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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이들을 무죄로 하리라
군사법정에서는 졌지만 역사법정에서는 이겼다
변호사법 제1조 1항은 다음과 같다.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 이에 따르면 ‘인권변호사’는 사실 동어 반복인 셈이다. 그러나 한국의 암울했던 현대사에서는 그냥 변호사와 인권변호사가 분명 따로 있었다. 인권변호사들은 출세의 관문인 사법고시를 패스하고도 변호사의 의무를 다한 ‘죄’로 가시밭길을 걸어야만 했다. 불행한 이야기지만 당시 사법부는 3권 분립을 실현하는 사법부(府)가 아니라 정부에 사실상 종속된 사법부(部)였다.
‘박변’이라고 불리면서 그 자신도 인권변호사, 시민운동가로 활동해 온 박원순 변호사가 일제 시대부터 민변의 창립까지, 한국 인권변론의 역사를 정리한 책을 냈다. 특히 눈길을 끄는 부분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독재정권 시절 활약한 변호사들뿐 아니라 일제 시대 독립운동가들을 변호한 ‘시니어’ 인권 변호사들을 다룬 점이다. 김병로, 이인, 허헌 등 ‘3인 변호사’가 그들이다. 독립투사들이나 항일운동가들에 대한 변론에 적극 임했던 이들은 당시 ‘사상변호사’ ‘항일변호사’로 불리며 무료변론을 자청해 전국을 순회했다. 나아가 김병로와 허헌은 신간회 활동, 이인은 물산장려운동에 적극 참여한다. 해방 후 김병로가 초대 대법원장에, 이인이 초대 법무장관에 임명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군사정부가 들어선 후 일제시대 ‘3인 변호사’의 정신을 이어받은 사람들이 바로 홍성우, 황인철, 이돈명, 조준희 등 ‘4인방 변호사’였다. 이들은 민청학련 사건, 민주구국선언사건, 크리스찬 아카데미 사건, 남민전 사건 등 박정희 정권의 유신에 항거했던 지식인, 학생들의 시국사건의 대부분을 도맡아 변론했다. 물론 당시 재판은 요식행위에 불과했고 변론의 성과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변론이 문제가 되어 변호사가 법정 구속되는 ‘초법적’ 사건까지 벌어졌다. 대표적인 것이 민청학련 사건을 맡았던 강신옥 변호사로 “나도 직업상 변호인석에 앉아 있으나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피고인들과 뜻을 같이하여 피고인석에 앉겠다.”라는 발언이 빌미가 됐다.

그러나 최근 ‘인혁당’ 사건이나 ‘김대중내란음모사건’ 등이 재심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등 인권변호사들은 군사법정에서는 졌으되 역사법정에서는 이기고 있다. 이 책을 좀더 깊고 넓게 읽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독재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며, 소위 ‘박정희 신드롬’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개인의 인권이 왜 소중한 것인지, 역사는 결국 어떤 쪽의 손을 들어주는지, 이 책은 인권변론의 역사를 넘어 이런 화두들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by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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