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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야 피지 라끼라끼의 행복한 의사
피지에 사신다구요? 정말 좋으시겠습니다.”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할 때면 이제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허허허 웃습니다. 한국 관광객이 피지에 연간

만 명이나 온다니 한국인에게 피지는 아름다운 섬으로 인정된 모양입니다. 피지는 분명 아름다운 휴양지

입니다. 더운 지방에서 자라는 야자와 코코넛 나무들이 시원스레 뻗어 있고, 주변의 물은 맑고 깨끗해 물

속을 노니는 작은 물고기까지 훤히 보입니다. 우림에서 묵상에 잠겨 창조의 신비를 맛볼 수도 있으며,

300종이 넘는 야생난들과 피지의 작은 야생 앵무새들을 만날 수도 있고, 산이 많아 하이킹은 물론 많은

개울과 폭포들이 있어 언제 어디서나 산림욕을 즐길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럼 날마다 휴양 온 마음으로 사시겠네요?”

하고 묻곤 합니다. 그럴 때면 나는 슬그머니 내가 살고 있는 피지의 오지 마을 ‘라끼라끼’에 대해 이야기

하곤 합니다.

“그럼요. 신선한 바람이 있죠. 깨끗한 바다도 있습니다. 밤이고 낮이고 집안까지 들어오는 도마뱀과 벗하

며 살구요. 바퀴벌레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여기 온 초기부터 아내를 괴롭히던 도마뱀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우리집을 제 집 드

나들 듯하고 바퀴벌레도 이제 아예 살림을 차린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휴양지와는 거리가 먼 오지 마을

입니다. 그 때문일까요? 무엇보다 이곳 사람들은 순수하고, 또 그만큼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해 무지하기

까지 합니다.

이곳 라끼라끼의 산모들은 아이를 낳는 것을 ‘배가 아프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몸에 병이 있어도, 그래

서 기형아를 낳거나 사산을 해도 두려워하기만 할 뿐 예방을 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병

원은 버스로 4시간이나 가야 있기 때문입니다. 이곳에 와서 내가 산부인과 의사라는 게 얼마나 감사하던

지요. 라끼라끼의 산모들에게 건강하고 아름다운 아기를 선물해 줄 수 있어서 말입니다.

아이야, 어서 나오너라

한국에서나 피지에서나 생명의 탄생은 신비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산모의 몸에서 아이가 힘차게 나오는

순간은 하늘이 열리는 것처럼 눈물나는 일입니다. 처음 원주민 아기를 받았을 때 아이의 까만 눈동자와

보슬보슬한 머리가 기억에 남습니다. 힘차게 울어대던 아이의 첫 울음과 건강하게 뛰던 아이의 심장. 얼

마나 아름다운 조물주의 선물인지요. 출산한 아이를 안고 돌아가는 산모들은 내 앞에서 머리를 몇 번이

고 숙입니다.

“Vinaka Vakalevu(비나카 바칼레부-정말 감사합니다.)”

제 나라 말로 연신 감사를 표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집니다.

라끼라끼에 하나밖에 없는 병원이지만 아직도 부족한 장비가 너무 많아서 병원이라고 하기엔 허술합니

다. 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더 심했었지요. 아직도 나는 그 시절, 의료장비만 있었더라면 살릴 수 있

었던 그 산모를 잊지 못합니다.

이 곳은 우기가 되면 폭우로 인해 저지대가 침수되어 많은 피해를 보곤 합니다. 특히 도로가 침수되면 교

통이 두절되어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내가 이 곳에 오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1998년 3월에 도

로가 침수되어 환자가 병원에 올 수도 없고 병원의 중환자를 후송할 수도 없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근처 마을에 있는 조산병원으로 다급한 전화가 왔습니다.

“난산이라 이곳에서 분만할 수 없으니 이 선생의 병원으로 보내겠소.”

비 때문에 도로가 침수돼 물이 빠진 후에야 트럭에 실려 온 산모는 온몸이 물에 젖어 있었습니다. 비를 맞

은 것 같지만은 않았습니다. 짭조름한 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습니다.

“이 산모, 진통을 느끼자마자 병원을 찾아 자기 마을에서부터 수영을 해서 왔답니다. 물이 불어나서 차

로 올 수 없었나 봅니다. 어떻게 저 몸을 하고 올 생각을 했는지…. 얼마나 악착같이 왔는지 병원에 도착

하자마자 쓰러져 버렸다는군요.”

나는 너무 놀라 그저 산모의 얼굴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는 날에 만삭의

몸으로 수영을 하다니. 아이를 살리기 위해 자기 몸을 돌보지 않다니. 산모의 몸은 고통스러워보였지만

얼굴에는 희망의 빛이 있었습니다.

‘우리 아이를 살려 주세요.’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병원에 도착해서 겨우겨우 분만을 했지만 산모의 몸에서 끝없이 피가 터

져 나왔습니다. 나의 마음은 다급해졌습니다.

“하나님, 안 됩니다. 이건 약물로는 치료할 수 없습니다. 아이를 살리기 위해 저 몸으로 수영까지 해서 병

원에 온 사람입니다. 살려 주세요.”

간절하게 기도하며 버스로 네 시간 걸리는, 수술이 가능한 종합병원에 헬리콥터 요청까지 했지만

“지금은 악천후 때문에 헬리콥터를 보낼 수 없습니다.”

하는 답변만 되돌아왔습니다. 산모의 몸에서 출혈은 계속되었습니다. 이러다간 설령 헬리콥터가 오더라

도 그 전에 죽을 것 같았습니다.

“수혈할 준비를 해주세요.”

아무도 수혈할 사람이 없었지만 나는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하고 말았습니다.

‘그래, 나는 남을 위해 살려고 이곳에 오지 않았던가!’

간호사가 준비한 바늘을 내 팔뚝에 꽂았습니다. 내 몸에서 나온 피가 산모에게 들어갔습니다. 내 피라도,

내 피라도 산모의 생명을 조금만 더 연장시킬 수 있다면 아낌없이 주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피가 더 빨

리 나가도록 펌프질이라도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내 몸에서 빠져나가는 피보다 산모의 몸에서 나오는 피가 더 많았고, 결국 산모는 하나님 곁으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나는 산모가 눈을 감는 순간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힘들게 낳은 아이도 오랜

난산의 영향 때문인지 엄마와 함께 눈을 감고 말았습니다. 의술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내 능력이 없어서

도 아니고, 단지 수술할 만한 의료 시설이 부족했기 때문에. 단지 그 이유 때문에 산모는 아기를 가슴에

안아보지도 못하고 떠난 것입니다. 나는 그날 오랫동안 기도했습니다.

“이 일로 인해 내가 낙담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더욱 힘을 내서 다른 산모를 돌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나는 행복한 사람

“어머, 신기해라. 아기가 움직이네.”

오늘도 산모들이 초음파 기계를 통해 보이는 아이 모습을 보면서 놀라고 기뻐합니다. 여기 있는 동안 고

통의 기억, 상처의 기억들도 있었지만 산모들을 만날 때마다 내가 한국의 병원이 아니라 피지의 오지 마

을 라끼라끼의 산부인과 의사로 있다는 게 행복합니다. 내가 아니었다면 저들은 아마 지금처럼 안전하게

아이를 낳을 수 없었을 겁니다.

‘남을 위해 살라.’는 아버지의 말씀이 나를 의대에 보냈고, 더 늙기 전에 그 말씀을 따라야겠다는 생각이

마흔이 다 된 나를 피지로 이끌었습니다.

한국인도 없고, 한국 책도, 한국 음식도 없지만 라끼라끼는 내가 평생 고향처럼 생각하며 살고 싶은 곳입

니다. 내 건강이 다해, 목숨이 다해 이 땅을 떠나 하늘로 갈 때까지 이곳 산모들과 함께 울고 웃을 것입니

다. 나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오늘도 귀한 생명을 세상에 무사히 내 보낼 수 있다니.

이거야말로 그분이 하시는 일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돕는 것이 아닐런지요.

돈도, 명예도, 권력도 없지만 나는 그분과 동역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 필자는 부산침례병원에서 산부인과 전문의로 일하다가 ‘남을 위해 살라’는 어린 시절의 꿈을 좇아 국제협력단의 파견으로 피지의 오지 마을 라끼라끼로 왔다. 한국인이라곤 부인과 단 둘 뿐인 라끼라끼에서 외로움을 출산의 기쁨과 맞바꾸며 날마다 행복하게 살고 있다.

[낮은울타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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