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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파울로 코엘료 :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역자 : 이상해 / 출판사 : 문학동네 / 출판일 : 2001/2/15 / 쪽수 : 262

싱싱한 삶이란 아직 빨간불이다. 파란불이 될 때까지 사람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줄을 선다. 더러는 초조해 죽겠다는 몸짓으로 더러는 무언가를 찾는 듯한 어정쩡한 두리번거림으로...
그렇게 사람들은 하얀 보도 위에 서있다. 아무도 발을 내딛지 않는다. 한발 재겨디디면, 저곳은 결코 멈추지 않을 성싶은 자동차들의 세상, 자칫하다가는 개죽음되기 십상이다. 그런 어리석은 일을 하지 않을 정도의 지혜는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가끔씩은 빨간 불인데도 용감하게, 아니 아무 생각 없이 발을 내딛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미쳤다´고 말한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는 그런 이단자들의 소설이다.
정확히 말하면 죽기로 결심해서 세 통이나 되는 수면제를 한꺼번에 마시고도 튼튼한 심장덕분에 살아남아 정신병원에 간 주인공과 정신병원에서 만난 환자들의 이야기이다.
진부한 삶에 염증을 느끼고 약을 먹은 베로니카는 살아남는 대신 ´죽음의 선고´를 듣는다. 말하자면 ´시한부인생´이 그녀에게 남겨진 숙제인 것이다. 그녀는 원하지 않는 죽음에 두려워한다. 죽음을 원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자신이 충분히 의식하는 상태에서 삶을 마감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베로니카의 공포와 방황은 이 낯선 경험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상황은 ´죽음´을 다룬 대부분의 소설에서 보이는 평이한 소재이다. 하지만, ´따분했던 인생이 시한부인생으로 바뀌는 순간 모두가 의미 있는 순간으로 변해서 죽는 순간까지 감사하다 죽는다´는 그런 고전적 테마를 파올로 코엘료는 거부했다. 대신 잔인하리만큼 삶이 가진 무의미성을 부각한다.
베로니카는 정신병원에서 소위 정신병자라고 일컬어지지만 실제로는 정상인 사람들을 만난다. 한때는 유명한 변호사였지만 ´패닉´공포증에 사로잡힌 순간 세상에게 버림받은 마리아, 홧김에 결혼한 뒤 결혼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우울증에 걸렸던 제드카, 부모의 지나친 기대와 사랑으로 모든 꿈을 빼앗긴 에뒤아르.
이 세 사람의 삶을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코엘료는 ´자기´가 없는 인생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끔찍한 것인지 이야기한다. 늘 다른 사람을 의식하면서 세상의 규율에 맞춰서만 산다면 진정한 자기는 영원히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진정한 사랑까지도.
실제로 베로니카의 눈을 따라가면서 우리는 바깥세상보다 어쩌면 정신병원이 훨씬 인간적이고 안락하다고 느끼게 된다. 자기를 솔직히 드러내는 자유로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도 없는 자유로움을 바깥세상에서는 도저히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가 그렇다고 세상을 외면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과 동떨어져서 자기만의 세상에 사는 것이 옳다고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코엘료는 적극적으로 세상에 들어가라고 말한다.
굳건히 닫힌 사람들의 유리벽에 코엘료가 던진 돌멩이는 베로니카의 ´피아노 소리´이다. 어머니의 강요로 배우지 못했지만 한번도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던 피아노를 치면서 베로니카는 처음으로 희열을 느끼게된다. 또 자기만의 세상에서 나오기를 거부했던 에뒤아르는 새로운 사랑을 발견한다. 그에게 사랑이란 자신의 인생과 꿈을 망쳐놓은 왜곡된 존재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마리아 역시 아직 자신이 하고싶은 일이 세상에 남아있음을 깨닫는다.
이처럼 평범한 피아노 소리가 뭇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적막을 깨는 피아노 소리는 젊고 싱싱한 밤색머리 여자의 죽음을 간접 경험하게 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한번 던져진 돌멩이는 연못에 떨어진 것처럼 서서히, 그러나 아주 확실한 파동을 일으켰을 것이다. 달밤이었기에. 그리고 가장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말이다.
코엘료가 마지막을 비극이 아닌 희극으로 장식한 것은 어쩌면 삶에 대한 그의 태도가 그러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삶은 소중한 것일 뿐, 진지함이 아니라는 게 그의 생각인 것 같다. 지나치게 진지한 삶은 오히려 싱싱한 삶을 망가뜨린다.
베로니카가 하루하루 기적적으로 연명한다고 생각하면서 에뒤아르와 원하는 것을 하고 원하는 것을 얻어가면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느껴가는 과정, 코엘료가 바라는 싱싱한 삶은 그 안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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