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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력 |  | |
| 폭력의 문제는 인간의 역사와 끊임없이 함께 한 인간의 본성 중 하나이다. 본서는 이러한 폭력과 관계된 여러 저자의 Article들을 엮은 책으로써 이들 모두는 ´폭력´이란 공통된 주제에 접근하며 특히 권력에 의한 폭력에 관심한다. 본서의 저자 중 하나인 아리스토텔레스는 분쟁이나 혁명의 동기를 크게 두 가지로 말한다. 평등하기를 원하는 감정과 다른 하나는 자신이 타인보다 월등하다고 생각하는 데도 오히려 평등 상태에 놓인 현실 때문이라고 본다. 즉 자신과 타인은 차별되어져야 하며 자신이 더 가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폭력이 사용되어진다는 것이며 이와 유사한 사상을 대부분의 군주들이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또한 통치자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폭력을 끊임없이 사용한다고 저자들은 공통적으로 말한다. 타국에게 행하는 폭력행사(전쟁)를 통해 국민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각인시키며, 또한 이러한 타국과의 전쟁을 자국내의 힘(통치자의 추종자?조력자이면서도 한편으론 경계대상자들의 힘)의 분배에 교묘하게 이용하는 것이 바로 통치자들이라 말한다. 폭력의 가장 큰 문제로 제시하는 것은 바로 폭력이 힘에 의해 정당화되어진다는 것이다. 대다수의 민초들은 폭력행사자체를 폭력으로 자각하지도 못하고 있으며, 아무리 폭군이라 하더라도 그가 권좌에 앉는 순간부터 그는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인식되어진다는 것도 문제이다. 종교행위에 있어서 동물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제사행위 자체도 폭력의 한 형태이다. 인간의 폭력성을 동물을 향한 폭력으로 분출하며 이를 종교행위로 정당화시킨다는 것이다. 또한 이스라엘의 메시야 사상 역시 폭력성을 내포한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메시야란 바로 자신들을 억압하고 있는 세력을 힘으로 몰아내고 자신들의 자유를 선포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폭력성의 메시야를 평화의 메시야로 승화시킨 인물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가 십자가에 달린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바로 죠르즈 루오가 ˝의인은 향나무처럼 찍는 도끼에 향을 묻힌다.˝고 말한 것처럼... 폭력은 정당화되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굳이 정당화되어야 한다면 그 경우는 생존권에 위협이 되거나 폭력행사가 비폭력에 이바지할 경우에 한해야 할 것이다. 또한 본서가 주로 권력자들에 의한 폭력에 관심하기 때문에 권력자들 즉 어느 자리에 앉은 자들에 대해 말한다면, 모든 자리에는 그 자리에 앉을 능력만을 갖춘 자들이 아닌, 그와 함께 자격을 갖춘 자들이 앉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경우를 우리는 얼마 전 온 국민을 놀라게 했던, 모 386정치가들의 추태와 사회운동가로 이름을 날린 모 교수의 충격적 행태를 통해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들이 그 자리에 앉기까지의 투쟁과 발자취는 중요치 않다. 그러한 발자취로 인해 어느 자리(어느 정도의 힘을 행사할 수 있는)에 앉았을 경우가 더 중요한 것이다. 그들이 그 자리에 주어지는 힘을 올바로 사용하지 못한다면 그 힘의 행사는 바로 그 자리 밑에 놓인 자들에 대한 폭력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그들은 그 자리에 오를 능력은 되었지만 그 자리에 합당한 자격과 자질, 그리고 인격은 갖추지 못한 것이다. 아무튼 본서가 인간의 폭력성을 스스로 자각하게 만들며, 폭력 없는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하기를 바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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