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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걷기예찬 |  | |
| 아침엔 비도 간간이 뿌리는데 김두수의 노래를 귀에 꽂고 관악산 자락을 걸어서 출근했다. 김두수의 무거운 노래 가사에 취해 걷다가 술렁이는 숲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귀에서 이어폰을 빼 보았다. 숲을 울리는 나뭇잎에 빗물 듣는 소리, 그 빗속에서도 울어주는 새들, 비를 맞고 있어도 따뜻한 아침이었다. 졸업 후 처음 만난 중학교 동창이 그날 새벽 지리산에서 내려왔다는 내게, ˝너 등산을 좋아하는구나.˝ 하였다. 나는 ˝등산은 안하고 그냥 산을 걷기를 좋아해.˝라고 대답했다. 산을 빨리 걸어 넘는 것이 아니라 그 산 안에 그냥 그렇게 오래 있고 싶다. 가만히 내가 있는 산 속 이 공간과 시간을 느끼고 싶다. 쓸데없이 많이 담아두었던 힘 다 빼고 맨 마음으로 천천히 오래 걷고 싶다. 내 발바닥으로 직접 이 세상과 닿고 싶다. 내가 그렇게 땅과 하나 되어 걷고 있으면 무슨 커다란 고통이 있어서 걷느냐고 노골적으로 묻는 사람도 있다. 세상 아름다움 만끽하고 싶어 걷는다면 이해 못하는 사람들 많다.
그런데 세상에, 걷는 기쁨을 아는 사람 또 있었다. 걸을 때면 마음속에 차 오르던 정체 모를 두근거림을 정확하게 분석하여 바닥까지 밝혀낸 사람이 여기에 있었다. ˝걷기예찬˝은 단순히 걷는 행위가 좋다는 맹목의 육체 예찬서가 아니다. 걷는 행위의 바닥을 그 끝이 환해질 때까지 가만히 들여다보고, 그 바닥의 정체를 깊이 생각해온 사람의 성실한 걷기에 대한 내면 분석이다. 걷기의 사상적 기반에서 걷기의 구체적 방법까지를 오래 몸으로 생각해온 사람의 결론이다.
그의 말대로 정말 걷기는 ˝능동적 형식의 명상˝임이 분명하다. ˝걷는 동안 여행자는 자신에 대하여, 자신과 자연과의 관계에 대하여, 혹은 자신과 타인들에 대하여 질문하게 되고 뜻하지 않은 수많은 질문들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걷는 사람은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고 모든 것과 다 손잡을 수 있는 마음으로 세상의 구불구불한 길을, 그리고 자기 자신의 내면의 길을 더듬어 간다˝. 마침내 ˝외면의 지리학이 내면의 지리학과 하나가 되면서 우리가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을 평범한 사회적 제약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도록 깊이 사유하는 방법을 그는 제시한다.
그리고 이렇게 ˝도보로 하는 산책은 반드시 혼자 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유가 그 내재적 속성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혼자일 때만 생각이 맑아˝지니 더 말할 나위가 없지 않은가? ˝둘이서 여행하게 되면 벌써 동일한 경험을 나누어 가지기 위하여 자신의 어느 한 몫을 포기하게˝ 된다는 것도 길을 나서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공감할 말이다. 그러므로 ˝만약 산책의 동반자를 찾는다면 그것은 이미 자연과 하나가 되어 교감하는 어떤 내밀함을 포기하는 것이 된다˝는 말은 경험에서 나온 엄중한 경고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걷기는 세계를 느끼는 관능에로의 초대˝이다. 걷고 있을 때에는 ˝중요한 것이라곤 오직 존재하는 것뿐인 이 완벽한 순간들˝을 오롯하게 나만의 것으로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결론은 그리고 다시 맨 앞으로 돌아간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거쳐간 길인데 길의 끝이야 아무러면 어떤가˝라는 이 책의 마지막 말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걷기가 ˝능동적 형식의 명상˝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듯하다. 산속의 어느 스님이 ˝걷기수행˝이라는 말을 쓰곤 하는데, 아마도 이런 깨달음일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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