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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아주 낮은 환상
윤영수 외 : <죽음 아주 낮은 환상>

출판사 : 윤컴 / 출판일 : 1998/6/30 / 페이지수 : 328

<내 모든 걸 소진하는 그날>
높은 곳에 올라가면, 나는 몸을 절반쯤 밖으로 내밀고, 창 밖을 통해 아래를 한참 노려본다. 내가 이곳에서 그대로 고꾸라져 떨어지면 즉사할까, 병원에 실려가서 죽을까, 식물인간이 될까, 그냥 다치기만 할까를 가늠해 보기 위함이다.
이러한 안 좋은 습성은, 중학교 시절, 전학 온 아이가 12층에서 투신자살한 이후부터이다. 모 중학교에서 전교 1, 2등을 다투다가 부모님의 학구열로 이사온 아이였는데, 전학 후 10등뒤로 떨어지는 성적 때문에, 비관 자살을 하였다.
아, 표면적인 이유는 그렇고, 부모님께 성적 문제로 많이 혼난 후 자신의 방 창문에서 뛰어내렸다고 하는데, 죽은 자는 말이 없으므로, 정말 그 아이가 왜 뛰어내렸는지는 알 수 없는 길이다. 그저, 전학 온 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게 남 같지 않아, 조금쯤 챙기고 붙어 다녔던 그 아이의 자살에 꽤 충격을 받은 나에게 남은 것은, 나도 뛰어내릴 때 최소 12층 이상에서 뛰어내려야겠다는 막연한 생각과, 차가운 12층의 새벽 공기를 가르며 뛰어내릴 때의 그 아이 기분은 어땠을까가 문득 궁금해지는 것과, 높은 곳에 올라가면 이곳에서 뛰어내리면 어떻게 될까를 가늠해 보는 습성이 전부이다.
그러한 내가, 2001년 6월에 맞이한 건 죽음의 시도였다.
단지 그냥 죽고싶다가 아니라, 정말 죽어야 하겠다, 라는 결심으로, 작정을 하고 술에 취해, 흐느적흐느적 아파트 건물을 찾아 12층을 찾아 헤매다가 나를 미치도록 찾던 어떤 녀석에게 결국은 붙잡혀서 아파트 건물 앞에서 몸싸움을 하고 미친 듯 소리를 지르고 멍이 날 정도로 팔목을 잡히고 뺨도 몇 대 맞고, 결국은 다른 녀석들에게 번쩍 들려 집 앞에 내동댕이쳐지고 만 나는, 나에게 더 이상 열정도 그 무엇도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으므로 더 이상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처럼 시도가 시도로 끝난 사람도 있겠지만, 실제로 결심을 이행하여 투신하였거나 약을 먹었는데 운 좋게 살아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한번 꺾인 결심은 결국, 다른 모든 것과 죽음을 교환하는 타협을 했다. 어차피 살아갈 집도 잃고 일자리도 잃고 애인도 잃고 목숨걸던 것도 잃었으므로 새로 시작하는 것, 내가 마음만 먹으면 되는 거였을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죽음을 이제 꿈꾸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너 따위는 글을 쓸 자격이 없다며 어머니께 매질을 당하던 중학교 때도 죽고 싶었고, 세상엔 정말 믿을 사람이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껴버린 고교 시절에도 죽고 싶었으며, 자질 부족임을 깨닫고 소설가로서의 꿈을 단념하며 대학을 그만 둘 때에도 나는 죽고 싶었다. 아직 절반도 채 못살아온 인생이므로 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어떠한 시련이 있을 적마다 죽음을 꿈꾸게 되겠지.
˝죽음은 어느 날 사람을 덮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날마다 치사량의 독을 먹으며 다가가는 것이다. 더 이상 아무런 계획도 없이 여기까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자살은 선택된다. 모든 인간은 결국 죽는다는 불안은 누구에게나 있다. 심지어 결국 죽으려고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문까지 생긴다.
영화가 끝나는 것처럼 어느 날 삶도 끝이다.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면, 답답하고 절망적인 사건이 발생하면 자살로 치달을 수도 있다.˝ -(전경린 소설 ´환과 멸´ 해설 중)-
그런데, 요즘 드는 생각은, 죽음이라는 것이, 우리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소진하게 되었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 소진이라는 것은, 기력의 소진일 수도 있고, 열정의 소진일 수도 있고, 오기의 소진일 수도 있다. 자살이 스스로를 살해하는 것이라 해서 자신이 결정한다고 생각한다면 오판이다. 자살도, 때가 되었기 때문에 성공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왜 죽지 않았는지를.
하루에도 몇 번씩 죽음을 꿈꾸는, 혹은 갈망하는 사람은, 나 이외에도 매우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모두 죽지 않음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소진을 다 하지 못한 것이다. 죽을 때가 되면, 스스로 목숨 끊지 않더라도, 재수 없게 사고 나서 죽을 것이며, 죽을 때가 아니면, 아무리 죽으려고 약을 먹고 목을 매고 뛰어내려도 운 좋게 살아날 것이다. 아무리 용기 부족으로 죽지 못하던 자살 중독자라 할지라도, 죽을 때가 되면, 어느 날 불끈! 하고 용기가 솟아날지도 모른다.
이 책은 자살에 관련된 단편소설과 시가 게재되고, 그것에 대한 해설과, 뒤에는 우리 문학에 나와있는 자살에 관한 작품들의 목록이 소개된다. 맨날 죽고 싶다, 죽고 싶다 하던 내가 죽는 이야기뿐인 이 책을 덮으면서 울고 싶어진 건, 내가 왜 죽고싶은지를 생각해 봤기 때문이다.
한번쯤, 진심으로 죽음을 결심했던, 혹은 나처럼 항상 죽음을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묶어놓은 문학작품에서 다양한 죽음의 사유와 방법을 읽어보고, 그들은 무엇을 소진하여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찾아보면 재미있겠다. 그리고, 자신이 꿈꾸는 죽음과 한번쯤 비교하면서, 당신이 왜 죽고 싶은지를 한번쯤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다.
정말 절실히 죽고싶다면, 자신이 무엇을 소진해야 죽는지를 빨리 파악해 보는 게 좋겠지. 그리하여 소진해라. 그러나 장담컨대 뜻대로 되기란 쉽진 않을 것이다. 왜? 소진하는 게 그리 쉽지만은 않은 일이므로. 희망이란 이름의 중독성 강한 마약을 먹고사는 인간에게 소진이 어찌 쉽겠는가. (교보문고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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