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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냇소 누렁이 ( 이영호 )
배냇소 누렁이


이 영 호

( 계간 ´생각이 저요, 저요!´ 주간 )



풀이 무릎까지 자라 오른 넓은 벌 한 쪽에 지금 소 싸움이 한창입니다. 삼영이네 누렁이와 윗마을 정미소의 덕수네 점둥이가 콧바람을 ´힝힝 푸푸´ 불며 뿔을 건채 밀고 밀리고 들이박고 빙빙 돌면서 싸우고 있습니다. 소리치는 애들과 풀하는 애들이 죄 삥 둘러서서 소리를 지르며 응원을 하고 있습니다. 아랫마을 아이들은 삼영이네 누렁이를, 윗마을 아이들은 덕수네 검둥이를 응원합니다. 삼영이와 덕수는 싸우는 소만큼이나 열을 올리며 응원에 한창입니다.
˝잘 한다 잘 해! 받아라 받아! 누렁이 잘 한다. 누렁이 최고다!˝
삼영이는 신이 나서 고래 고함을 지르며 껑충껑충 뜁니다. 때에 절어 누더기가 된 베잠방이가 삼영이를 따라 세차게 건들먹거립니다. 누렁이가 점점 기운을 더하고 있습니다. 둬 발자국 뒤로 물러 섰다간 세차게 콱콱 들이받는 품이 점둥이 쯤은 아주 자신이 붙는다는 투입니다.
˝받아라, 받아라! 점둥아 받아라! 못이기면 뿔 뺀다! 콱콱 히야--˝
덕수도 질세라 점둥이 옆으로 바싹 다가섰다 물러섰다 하면서 주먹을 대고 휘두르지만 아무래도 초조한 얼굴입니다. 차라리 안달이 나서 못 배기는 몸부림 같아 보입니다.
˝누렁이 잘 한다! 옳지, 밀어라! 곧장 밀어 붙여라! 야! 잘한다!˝
하지만 점둥이도 여간 아닙니다. 호락호락하게 질 것 같지 않습니다. 힘이 좀 부치는 듯 하지만 좀해서 엉덩이를 내보일 생각은 없나 봅니다. 두 소는 입가에 허옇게 게거품을 빼물고 코를 푸푸 불면서 뒷다리를 꽉 버티고 서 있습니다. 네 다리와 목부근에 불끈불끈 근육이 솟아 있습니다. 그러다가 또 점둥이가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의 고함 소리가 와글와글 터져 올랐습니다. 점둥이는 차차 뒤로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아주 지쳐 버린 것 같습니다.
˝밀어라! 받아라. 받아! 누렁이 챳챳챠 히야, 야아--!˝
삼영이는 시합장의 응원 부장처럼 겅정겅정 뛰면서 두 손으로 점둥이 쪽으로 연신 밀어붙이는 시늉을 합니다. 그러는 삼영이의 전신에 땀이 비오듯 흘러 내리고 있습니다. 헤어진 베적삼이 금시 물에서 건져낸 사람처럼 후줄근합니다. 누렁이처럼 입에 게거품이 물려 있습니다. 삼영이의 손짓에 힘입기라도 한 듯 누렁이는 더욱 기세를 올립니다.
˝점둥아 돌아라, 돌아라, 밀리면 진다 돌아라 돌아!˝
덕수도 연신 손짓을 하면서 안타깝게 고함 칩니다. 그래도 점둥이는 자꾸 밀리기만 합니다. 덕수는 갑갑해서 못 견디겠다는 듯 땀에 전 웃저고리를 휘딱 벗어서 풀밭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 버립니다. 햇볕에 꺼멓게 굽힌 등으로 땀이 번들번들 흘러내립니다. 바로 그 때 새 동리 동산위서 귀에 익은 고함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왔습니다.
˝이놈들아--! 네 이놈들, 어쪄려고 남의 풀밭을 결단 내려드노? 게 모두 섰거라 이놈들!˝
보나마나 풀밭 주인인 토개 영감님입니다.
˝이크, 호랑이다 호랑이!˝
둘러 섰던 아이들이 거미새끼 흩어지듯 풀밭 밖으로 뿔뿔이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소를 몰고 뛰는 아이, 풀짐을 지고 다리야 날 살려라 내 빼는 아이……,
금세 풀밭은 난리가 났습니다. 토개 영감님은 긴 삭괭이를 저으며 고개 아래로 내리닫고 있습니다. 꾸물대다가 붙잡히는 날엔 볼장 다 봅니다. 소 고삐가 낫에 결단이 나는 건 약과입니다. 영감님은 삭괭이로 소의 엉덩이를 흙밭 일구 듯 모지락스럽게 콱콱 내리 지릅니다. 소가 놀라서 비명을 짜올리고 엉덩이를 치켜 들면서 미친듯 내빼고 나면, 소치는 애를 붙잡아 옷을 벗깁니다. 달아나도 소용이 없습니다. 영감님은 토끼나 개처럼 풀밭 위를 나는 듯 달려 와서 붙잡히는 대로 용서가 없으니까요.
삼영이와 덕수는 허덕허덕 소 싸움을 떼려고 합니다. 그러나 잔뜩 버티고 선 두 소는 주인의 다급한 사정쯤 아랑곳 하지도 않습니다. 화가 치민 덕수는 지게 막대기를 가져와서 두 소의 엉덩이에 사정없이 한 대씩 앵깁니다. 그 바람에 밀리기만 하던 점둥이가 좋은 기회라는 듯 획 돌아서 내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누렁이가 가만 두질 않았습니다. 무서운 기세로 점둥이의 배에다 뿔질을 앵겼습니다. 점둥이는 ´우웍´하고 비명을 지르며 꼬리와 엉덩이를 껑충 뛰었읍니다. 그래도 누렁이는 멈추지 않고 배와 엉덩이에 대고 뿔질을 해댔읍니다. 점둥이의 핑핑한 배가 누렁이의 날카로운 뿔에 긁혀서 허옇게 상처가 났읍니다. 쫓고 쫓기노라 두 소는 금시 풀밭을 지나 둑길로 들어섰읍니다. 누렁이는 그제사 도망치는 점둥이 한테서 떨어졌읍니다. 분풀이를 다 했다는 듯 목을 휘휘 내두르며 걸음을 멈췄읍니다.
˝시--, 다음에 보자! 그 땐 이 놈의 누렁이를 골로 보내 줄테다 시--.˝
덕수가 분한 듯 울먹이면서 말했읍니다. 그리고는 도망치듯 점둥이를 잡으려 앞으로 달려 갑니다.
˝흥, 백 번 붙어 보라구. 맨 형편 없는 그까짓 얼룩 송아지를 갖고 쳇!˝
삼영이는 입가에 흡족한 웃음을 띠고 비웃듯 이주럭거립니다. 정말 삼영이는 가슴이 후련합니다. 삼영이는 토개영감이 무서워 마을 앞 선돌뱀에까지 누렁이를 끌고 왔읍니다.
˝누렁아, 너가 최고야! 잘 싸웠어. 그깐 점둥이 쯤 너한텐 조무래기야 조무래기! 잘 했어 잘 해.˝
삼영이는 땀이 후줄근히 내밴 누렁이의 온 몸을 쓸어주며 다정하게 속삭입니다. 누렁이는 커다란 눈을 순하게 껌벅껌벅 하면서 꼬리를 휘휘 내두릅니다. 삼영이는 버드나무 그늘에 누렁이를 세워 놓고, 보리밭 사이에 난 부드러운 소쌀밥(쇠뜨기)를 뜯어다 줍니다. 누렁이가 무척 좋아하는 풀입니다. 소쌀밥을 먹이면 물똥을 싼다고 다들 그랬지만 누렁이는 물똥 한 번 싼 일이 없읍니다. 한참 후 누렁이를 냇물로 몰아 넣고 목욕을 시켰읍니다. 전신에 물을 끼얹고 땀과 간밤에 묻은 소통을 문질어 냈읍니다. 누렁이는 시원한 듯 눈을 감고 서 있었읍니다.
며칠 후 덕수네는 점둥이를 팔고 대신 삼영이네 누렁이 보다 더 우락부락하고 큰 누렁이를 사 왔읍니다. 덕수가 성화같이 조른 탓도 있지만 정미소의 달구지를 끌기엔 점둥이의 힘이 부쳐서 바꿨다는 얘기였읍니다.
˝소등골 천지에 그 소를 당할 싸움소가 없었대. 참 굉장히 무섭더라. 우선 덩치만 해도 너희집 누렁이는 어림도 없어.˝
덕수네와 이웃집에 사는 길만이가 삼영이에게 하는 말입니다.
˝칫, 그까짓 것 크면 뭘해. 제까짓 게 싸움을 하면 얼마나 할라구.˝
삼영이는 대수롭잖다는 듯 코웃음을 쳤지만 속으론 무척 걱정이 되었읍니다. 우선 허위대가 누렁이보다 크다는 게 영 마음에 걸립니다. 그날 해질 녘, 삼영이는 덕수의 요구로 나흘 후에 전번의 그 풀밭에서 싸움을 붙이기로 약속을 했읍니다. 걱정스럽긴 했지만 거절할 수는 없는 일이었읍니다. 풀을 쳐버린 벌판이라 전번처럼 쫓겨날 염려도 없는 데다, 얼마든지 붙어보라고 큰 소릴 땅땅 쳐놓고선 이제 와서 꽁무니를 뺄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싸움을 약속한 날부터 삼영이는 벼논의 물고에 통발을 받쳐서 미꾸라지를 잡아다 먹였읍니다. 또 엄마 몰래 콩도 삶아 먹였읍니다. 소먹이러 갈 때마다 망테기를 메고가서 소쌀밥을 뜯어 와서 밤에도 배지게 먹이곤 했읍니다. 부드러운 풀밭으로 끌고 다니며 배가 핑핑하게 먹이는 건 물론입니다. 그러나 싸움을 하루 앞둔 날 누렁이는 삼영이의 마음에 영 언짢은 일을 저질렀읍니다. 정만이네 암소 등을 타고 올라 종자 받기를 한 것입니다. 정만이 아버지가 암소를 끌고 와서 누렁이의 씨를 받자고 했을 때 삼영이는 펄쩍 뛰며 반대했읍니다. 누렁이의 코뚜레를 꽉 잡고 천 날 말해야 소용 없다고 잘라 거절 했읍니다.
˝ 아 이 녀석아, 너가 왜 그걸 못하게 해. 어디 정말 못하나 보자.˝
정만이 아버지는 심술궂게 암소의 엉덩이를 누렁이 코앞으로 디밀었읍니다. 누렁이는 삼영이 한테 코뚜레를 잡힌 채 암소 궁둥이에 코를 치켜 냄새 맡기 시작했읍니다. 바보처럼 반쯤 입을 벌리고 코를 벌름거리며 힝힝 코똥을 뀌며 냄새를 맡던 누렁이는 갑자기 사납게 도래질을 하기 시작했읍니다.
그래도 삼영이가 거머리처럼 찰싹 매달려서 코뚜레를 놓지 않으니까 떠받을 듯 마구 삼영이를 밀어냈읍니다. 그 서슬에 삼영이는 코뚜레를 놓고 쓰러질듯 비틀거리며 저만치 물러서야 했읍니다. 끝내 누렁이는 벌떡 몸을 솟구치더니 터덕거리는 암소 등에 앞발을 얹고 종자 받기를 하고 말았읍니다. 그걸 보면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둘러 섰던 모든 사람들이 입을 헤벌리며 키들키들 웃었읍니다.
˝난 몰라, 난 몰라요! 으으흐응응……내일 소쌈 붙일거란 말예요. 난 몰라요, 흐흙 앙앙항……˝
삼영이는 그예 커다랗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읍니다.
˝아 이녀석아 그랬다고 쌈 못 한다던? 원 별 소릴 다 듣겠구나 응. 괜찮아 이녀석아. 울긴 쯧쯧……˝
정만이 아버지는 혀를 차셨읍니다. 삼영이는 엉엉 울면서 누렁이를 버드나무에 비끌어맸읍니다. 회초리를 꺾어 와서 배와 엉덩이를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했읍니다.
˝그런 짓 하면 기운이 빠져 싸움에 진단 말야 흐흙……˝
왜 하지 말라는 데 그런 짓을 했어 임마! 흐흙흙……
회초리가 소리를 지르며 닿을 때마다 누렁이는 몸을 꿈틀거리면서 이리저리 발을 옮겼읍니다. 때리는 주인이 원망스러운 듯 물기가 밴 커단 눈을 씀벅 씀뻑 했읍니다. 분에 못이겨 한참동안 회초리를 휘두르며 엉엉 울던 삼영이는 갑자기 회초리를 휙 던지고 누렁이의 목을 껴안으며 더욱 섧게 울음을 터뜨렸읍니다.
그날 밤 삼영이는 밤중 쯤 잠이 깨어 외양간으로 나갔읍니다. 꺼진 모깃불을 살려 모기를 쫓아 주고 모지랑 대비로 누렁이의 몸을 쓸어 줬읍니다. 눈을 감고 되새김질 하고 있던 누렁이는 입놀림을 멈추고 코를 불며 고개를 끄덕끄덕 했읍니다.
˝낮엔 잘못했어. 네가 너무 내 맘을 몰라주는 게 괘씸해서 화가 났던 거야. 누렁아, 내일도 말야, 전번 점둥이를 헤치우 듯 해 치워 줘, 응?˝
삼영이는 누렁이의 머리를 긁어 주며 속삭였읍니다. 누렁이는 알겠다는 듯 코 앞에 닿아 있는 삼영이의 무릎을 넓적하고 꺼칠한 혓바닥으로 쓱쓱 핥았읍니다.

다음날은 유난히도 무더웠읍니다. 해님이 뭐든지 반쯤은 삶아 놓겠다는 듯 이글이글 타고 있었읍니다. 서쪽 하늘에만 뭉게구름이 잘 타낸 솜 뭉치처럼 피어 있을 뿐 하늘엔 온통 이글거리는 해님 뿐이었읍니다. 언제나 극성을 떨던 포프라 나무의 왕매미도 더위에 숨이 막힌 듯 울지 않았읍니다. 이따금 베어낸 보리밭 위에서 노고지리가 노래를 불렀지만 오늘따라 느리처분하고 갑갑하게만 들렸읍니다. 수양버들 그늘에 소를 매어 놓고 아이들은 풀밭 아래 쪽의 넓은 늪 속에서 개구리처럼 풍더덩거렸읍니다. 삼영이는 그런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았읍니다. 버드나무 그늘에 누렁이를 매어놓고 콩밭에서 바랭이와 강아지풀을 뜯어다 먹였읍니다. 땀으로 옷이 후줄근해졌지만 부지런을 피웠읍니다. 어느새 서 쪽 하늘의 뭉게구름이 점점 퍼져서 해를 가리웠읍니다. 그제사 아이들은 물에서 나와 소를 풀밭으로 몰아 냈읍니다. 쳐버린 풀뿌리에서 다시 연한 새순이 돋아나 소를 먹이기엔 안성맞춤이었읍니다. 그 때 덕수를 앞세우고 웃마을 아이들이 내려왔읍니다.
˝약속은 안 잊었지?˝
소 꼬삐를 빙빙 돌리며 덕수가 거만스럽게 입을 열었읍니다. 덕수네 황소가 가까이 오자, 누렁이는 앞발로 땅을 파올리며 ´움머, 우움머´하고 마땅찮다는 듯 으르렁 거렸읍니다. 덕수네 소도 뿔로 방축을 파 던지며 만만찮은 응수를 했읍니다.
˝그럼. 해으름에 붙이자!˝
삼영이는 자신있게 대답했읍니다. 누렁이의 기세를 보니 문제없이 해낼 것 같은 자신이 붙었읍니다. 해가 방어산 위로 한발 쯤 기울어졌을 때에 덕수와 삼영이는 풀밭 가운데로 소를 끌고 모였읍니다.
˝누렁아 이겨야 해. 콱콱 받아라 응. 꼭, 꼭 이겨야 해!˝
삼영이는 누렁이의 목에다 고삐를 감으며 누렁이의 넓적한 귀에 입을 대고 다짐이나 받듯 말했읍니다. 코뚜레를 놓아줘도 두 소는 잠싯동안 서로 마주보며 사납게 고함을 지르고 으르릉거릴 뿐 엉겨붙지 않았읍니다. 그러다가 어느틈에 콱 맞붙었읍니다.
˝야아--! 웃마을 이겨라, 받아라, 받아라! 못 이기면 뿔 뺀다!˝
˝아랫마을 이겨라! 누렁아 콱콱 받아라. 야이! 잘한다 잘 햇!˝
아이들의 고함 소리가 하늘을 찌를 듯 터져 나왔읍니다. 삼영이와 덕수는 전번보다 더 열을 내어 응원을 했읍니다. 누렁이는 전번처럼 두얼 발작 물러 서다가 이내 기세좋게 떠받으며 밀어 붙이곤 했읍니다. 한데 덕수네 누렁이는 여간내기가 아니었읍니다. 몇 발자국 밀리는가 하면 이내 거세게 되받으며 그보다 더 밀어 오곤 했읍니다. 덕수네 소가 훨씬 기운이 세어 보였읍니다. 이내 두 소는 게 거품을 물었읍니다.
´힝힝, 푸푸´
콧방귀를 뀌며 밀고 밀리고, 떠받고, 떠받치고 했읍니다. 해님이 불그레한 노을을 깔며 방어산의 반 발쯤 위에 설핏이 누웠읍니다. 이러다간 깜깜해도 끝날 것 같지 않았읍니다. 아이들의 응원 소리도 이제 맥이 풀려 갔읍니다. 그러나 이내 놀라운 일이 벌어졌읍니다. 뒷걸음질 쳐서 덕수네 소와 떨어진 누렁이가 기세 좋게 내닫는 덕수네 소를 슬쩍 피하면서 핑핑한 배에다 날카로운 뿔을 걸어 세차게 목을 내둘러 버린 것입니다. 한뼘이나 더 되게 허옇게 살이 패이더니 이내 피가 흘렀읍니다.
˝우웍!우워!˝
덕수네 소가 비명을 짜올렸읍니다. 그러나 그 정도로 항복할 내가 아니라는 듯 획 돌아서려고 했읍니다. 그러나 누렁이는 그런 틈을 주지 않고 엉덩이에 대고 뿔질을 해댔읍니다. 덕수네 소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줄행낭을 놓기 시작했읍니다. 아랫마을 아이들의 함성이 노을을 가르며 하늘에라도 닿을 듯 왁자히 터져 올랐읍니다. 싸움은 끝났읍니다. 기대했던 것보다 싱겁게 싸움이 끝난 것입니다. 삼영이는 미칠 듯 기뻐했읍니다. 껑충껑충 뛰면서 두 손으로 제 엉덩이를 치며, 함성을 지르며 하하하 웃었읍니다.
˝누렁이가 최고다! 누렁이가 왕이다. 얼마든지 또 붙어라.˝
덕수는 삼영이의 고함소리를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쫓겨가는 소를 따라 뛰면서 손으로 핑 코를 풀어 땅거미가 깔리는 풀밭으로 홱 내던지고 있었읍니다.

긴 긴 방학이 끝나고 개학한 첫 날입니다. 학교에서 늦게 돌아온 삼영이는 안방 마루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읍니다. 빨리 점심을 먹고 누렁이에게 풀을 뜯겨야 겠다는 생각에서였읍니다. 그 때 사랑방에서 아버지와 웬 낯선 사람이 나오셨읍니다. 아버지는 곧장 외양간으로 나가시더니 누렁이를 끌어내셨읍니다.
˝왜 그러세요. 아버지?˝
삼영이는 소스라치 듯 놀라 밥숟갈을 동댕이 치며 물었읍니다.
˝응? 으응, 누렁이의 주인 어른이 이제 누렁이를 데려 가려는 거야.˝
˝네에? 뭐라구요? 누렁이가 누구 소란 말예요. 우리 소에요. 그건 안 돼요 아버지!˝
삼영이는 맨발로 마당으로 뛰어내리며 대고 비명을 질렀읍니다. 삼영이는 아버지의 손에서 고삐를 뺏으려고 했읍니다.
˝얘가 무슨 짓이야. 누렁이는 배냇 소란다. 이 어른의 소야. 누렁이를 주면 이제 정말 우리 송아지를 한 마리 이 어른이 주실 거야. 저리 비켜라.˝
아버지는 삼영이를 떠밀며 고삐를 낯선 사람 손에 쥐어 주셨읍니다.
˝안 돼요! 누렁이는 우리 소예요, 우리 소예요!˝
삼영이는 아버지한테 손목을 잡힌 채 버둥거리며 울음을 터뜨렸읍니다.
˝ 허 그놈 참, 소랑 어지간히 정이 들었나 보구나. 내 네게 꼭 맞는 송아지를 곧 보내주마. 어흠 흠.˝
낯선 사람은 헛기침을 하시며 누렁이를 몰기 시작했읍니다. 누렁이는 고삐에 볼기를 얻어 맞으면서 느릿느릿 걸음을 옮겨 놓기 시작했읍니다. 삼영이와 헤어지게 되는 걸 저도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듯 젖은 눈을 씀벅씀벅했읍니다.
˝우리 소를 돌려 주세요 네, 아저씨. 안 돼요. 때리지 말고 돌려 줘요.˝
삼영이는 그걸 보고 더욱 기승을 부렸읍니다.
˝움머, 움머으!˝
누렁이는 슬픈 울음소리를 남기고 사립문 밖으로 나갔읍니다.
˝누렁아 --으흐흙……˝
삼영이는 누렁이를 부르며 마당 바닥에 폭삭 퍼질러 앉아 버둥거렸읍니다. 사립문에서 눈을 떼는 아버지의 눈에도 반짝 하고 이슬이 맺혀 있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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