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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하는 좋은글 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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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둘기 아줌마 (조태봉) |  | |
| 저만치 강 안개에 젖은 성수대교가 바라다보이는 한강 시민공원입니다.
비둘기들이 구구구 모여들었습니다.
“어이쿠, 요 녀석 좀 보게. 날래기도 하지.”
비둘기 한 마리가 훌쩍 날아올라 아줌마 어깨 위에 올라탔습니다. 아줌마는 모이를 한줌 집어 부리 앞에 대주었습니다.
“어이구구, 착하기도 해라. 그래 그래, 잘 먹어야 얼른 쑥쑥 크지.”
비둘기는 아줌마의 손바닥에 부리를 닦아가며 부지런히 모이를 쪼아 먹었습니다. 아줌마는 손바닥이 간지러워 자꾸 웃었습니다. 앙상한 겨울 나무들도 기분이 좋은가 봅니다. 춤이라도 추는 건지 바람을 타고 출렁출렁 온몸을 흔들어 댔습니다.
아줌마는 새까맣게 모여든 비둘기들에게 휘휘 모이를 뿌려 주었습니다. 나이 많은 비둘기도, 젊은 비둘기도, 아직 어린 티를 벗지 못한 비둘기도 모두들 머리를 조아리며 먹이를 쪼아 먹었습니다.
아침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아줌마와 비둘기들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지나갑니다. 낯이 익은 사람도 몇몇 보입니다.
“오늘도 나오셨구랴. 부지런도 하시우.”
인사를 건네기도 합니다. 아줌마는 활짝 웃어보일 뿐입니다.
사람들은 처음에 말이 많았습니다. 아줌마를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저 여잔 누군데 허구한 날 비둘기 모이만 주러 다니나?”
“모르지 뭐. 할 일이 없는 여자거나, 아니면 비둘기 보호 단체에라도 있나 보지.”
하지만 아줌마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공원에 나와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었습니다. 나중에서야 아줌마의 속마음을 알게 된 사람들은 아줌마를 달리 보기 시작했습니다.
“아줌마, 참 대단하시우. 하루 이틀도 아니고.”
어떤 사람들은 아줌마와 함께 모이를 뿌려 주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면 아줌마는 더 없이 행복하기만 했습니다. 비둘기들에게 구구구 하면서 손바닥의 모이를 먹이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마냥 좋기만 하니까요.
“자, 자.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나눠 먹어야지. 그래, 그래. 옛다.”
아줌마는 서로 더 많이 먹으려고 부리를 맞대며 달려드는 비둘기들을 떼어 놓았습니다. 해님도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바라보았습니다.
한 무리의 아이들이 비둘기들을 가로질러 달려갑니다. 모이를 쪼던 비둘기들이 화들짝 놀라 날개짓을 하다가 다시 두리번거리며 모이를 찾습니다.
“다리 근처에서 연날리면 안 된다.”
아줌마가 소리쳐도 아이들은 들은 척도 않고 달려갔습니다.
“햐, 귀엽다.”
연을 날리러 공원에 나온 형들을 따라 달려가던 솔이가 비둘기에 정신이 팔렸습니다. 저만치 달려가던 형들이 솔이를 부릅니다. 그래도 솔이는 비둘기 곁에 쪼그리고 앉아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줌마, 이 비둘기 전부 아줌마 거예요?”
솔이는 아줌마가 부러웠습니다. 이렇게 많은 비둘기들을 데리고 놀 수 있으니 말이에요.
“그럼, 모두들 귀여운 내 딸이지.”
아줌마 얼굴에 미소가 번집니다.
“에이, 거짓말. 비둘기가 사람인가요, 뭐.”
솔이는 아줌마가 자기를 놀리는 것 같아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이를테면 딸처럼 사랑한다는 거야. 한식구처럼 같이 사는 거지.”
아줌마가 손바닥으로 모이를 비둘기 부리 앞에 대주며 구구구 소리를 냅니다. 솔이도 구구구 흉내를 내면서 비둘기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하지만 비둘기들이 놀란 듯이 화들짝 날개를 치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자, 이걸로 이렇게 해봐.”
솔이는 아줌마가 나눠 준 모이로 아줌마처럼 해봅니다. 비둘기들이 머뭇머뭇거리며 다가왔습니다.
“우와, 아줌마 비둘기 좀 봐요. 내가 주는 모이를 받아먹어요.”
솔이는 신이 났습니다. 찬 강바람도 입김을 후후 불며 출렁출렁 불어왔습니다. 하늘 높이 오르려 발길을 서두르던 해님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따뜻한 미소를 보내 주었습니다.
“아줌만 언제부터 비둘기랑 같이 살았어요?”
아줌마는 그저 소리없이 웃을 뿐입니다. 솔이의 물음엔 대답도 않고 멀거니 강 저편을 바라보았습니다. 꼭 무슨 생각에잠긴 듯한 얼굴로 말입니다.
아줌마가 비둘기들에게 모이를 주기 시작한 건 지난 가을 무렵부터입니다.
어느 날 우연히 만난 작은 아기 비둘기 때문이지요.
그 날은 성수대교가 보수를 끝내고 다시 완공되는 날이었습니다. 아줌마는 성수대교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꽤나 많이 흘렀나 봅니다. 강 저편 하늘에 붉은 노을이 물들기 시작하고 천연스레 서 있는 다리에도 붉은 빛이 감돌았습니다.
아줌마는 꼼짝도 하지 않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이렇게 살아 뭐 해. 이젠 아무도 없는 걸. 소연이도 떠나고. 나도 따라 죽는 게 났지.”
아줌마는 정신나간 사람처럼 중얼중얼 혼자말을 했습니다. 훌쩍훌쩍 눈물이 나고, 자꾸 소연이가 보고 싶어졌습니다.
소연이는 아줌마에게 하나뿐인 딸이었습니다. 아줌마는 소연이와 단둘이서 살아야 했습니다.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소연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남편을 잃었으니까요. 시름시름 앓던 남편이 죽고 나자, 아줌마는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절망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줌마는 혼자 힘으로 딸을 키워야 했습니다. 모질게 마음먹고 딸 하나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키우자고 맹세했답니다.
아줌마는 식당일이건 건물 청소부건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을 했습니다. 힘든 일에 몸이 아프고 지쳐도 무럭무럭 자라는 소연이를 보면 힘이 났습니다. 다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일터로 나갔습니다. 오직 딸만을 믿고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소연이가 중학생이 되더니, 또 어느 새 고등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첫 등교하는 날 아침, 아줌마는 집을 나서는 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그만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그동안 살아온 세월이, 아무 탈없이 딸내미를 키워준 세월이 고마워서 울었답니다. 아무 티 없이 자라난 소연이, 그 이쁜 모습도 못 보고 저 세상으로 간 남편이 야속해서 한없이 울었답니다.
하지만 그것도 한 순간이었습니다. 아줌마에게 또다시 너무도 큰 불행이 찾아왔습니다. 세상이 아줌마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힘겹게 키워온 마지막 희망인, 아줌마에겐 하나 밖에 없는 딸마저 빼앗아 간 것입니다.
“엄마, 다녀올게요.”
그 날 아침도 소연이는 여느 때나 다름없이 집을 나섰습니다. 아줌마도 늘 그러듯이 차조심, 길조심을 누누이 일러대며, 딸의 등교길을 배웅했습니다.
그런데 생글생글 웃는 그 얼굴이 마지막이 될 줄이야. 왜 하필 그 시간에 다리가 무너졌을까, 왜 그 때 꼭 그 다리를 건너야 했는지.
“아니야,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우리 소연이가, 소연이가!”
아줌마는 거의 실성한 사람이 다 되었습니다. 하루 종일 성수대교 근처를 서성이며 아픈 마음을 달랬습니다. 행여라도 소연이가 살아나 돌아올 것만 같아서 다리 위에도 가 보고, 강둑에도 내려가 보았습니다. 뚝 부러져 나간 다리를 노려보며 세상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부질없는 일입니다. 아줌마에겐 아무 희망도 남지 않았습니다. 더는 살 의욕도, 살아갈 용기도 나지 않았습니다.
노을만이 붉게 타오를 뿐입니다. 끊어진 다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다시 이어졌지만, 아줌마 가슴 속에 끊어진 다리는 어떻게 다시 이어야 할까요?
아줌마는 결심했습니다. 죽어야겠다고. 죽어서 남편 곁으로, 소연이 곁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마침내 아줌마는 다리 난간 위에 몸을 실었습니다. 이제 손을 놓고 몸을 강물 위로 내던지기만 하면 됩니다. 검푸른 물결 위로 노을빛이 붉게 비치며 눈앞에 어른거렸습니다. 이젠 모든 것이 끝이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도 다 있지요. 다리 난간 저 아래쪽에 뭔가가 대롱대롱 매달려 푸드덕거리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순간 아줌마는 죽는다는 생각보다도, 저게 뭘까 하는 호기심이 앞서는 거였습니다.
그건 비둘기였습니다. 주먹만한 아기 비둘기였지요. 아마도 날다가 다리 난간에 얽혀 있는 연줄에 걸린 모양입니다. 연줄에 묶인 다리를 풀려고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잘 안 되는 모양이었습니다.
“어이구, 불쌍한 것. 저 가는 다리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살갗을 파고 드는 질긴 연줄에 금방이라도 비둘기의 다리가 끊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아줌마는 소연이가 떠올랐습니다. 끊어지는 다리에 매달려 버둥거리다가 끝내는 물 속으로 떨어진 버스에 갇혀 마지막 순간까지 발버둥쳤을 소연이. 그 비둘기가 꼭 자기 딸인 것만 같았습니다.
아줌마는 자기도 모르게 다리 난간에서 내려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꼬인 연줄을 풀면서 조심조심 끌어올렸습니다.
아기 비둘기는 한동안 정신이 없어 보였습니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지요. 아줌마는 땅거미가 지도록 그 옆에 쭈그려 앉아 아기 비둘기를 지켜 주었습니다.
다리 아래 공원 쪽으로 날아가는 비둘기를 바라보다가 아줌마는 그 자리에서 돌아섰습니다.
죽고 싶었던 마음은 이미 싹 달아나 버리고 난 뒤였습니다.
아줌마는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막 뛰어내리려는 그 순간 왜 그 비둘기가 눈에 띄었을까.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것일까. 또 그 때 왜 소연이의 모습이 떠올랐는지.
다음날, 아줌마는 다리 위로 다시 나갔습니다. 아기 비둘기를 만났던 자리에도 가보았습니다. 고개를 죽 빼고 난간 너머를 살펴보았습니다.
“에구머니, 세상에. 이게 다 뭐야.”
아줌마는 쭈그리고 앉아 난간의 아래 부분 너머로 팔을 죽 뻗어 손에 걸리는 것들을 끄집어 올렸습니다. 난간 아래에 얽혀 있던 질긴 연줄이 아줌마 손에 끊어져 나갔습니다.
아줌마는 그 근처 난간에 걸린 연줄도 모두 치웠습니다. 어떤 연줄에는 죽은 지 이미 오래인 비둘기 시체도 딸려 나왔습니다.
“그 비둘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다리가 몹시 아플 텐데.”
아줌마는 공원으로 내려갔습니다. 비둘기 몇 마리가 돌아다니고 있을 뿐 그 비둘기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생각다 못해 아줌마는 비둘기 모이를 사다가 뿌려 주며, 구구구 하고 비둘기들을 불러모았습니다. 비둘기들이 여기저기서 구구구 하며 모여들었습니다.
“배들 고프겠구나. 어이 먹어라, 자.”
아줌마 주위는 금세 비둘기로 가득했습니다.
한참 후엔 다리를 절뚝이며 모이를 쪼아 먹는 작은 비둘기 한 마리도 눈에 띄었습니다. 아줌마는 반가웠습니다.
그 날 이후로 아줌마는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공원에 나왔습니다.
비가 오는 날엔 우산을 쓰고, 눈이 오면 눈사람이 되어 비둘기들을 찾아왔습니다.
아줌마는 식당을 찾아다니며 손님들이 남긴 밥을 거둬다가 비둘기들 모이를 만들었습니다.
밥을 햇볕에 말려 잘게 부수고 과자 부수러기 같은 것과 섞으면 고소한 모이가 되지요. 또 틈나는 대로 다리 난간이나 나뭇가지에 걸린 연줄도 청소해 줍니다. 다리 밑 둥지에 쌓여 있는 비둘기 똥은 거둬다가 화분에 뿌려 비료로 쓰지요.
아줌마는 비둘기와 함께 사는 것이 즐겁기만 합니다. 비둘기들이 딸처럼 여겨집니다. 마음의 위안과 사랑을 나누었던, 하나뿐인 딸 소연이처럼 말입니다.
아줌마는 그렇게 ‘비둘기 아줌마’가 되었습니다.
벌써 돌아갈 시간이 되었나 봅니다. 비둘기들이 날개짓을 하며 일제히 날아오릅니다.
“아줌마, 비둘기들이 배가 부른가 봐요. 모이도 더 안 먹고 다른 데로 가려나 봐요.”
“응, 그렇구나. 아침을 먹었으니 이젠 다리 아래 보금자리로 돌아갈 모양이다.”
솔이는 떠나가는 비둘기들이 아쉬운 듯 바라봅니다. 몇몇은 머리 위쪽에서 빙빙 맴을 돌다가 뒤늦게 친구들을 따라 날아가기도 했습니다.
아줌마는 비둘기들이 날아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동안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솔이도 손을 흔들었습니다.
“내일 또 올 게. 비둘기들아, 안녕.”
그 때였습니다.
“에구머니, 저런…… 저런.”
갑자기 아줌마가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아줌마, 왜 그래요?”
솔이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줌마가 왜 그러는지 비둘기들이 날아가는 쪽 하늘을 살펴보았습니다.
“어, 저건…….”
그건 바로 연이었습니다. 갖가지 연들이 햇살에 반짝이며 하늘에서 서로 엉겨붙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솔이와 함께 놀러온 형들이 연싸움을 벌이고 있는 모양입니다. 거센 바람에 부풀고 서로의 연줄에 엉켜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위태로운 광경이었습니다.
그 연줄이 내는 소리, 삐지지찌잉 하는 소리가 아줌마의 고막을 날카롭게 찔러대는 것만 같았습니다.
“얘들아, 안 돼! 그 쪽은 위험해! 연줄에 걸린단 말야!”
아줌마가 비둘기들에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솔이는 그제서야 형들하고 연을 날리러 온 게 후회되었습니다. 아줌마에게, 비둘기들에게 미안했습니다.
“형, 그만해! 비둘기들이 다친단 말야!”
솔이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그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헐레벌떡 손사레를 치며 달려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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