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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성스러움
신성하고 보편적인 여성성의 아름다움
두 명의 여성이 여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단순한 대화가 아니다. 여성의 궁극적인 본질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이 논쟁은 차이를 좁히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각자의 차이를 보다 확고한 스타일로 드러내는 데 주력하는 듯 보인다. 그렇다고 두 여성이 서로를 불신하는 건 아니다. 반복하건대, 「여성과 성스러움」은 서로의 입장에 대한 항변이 아니라, 차이에 대한 긍정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그 차이는 동일한 성정체성에 대한 육체적인 믿음을 공유함으로써 발견된다. 차이의 발견으로 시작되는 공통분모의 확산, 혹은 그 역(逆). 제목에서도 나타나듯 사유의 방식이나 문체에서 확연한 차이를 드러내는 두 여성이 지향하는 바는 ‘여성적인 성스러움’이란 존재하는가, 이다.
역사가 예수의 탄생에서부터 시작된다면, 인간은 성스러움이라는 가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서구의 전통에서 원죄의 개념은 웬만한 실증론적인 범죄사유 정도는 초월할 만큼 치명적이다. 그런데 이런 역사의 주인공은 대부분 남성이다. 그 남성적 신성의 배후에서 균열을 야기하는 여성은 마녀로 취급된다. 서양이라는 태양의 제국에서 달의 음산한 기운을 빌려 어둠의 속내를 들춰내는 여성들. 그녀들은 남성적 질서로는 파악하기 힘든 혼돈과 분열의 얼굴을 띠고 있다. 그런 그녀들은 과연 어떤 성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는가?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카트린 클레망은 1996년 11월 7일 아프리카 다카르에서 8만 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거행된 가톨릭 미사에서 흑인 여성들이 울부짖으며 실려나가는 광경을 목격하고 강한 충격을 받는다. 클레망은 그것은 여성들 고유의 ‘신들림’이라 생각하고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식모살이’란 반항심을 촉발합니다. 신들림도 한 증상입니다. 여자들은 충분히 반항할만한 처지에 놓인 셈이고 엄숙한 미사는 안성맞춤의 기회가 됩니다. 그래서 그 ‘성스러움’이 튀어나오는 것입니다”

소위 ‘유태교적 무신론자’인 클레망은 마이너리티로서의 여성의 위치와 거기에서 행해지는 반항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기존 질서를 깨뜨려 또 다른 질서를 끌어들이는 것을 여성적 성스러움이라고 주장한다. 그 주장에 담긴 정치성 및 단호한 기개는 정글의 적들에게 자신의 영역을 선언하는 암컷 맹수의 포효처럼 맹렬하고 여지없다. 클레망은 그런 단호한 외침을 통해 고정된 체계에 균열과 틈을 벌려 새로운 창조의 공간을 펼쳐야 한다고 외친다. 그렇지만 거기에 응대하는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특유의 부드러움과 차분한 음악성으로 맞선다. 아니, 맞선다는 표현은 옳지 않다. 크리스테바는 두터운 여성적 원형의 깊은 우물에서 느릿느릿 끄집어올린 듯한 어조로 따뜻한 달의 훈기를 흘려 보낸다. ‘신들림’에 대한 클레망의 의견에 화답하는 크리스테바의 언어는 그래서, 그 의미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맹수의 울음이 더 크게, 그리고 더 아름답게 진동하도록 매듭을 풀어내는 유려한 배음(背音)처럼 여겨진다.

똑같은 무신론자지만,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기독교의 전통에서부터 입장을 다진 이른바‘기도교적 무신론자’라 할 수 있다. 그만큼 확고한 논리적 구조와 온유함을 바탕으로 한 정신분석이 그녀의 장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 크리스테바에게 ‘신들림’이란 기존의 언어적 체계 안에서는 분별하기 힘든 일종의 특수한 예외에 속한다. 그런데 그 예외는 존재와 부재, 육체와 정신, 열정과 이상의 교차점인 사랑, 즉 모성애에 기반한다. 그것은 상기한 두 대립항 사이에 끼인 긴장상태로 드러난다. 크리스테바는 바로 그런 상황에서 얻어지는 이행적 가치로부터 여성적 가치가 탄생한다고 말한다.

이런 많은 의견 차이에도 불구하고 「여성과 성스러움」은 서로의 입장을 벼린 남성학자들의 날카로운 논쟁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초지일관 이어진다. 1960년대 말부터 교유했던 이들은 철학과 정신분석이란 공통의 학문적 관심, 비슷한 정치성향, 아이를 낳아 길러본 경험, 세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던 생활에서 우러나온 동질감 등에 바탕한 인간적 유대를 거듭 확인한다. 때문에 이들은 각자의 주장을 뚜렷하게 드러내면서도 결국에는(또는 애초부터) 여성적인 성스러움이 종교적인 것이라기보다 여성성에 본질적으로 내재한 어떤 경험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여러 개의 작은 원을 다른 방향에서 돌고 돌아 하나의 큰 원으로 합치되는 듯한, 기존의 선형적인 독서의 논리에서 벗어나 안으로 휘고 밖으로 접히면서 의미의 폭이 끝없이 반향하는 독서. 두 여성학자의 편지는 그렇게 서로를 끌어안고 감싸면서 의미를 넓힌다. 그 끝이 보편적 여성성의 본질을 향하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by 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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