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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일상 속에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대를 위해 비워둔 자리
공연을 하는 사람에게 ‘저녁 7시30분’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시각에 공연을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대학 때 은사로부터 공연시간은

관객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한다는 가르침을 단단히 받았던 터라

7시30분이 되면 가차없이 공연을 시작했다. 그 시각이 지나면, 공연에 방해를 줄까봐 아예

극장 문을 잠궈버렸다.

러시아 유학에서 갓 돌아온 1997년, 난 첫 작품 ‘결혼전야’를 무대에 올렸다.

공연 첫날 100석짜리 소극장에 500명 관객이 왔다. 400명을 그냥 돌려보내고 정시에 공연을

시작했다. 물론 극장입구에선 난리가 났었다. 신문기사를 본 부모님은 당시 건강이 안 좋았음

에도, 극장에 오시겠다고 했다. 아무래도 불안해서 친구인 박영훈 영화감독에게 승용차로

픽업을 부탁했다.

다음 공연 날, 두 자리를 비워놓고 기다렸다. 그런데 시간이 다 되도록 부모님은 오시지 않았다.

부모님은 공연 시작 5분 후에 도착했는데, 극장 문은 이미 닫힌 후였다.

“말도마라, 차가 여의도에서 꽉 막혀서 오도가도 못했다.”

“다음 주에 보시면 되죠.” 난 심드렁하게 답했다.

하지만 다음 주엔 어머니가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올 수가 없었다. 결국 어머니는 이 공연을 보지

못하고 이듬해 돌아가셨다. 아버지도 두 달 후에 따라가셨다. 까탈스럽게 시간을 따지던 내가

그때만큼 원망스러운 적도 없다.

이후 난, 공연 시작 시각에 너그러워졌다. 늦게 들어오는 관객을 위해 뒷자리를 비워놓을 정도의

여유도 생겼다. 혹, 영원히 못 볼 사람이 있을지 몰라서….

연극 연출가/전훈 (조선일보/일사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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