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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름다운 인연
심장병 소녀와 외국인 조종사의 아름다운 인연


대한항공 외국인 기장 디벤드라 돌라시아(52·영국인)씨는 7일 새벽 막 비행을 끝내고 인천공항에

착륙했다. 그런 뒤 설레는 마음으로 외출 준비를 했다.

그는 정복을 차려 입었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정복을 입은 모습이라야 아이가 쉽게 기억해내겠지….’

2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어떻게 변했을까. 그는 심장 근육이 굳어지는 ‘비후성심근증’으로 투병 중인

이혜진(당시 8세)양을 태우고 제주를 왕복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당시 혜진이는 의료진으로부터 “(몸이 약해) 수술할 경우 안전을 보장하기 힘들다”는 소견을 받아

하루하루 꺼져가는 생명을 이어가던 상태였다. 마지막으로 “비행기를 한번 타보고 싶다”는 혜진이의

소망이 수소문 끝에 돌라시아씨에게 닿았다. 시한부 소녀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줄 수 있다는 기쁨에

돌라시아씨는 기꺼이 수락했다.

한번 같이한 비행의 인연은 그걸로 끝나는 듯했다. 그후 가끔 돌라시아씨는 ‘그 아이가 지금 어떻게

됐을까’ 생각하곤 했다. 궁금증을 견딜 수 없게 되자 돌라시아씨는 직접 혜진이 소식을 여기저기 알아

보기 시작했다. 마침내 얼마 전 혜진이가 아직 건강히 살아 있다는 사실을 전해듣고 이날 오후 2시

월마트 인천점에서 재회하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돌라시아씨는 아버지 이보춘(56·김포시 양촌면)씨의 손을 잡고 나타난 혜진이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오, 혜진, 하이!”라고 외쳤다. 그러나 혜진이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심장병뿐 아니라 정신지체

장애까지 함께 앓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돌라시아씨는 물론 2년 전 행복했던 비행조차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벌써 열 살인데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시립장애인보호센터에서만 지내고 있는 혜진이는 그저 오랜

만의 외출이 즐거운 듯 싱글벙글하기만 했다. 돌라시아씨는 “(알아보지 못해) 약간 섭섭하지만 이렇

게 무사히 살아 있어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돌라시아씨는 혜진이를 뜨겁게 껴안고 볼에 입을 맞췄다. 혜진이도 비록 ‘낯선’ 아저씨지만 싫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와 주변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고맙다고 말씀드려야지”라고 다독거렸

지만 언어 장애까지 앓는 혜진이는 입술만 우물거렸다.

돌라시아씨는 이날 혜진이를 위해 같은 직장 외국인 동료들이 함께 모은 100만원을 전달했다.

기회가 있으면 “원하면 언제든지 비행기를 태워주겠다”는 약속도 덧붙였다. 생활보호자수당을 받아

혜진이를 힘겹게 보살피는 아버지 이씨가 대신 “고맙습니다”라며 연방 머리를 숙였다.

7년째 한국에서 조종간을 잡고 있는 돌라시아씨는 지난 98년부터 동료들과 월급에서 일정액을 떼내

‘외국인 승무원 자선기금(Foreign Crew Charity Fund)’을 운영하고 있다. 매달 100만~200만원씩

모아 지금까지 8500만원을 불우이웃을 위해 썼다. 90여명의 외국인 조종사들이 여기에 참여하고 있

지만, 각자 비행일정 때문에 함께 얼굴을 맞대고 모인 적은 없다.

돌라시아씨는 한국이 IMF 외환위기로 신음하던 시절 거리 노숙자들을 목격한 아들 딸이 “아빠, 우리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뭔가 해요”라고 조르면서 이 일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에서 번 돈

한국 사회를 위해 환원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돌라시아씨는 희귀병을 앓다 수술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지난 3일 숨을 거둔 김승호(2)군 사례를 들며

‘자선에 인색한 한국인’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다. 당시 한 해외 입양 전문 기관이 승호군을 위해

국내외로 온정을 호소했으나 모금액 2400만원 중 국내에서 걷힌 돈은 8만원뿐이었다. 돌라시아씨는

이날 카트 안에 혜진이를 태우고 쇼핑을 즐겼다. “사고 싶은 걸 다 골라보라”며 인형과 장난감을 듬뿍

집어줬다. 그는 “혜진이가 오래 건강하게 살아 오늘의 만남처럼 계속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조선일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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