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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리암 스님 ( 봉현주 ) |  | |
| 요즘 하와산에는 고사리가 한창이다. 흰 솜털로 감싸인 고사리의 어린잎은 꼭 아기 주먹 같다. 산나물 중 제일 먼저 나는 것은 쑥부쟁이와 두릅이다. 이어 원추리, 취나물, 고비 등이 차례로 난다. 며칠 있으면 참나물, 취나물, 모시대, 잔대 등도 날 것이다.
상구는 고사리를 한 짐 짊어지고 산 중턱에 있는 보리암으로 내려갔다.
‘오늘은 얼마나 줄까, 할아버지 고기 좀 사드리게 많이 달라고 해볼까?’
그러나 상구는 고개를 젓고 말았다. 사주는 것만도 고마운데 무슨 소리냐고 고함이나 치지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지난번에도 산에 지천으로 널린 것을 뜯어다 팔아먹는다고 얼마나 잔소리를 하던가.
“산나물 사려! 산나물 사려!”
상구는 보리암 반대편 기슭에 대고 소리쳤다. 암자 안쪽에 대고 소리치면 시끄럽다고 야단치고, 가만히 서 있으면 꿀 먹은 벙어리냐고 야단쳐서 궁리 끝에 생각해 낸 방법이다.
“어디 풀어봐.”
언제 나왔는지 뒤통수 쪽에서 주지 스님 말소리가 들렸다. 상구는 두말 않고 보따리를 풀었다.
“또 고사리냐!”
오늘도 역시 주지 스님은 버럭, 소리부터 질렀다.
“내가 백이 숙제(중국 은나라의 왕족. 주나라 무왕에 의해 나라가 망하자 무왕의 땅에서 나는 곡식을 먹을 수 없다며 수양산으로 들어가 고사리를 캐 먹다가 굶어죽음)인 줄 아는 모양이지, 만날 고사리만 가져오게. 너 백이와 숙제가 수양산에서 왜 죽었는지 알아? 고사리 먹고 암에 걸려 죽은 거야. 고사리 많이 먹으면 암에 걸린다잖아.”
“우려내면 괜찮대요.”
상구는 나물 하다 만난 아주머니에게 들은 소리를 중얼거렸다.
“더덕이나 좀 캐 오지 않고. 너 더덕으로 곡차 담그면 향이 얼마나 좋은 줄 알아?”
“스님도 술 마셔요?”
“술이 아니라 곡차라니까.”
‘엉터리 땡중!’
상구는 아랫입술을 비죽거렸다.
주지 스님의 더덕 타령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두릅을 내놓아도 더덕, 취나물을 내놓아도 더덕, 어느 것을 내놓아도 더덕 타령이다.
그러나 더덕 구하기가 산삼 구하기만큼 어렵다는 것은 주지스님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 그러는 모양이었다.
“옛다, 받아라. 다음엔 꼭 더덕을 캐 오너라.”
주지스님이 고의춤에서 돈을 꺼내 내밀었다.
“네.”
상구는 대답과 함께 주지스님이 내민 돈을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보나마나 오천 원 짜리 한 장일 것이다.
“다음부턴 거스름돈 좀 갖고 다녀라.”
주지 스님의 잔소리를 뒤로 하고 상구는 달음질쳐 산을 내려왔다.
며칠 사이에 할아버지 병세가 더욱 심해졌다. 한번 기침을 시작하면 쉬 멈추지 않았고 가래도 심했다. 할아버지 병은 결핵이었다.
“젊었을 때는 결핵균에 감염되었더라도 잘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지요. 그러다 늙어 허약해지면 나타난답니다.”
보건소 소장이 약을 건네주며 할아버지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상구는 보건소 소장이 시킨 대로 할아버지가 내놓은 휴지를 태우고 수건은 삶았다. 함부로 아무데나 버리거나 도랑물에 빨았다가는 큰일 난다고 엄포를 놓았기 때문이다. 삶은 수건은 방안에 매달아 놓은 빨랫줄에 널었다.
“장기판 가져오너라.”
벽에 기대 앉아 있던 할아버지가 턱으로 방안 한 구석을 가리켰다.
“오늘은 그냥 쉬세요.”
“가져와.”
아버지가 죽고, 엄마가 집을 나간 뒤 상구는 학교를 그만두었다. 5학년 2학기 때였다. 그때부터 할아버지는 상구에게 장기를 가르쳤다. 할아버지가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상구는 장기판 위에 올려져 있는 돌부처를 내려놓았다. 산에 묻혀 있는 것을 나물하다 발견하고 캐 온 것이었다.
“오늘은 차를 떼 주마.”
할아버지는 차를 떼어 방바닥에 내려놓았다. 처음에는 차와 포와 상을 한꺼번에 떼 주었다. 그러다 차와 포를 떼 주고, 마침내 차만 떼 주는 데까지 이른 것이다.
“요즘도 주지 스님이 보리암으로 오라고 하시니?”
할아버지가 졸을 밀어내며 물었다.
“이젠 그런 말 안 해요.”
병을 옮겨 놓으며 상구가 대답했다.
“보리암으로 들어가는 게 너한테는 좋을 텐데.”
할아버지가 다시졸로 길을 잡으며중얼거렸다. 상구는 그졸을 포로 잡았다.
보리암 주지스님이 상구를 상좌(제자)로 삼고 싶어한다는 것은 할아버지도 알고 있었다. 상좌로 오기만 하면 밥도 먹여주고 학교도 보내준다고 했다.
그러나 상구가 ´할아버지는 어떡하고요!´ 하고 소리를 지른 뒤부터는 상좌란 말조차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대신 잔소리와 타박이 더 심해졌다. 특히 산나물을 해 가는 날이면 어찌나 잔소리를 하는지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산나물 할 때는 발 밑을 잘 보고 어린순을 밟지 않도록 해라, 뿌리째 뽑지 않도록 해라, 산나물은 손으로 뜯어야 뿌리를 다치지 않는다, 한 번 딴 순에서 나온 싹은 다시 따지 말아라, 특히 두릅은 다시 올라 온 순을 따면 죽는다는 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언제인가 모르고 독초를 따 갔을 때이다.
˝네가 날 죽일 셈인가 보구나!˝
주지스님은 독초를 상구 코에 바짝 들이댔다.
˝냄새 좀 맡아봐라, 이런 걸 너 같으면 먹을 수 있겠냐?˝
아닌 게 아니라 주지스님이 들이민 것에서는 지독한 냄새가 났다. 그 때
상구는 나물과 독초를 구별하는 첫 번째 방법이 바로 냄새 맡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나물은 향긋한 냄새가 나지만 독초는 역겨운 냄새가 났다.
˝냄새로 잘 모르겠으면 곤충들이 먹은 흔적이 있나 살펴봐. 곤충이 먹을 수 있는 건 사람도 먹을 수 있거든.˝
상구는 할아버지에게 두 번이나 연거푸 이겼다.
˝이젠 맞둬도 되겠어요.˝
차와 포와 상을 떼고도 내리 지기만 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기분이 좋았다.
˝좀 누워야겠다.˝
할아버지는 피곤한 듯 자리에 누웠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괜히 장기를 두었다 싶었다.
˝읍내에 좀 갔다 올게요.˝
상구는 그동안 모아놓은 돈으로 고기를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요즘 들어 할아버지는 부쩍 기운이 없어 했다. 결핵은 잘 먹어야 한다는데 만날 나물만 먹으니 기운이 날 리 없었다. 그러나 상구가 버는 돈으로는 쌀값 대기에도 벅찼다.
보건소에 들러 약을 타고 돼지고기를 사고 나니 벌써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상구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할아버지는 자리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상구는 서둘러 밥을 짓고 찌개를 끓였다. 이미 주위는 깜깜해져 있었다.
˝할아버지, 진지 드세요.˝
밥상을 들고 들어갈 때까지 할아버지는 그대로 누워 있었다.
˝할아버지, 진지 드시고 주무세요.˝
잡아 흔들어도 눈을 뜨지 못했다. 온몸이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으며 간간이 앓는 소리도 냈다. 가끔 있는 일이었다. 상구는 수건을 적셔 땀을 닦아냈다.
할아버지는 밤새도록 헛소리를 했다. 상구를 부르기도 하고 아버지를 부르기도 하고 엄마를 부르기도 했다. 간혹 알지 못하는 사람도 불렀다. 그럴 때마다 상구는 꾸벅꾸벅 졸다가 깜짝 놀라 깨어났다.
´주지스님이라도 부를까.´
아무래도 할아버지가 심상치 않았다. 그러나 의사도 아닌데 주지스님이 어떻게 할까, 한밤중에 올 리도 없겠지만.
상구는 불을 켰다.
˝어어어!˝
형광등 불빛에 할아버지가 얼굴을 찡그리며 헛소리를 했다. 상구는 옆에 놓인 수건을 들어 할아버지 얼굴을 닦았다. 아직 동이 트려면 멀었는데, 답답했다.
그 때 장기판 위에서 희미하게 미소짓고 있는 돌부처가 눈에 들어왔다.
˝부처님, 우리 장기 한 판 둬요.˝
상구는 수건을 던져놓고 장기판을 끌어냈다.
˝부처님이 이기면 내가 주지스님 상좌로 가고, 내가 이기면 우리 할아버지 낫게 해 주기요.˝
˝베개 위에 돌부처를 올려놓고, 장기알을 골랐다.
˝ 부처님은 한나라 하세요, 난 초나라 할테니.˝
상구는 혼자서 파란 알과 빨간 알을 모두 두었다.
˝부처님, 상 받으세요!˝
먼저 상구가 공격했다.
˝마 받아라!˝
부처님은 마로 상을 잡고 병을 공격했다. 상구는 병을 앞으로 밀어냈다.
그러자 부처님이 차로 공격해 왔다.
혼자서 부처님 것까지 두자니 머리를 두 배로 써야 했다. 그러나 상구는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않고 정직하게 두었다.
˝자, 포장이오!˝ ˝ 이크, 큰일났군!˝
부처님은 상구의 포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제가 이겼죠!˝
˝분명히 제가 이겼어요!˝
˝...˝
그러나 부처님은 대답 없이 희미하게 웃을 뿐이었다.
상구는 갑자기 한심한 생각이 들어서 그 자리에 벌렁 드러누웠다. 그 사이에 창 밖이 희붐해지고 있었다.
˝아범아, 어어어!˝
할아버지는 여전히 헛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래, 내가 졌다!˝
부처님이 장기알을 꽝, 내려놓으며 소리쳤다. 꿈인지 실제인지 모를 정도로 분명한 소리에 상구는 벌떡 일어났다. 어느 새 날이 훤하게 밝아 있었다.
˝이제 일어났니?˝
놀랍게도 주지 스님이 와 있었다. 주지 스님은 할아버지 곁에 않아서 땀을 닦아주고 있었다.
˝해가 중천에 뜨도록 산을 밟는 발자국 소리가 없기에 내려와 봤더니, 큰일날 뻔했구나. 이제 곧 병원에서 사람들이 올 게다,˝
주지 스님 말대로 곧 구급차가 도착하여 할아버지를 실어갔다.
˝그 동안 여러 군데 말을 해 놨더니 어제 저녁에야 소식이 왔구나. 할아버지는 병원에서 검사 마치는 대로 요양원으로 가실 거다. 무의탁 노인들을 위해 나라에서 무료로 운영하는 곳인데, 거기가시면 일이 년간은 무료로 치료받으실 수 있을거다.˝
이제까지는 엄마가 주민등록에 있어서 할아버지가 무의탁 노인으로서 보호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 주지 스님의 설명이었다.
˝넌 이제 어떡할 거냐?˝
구급차가 비탈길 아래로 완전히 사라지자 주지스님이 물었다.
˝여기서 혼자 살 거야, 도깨비가 나올지도 모르는데? 너 모르지, 혼자 사는 어린애만 잡아가는 도깨비가 이 산에 살고 있다는 거?˝
주지 스님은 일부러 먼 산을 보며 말했다.
˝스님 상좌로 들어가면 정말 학교에 보내 줄 거예요?˝
˝공짜로야 보내 줄 수 있나, 매일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해야 보내주지.˝
˝저 혼자서 그걸 다 해요, 스님은 뭐 하시게요?˝
˝나야 네가 잘하나 못하나 감독하지, 시간 나면 농사도 짓고,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더덕이나 캐러 다닐까?˝
˝더덕이 있어요?˝
˝저쪽 계곡에는 있지.˝
주지 스님이 턱으로 가리킨 계곡은 어른 걸음으로도 한나절은 가야 하는 곳이었다.
˝더덕은 폐에도 좋지만 위와 간에도 아주 좋거든. 독한 약을 먹는 사람한텐 꼭 필요한 약초지. 결핵에는 고기 먹는 것도 좋지만 더덕 같은 약초로 장기를 튼튼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거든.˝
상구는 어느새 주지 스님의 모습이 꿈 속에서 보았던 부처님 같았다.
´그런데 내가 부처님한테 이긴 거야, 진 거야?´
주지 스님을 따라 올라가다 말고 상구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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