이 있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음대생들조차 뜻을 모른채 부르는 외국 오페라의 노랫말들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부터 알고 싶었다. 그는 독일어라고는 ‘나’ ‘너’도 모르는 상태에서 1991년 오스트리아로 건너갔다. 유학자금은 대학 졸업 후 광주에서 음악학원을 운영해 모은 돈이었다.
서른한살 노처녀의 외로운 결단. 처음에는 어학수업용 컴퓨터 앞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빈 프라이너 콘서바토리움 성악과와 오페라과(수석 졸업), 빈 국립음대음악학과와 음악교육학과를 마쳤다. 동시에 2개 학과에 등록해 공부하기도 했다. 모두가 잠든 밤 10시부터 새벽 3시 반까지 CD를 듣거나 사전을 찾으면서 곡 분석을 마치고 방음장치가 된 방에서 홀로 노래하는 ‘올빼미’의 일과였다. 마침내 그는 ‘라 트라비아타’ ‘피가로의 결혼’ 등의 주역을 맡게 됐다. 여공에서 오페라 ‘디바’가 됐지만 그는 어려웠던 시절 공장에서 친구들이 불러주던 ‘이점자’라는 이름을 자랑스러워 한다. 유학생들이 편의상 갖고 있는 그 흔한 현지이름조차 없다.
유학 도중 정류장에서 운명처럼 만난 남편(빈 국립대 연극영화과 교수)과 9살짜리 아들을 두고 있는 이씨는 “내 속의 희망을 따라 실컷 살고자 해왔을 뿐이며 지금도, 앞으로도 ‘실컷 사는’ 그 과정 자체가 내게 큰 기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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