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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여
미래의 인간, 자웅동체로 회귀하다
말리 도곤족의 창조신화를 보면 인간이 본래 양성의 영혼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돼 있다. 남성에게는 여성의 영혼이 음경포피에 존재하고, 여성에게는 남성의 영혼이 클리토리스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중적 영혼은 사회적 심리적 질서에 위협을 가하기에 충분하다. 할례와 음핵절제 등은 그러므로 쌍방의 영혼에 침투돼있는 타자성을 제거하는 종교적 의식이라 할 수 있다.
도곤족은 자연의 원형이 남녀 양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셈인데, 그들이 인간의 그런 이중적 영혼의 뿌리를 제거한 데에는 무엇보다 번식이 불가능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심리가 배어있다. 남성이 여성 속에 있고, 여성이 남성의 몸에 붙어있다면, 생태계의 질서라는 게 그 뿌리부터 흔들리게 된다. 사회적인 무질서가 발생하는 건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그건 단지 외적인 무질서뿐 아니라, 종족 전체의 심리적인 공황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남과 여」에서 저자 엘리자베트 바댕테르는 아니라고 말한다.

작가이며 철학교수인 엘리자베트 바댕테르는 남성과 여성의 양성성을 밝히기 위해 원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남과 여」가 인간 본원의 뿌리를 밝히려 한 저작이라고 할 때, 이러한 ‘상상적 소급’은 필연적이다. 그게 상상적인 까닭은 〈서문〉을 통해 글쓴이 스스로도 말하고 있듯, “그 기원의 문제가 하나의 방법적인 허구일 뿐 아니라 거의 알려진 바 없는 선사시대의 유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요한 건 ‘변화의 역사적 개관’이 아니라 ‘변화의 원동력’을 찾아내는 일이다. 아울러 남녀관계에서 필연적으로 개입되기 마련인 권력의 문제 또한 선형적인 역사의 개괄 보다는 시대마다 차별성을 띠고 있는 공생과 상보적인 대립관계들에 관한 정치한 분석을 필요로 한다. 「남과 여」는 그렇듯‘양성의 유사성’이라는 기본적인 발의로 시작해 역사 전반에 깔린 남녀의 상이성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으로 일관하고 있다. 물론, 그런 유구한 과정들을 지난하게 훑는 글쓴이의 의도는 다름아닌 미래의 ‘새로운 인간’을 탄생시키는 데 있다.

엘리자베트 바댕테르는 〈양성의 유사성〉이란 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남성적인 남성과 여성적인 여성의 틀은 산산히 부서져버렸다. 필수적 모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가능한 모델은 무한하다. 각자 자신의 특성을 고수하고 자기만의 남성성과 여성성의 비율을 지니고 있다. “유혹에 필수적인 양성간의 차이는 점점 집단의 판단에서 벗어나고 커플의 내면 속에서 자리잡게 된다.””(p.254)

이런 인식은 오랫동안 생득적인 것으로 정의되어온 남녀 각각의 고유 영역은 점차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전의 토대 역시 사라진 지 오래라는 글쓴이의 확신에서 비롯한다. 어떤 생물학적 기초에서부터 남녀가 자웅동체적인 유사성을 공유하고 있다면, 상호보완적이고 금을 긋듯 명확히 구분된 남녀 정체성의 개념은 애시당초 어불성설이 된다. 단순한 이론 차원이 아닌 생활세계의 근간에서부터 확산되는 이런 정체성의 파문은 단순한 남녀관계의 문제만을 넘어 세계를 인식하고 정초하는 개념 자체에 지각변동을 야기한다. 그리고 그 변동의 추이는 급박한만큼 절실해 보인다. 따라서 요즘 남성들을 향해 남성성의 거세를 힐난하거나 다소곳함을 추궁당하던 여성들이 어깨를 곧추세우는 걸 두고 말세지탄을 되뇌이는 건 미래를 부정하는 것일뿐 아니라, 과거를 영원한 암흑 속에 가두는 일에 다름아니다.

바댕테르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믿어왔던 바와는 달리 우정이 에로스적인 사랑과 병행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우정은 오히려 부드러움과 친절 속에서 에로스가 지속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해준다.”(p.282)고 말한다. 이건 기존의 결혼관이 내재하고 있는 사회적인 억압과 고립된 남녀 정체성의 한계를 무너뜨리는 발언이다. 바당테르에 따르면 결혼이란 ‘구원이거나 지옥’이다. 이때, 지옥의 편에서 관념화돼버리는 결혼은 ‘공생의 종말’을 부른다. 엘리자베트 바댕테르는 그런 파탄적인 공생을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적 인간의 모델을 제시한다. 그 미래의 인간은 다름아닌 할례와 음핵제거 시술을 당하기 전의 본래적 인간, 바로 남녀 양성이 한몸에서 ‘회복’된 인간이다


by 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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