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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의 역사
남성은 발명되었다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층위는 여자냐 남자냐이다. 생식기라는 신체적 특징을 중심으로 구분한 이런 이분법은 늘 자명한 사실로 받아들여져 왔다. 의지력, 대담성, 독립성 등으로 대표되는 남성성과 허약함, 겸손, 종속성 등으로 대표되는 여성성에 대해서도 의심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절대절명의 진리처럼 보이는 이 본질론적 성논리. 여기 그것의 역사적 허구성을 여실히 파헤친 책이 있다.
책은 성에 대한 본질론적 이해 자체가 근대의 시대적 산물임을 보여주는 것에서 출발한다. 18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지배적인 성담론은 ´남녀동형설´이었다. 이는 남성의 고환과 여성의 난소를 가리키는 말이 orcheis로 동일했다는 사실과 18세기 초까지 여성의 자궁을 지칭하는 전문용어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즉 몸의 안과 밖에 있다는 차이를 제외하면 남녀 모두 똑같은 생식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18세기 후반 ´없었던 남성이´ 발명되었다. 남성 발명의 첫 단계는 생물학과 해부학의 발전이라고 한다. 예컨대, 세포생리학은 남성이 ´능동적이고 활동적´인 데 비해 여성은 ´수동적이며 보수적´이라는 사실을 설명하는 과학적 근거로 둔갑한다. 또한 남성을 뜻하는 man, he 등의 단어가 보편적 인간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는 등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체계도 남성 중심으로 편성되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남성 중심의 성체계가 생겨난 배경과 경위는 무엇인가? 이 책의 공저자 중 한 사람인 우테 프레베르트는 이러한 성체계의 토대를 19세기 독일의 병역의무와 선거권의 상호관련성 속에서 찾는다.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전쟁터에 국가의 강제력만으로 국민을 동원하기는 역부족이었다. 따라서 국가는 징병제에 대한 국민들의 사회적 저항을 극복하고 자발적 복종을 얻어내기 위해 영웅서사를 만들어낸다.

나폴레옹 황제를 위해 군대 행진곡을 치다 얼어죽은 ´북치는 소년´을 비롯하여 신성한 조국을 위해 충성을 다한 병사들은 모두가 자유롭고 대담하며 전투적인 영웅의 이미지로 그려졌다. 결국 국가 권력은 민중의 자발적 동원에 성공하였고, 국토 방위에 의무를 짊어진 모든 남성들에게 참정권을 약속했다. 여기서 이 책이 지적하는 중요한 사실은 국가의 이러한 자발적 동원 메커니즘이 국방의 의무를 질 수 없는 여성들의 참정권을 자연스럽게 박탈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권리로부터 배제된 여성들은 이제 아이들을 생산하고 가정을 지키는 사적 영역에 영원히 갇히게 된다.

이렇듯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추락시키고 정치적 권력마저 빼앗아 간 성의 역사. 그러나 이 책은 우리의 시선을 잠시 남성에게 돌리기를 요구한다. 역사속 성담론들 속에서 우성 인자를 부여받은, 강하고 씩씩한 우리네 남성들은 마냥 행복하기만 할까? 슬퍼도 울 수 없고, 힘들어도 포기하지 못하며, 가족을 부양하지 못하면 따가운 지탄을 면치 못하는 남성들. 여성이 ´순종´을 강요받듯이 남성 역시 ´강함´을 강요당하는 성담론의 피해자이다. 남자든 여자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지배 계급의 헤게모니에 자발적으로 종속되어 억압받고 있다. 남성이라고 해서 모두 가부장적 성담론의 수익자가 아니라는 것, 이것이 바로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이다. 여성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여성해방이 비단 여성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억압에서 해방을 지향하는 모든 것´들의 해방, 즉 인간해방이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by 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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