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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한 다음에 인생을 즐기자
에바 헬러 : <복수한 다음에 인생을 즐기자>

역자 : 김인순 / 출판사 : 열린책들 / 출판일 : 2000/11/1 / 쪽수 : 422

에바 헬러가 썼다는 이유만으로 이 책을 당장 사버렸다.
1993년 열린책들에서 나온 <다른 남자를 꿈꾸는 여자>와 1994년 서적포에서 발행한 <나에게 의미있는 남자>를 대단히 인상깊게 읽었기 때문이다.
에바 헬러의 소설은 무엇보다 재미있다. 그리고 그 재미라는 것은 그냥 깔깔거리다가 곧 잊어버리는 그런 종류의 폭소는 아니다. 볼수록 생각할수록 두고두고 사람을 웃기는 유머이다. 어쩔 땐 나의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혼자 멋쩍어 웃기도하고,
˝맞다. 맞다. 이 인물이 그 놈이랑 같은 종류구나!˝
주변의 비슷한 인물을 대입시켜놓고 통쾌함을 느끼기도 한다. 한마디로 에바 헬러, 그다지 젊지 않은 이 독일 작가는 여자의 심리를 징그럽게 잘 포착하여 정확하게 분석하고 게다가 얄미우리만치 세련된 표현을 해낸다.
이 소설이 다루고 있는 소재는 그야말로 평범하다. 남녀 이야기로 사랑과 배신 그리고 복수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진부한 글감을 가지고 세 번씩이나 대박을 터트릴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독특한 등장인물에 있다고 생각한다.
에바 헬러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은 하나같이 소박하면서도 강인하다. 강인하고 당당하다 못해 어떤 부분에선 기괴함까지 느껴진다. 이 책의 주인공 지빌레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남자 친구 미하엘이 자신을 버리고 신분 높고 돈 많은 다른 여자에게 가버리자 복수를 결심한다. 그녀의 목표는 두 사람의 관계가 빠른 시일 내에 처참하게 끝나는 것! 그녀는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자신의 전공, 심리학까지 동원하여 머리카락을 똥갈색으로 염색하고 얼굴엔 사마귀를 붙인 후 파출부로 위장, 두 사람에게 접근한다.
다소 황당한 설정이지만 읽으면서 이럴 가능성도 충분히 있겠다고 느껴지는 것은 모든 것을 정밀하게 조사하여 글을 쓰는 작가의 자세 때문일 것이다. 슈피겔지와의 인터뷰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향수 상표에서 기차 시간표 등등, 소설의 사소한 부분까지도 과연 실제 현실에 부합하는가, 이점에 큰 비중을 둔다고 한다. 사실 나는 <나에게 의미 있는 남자>를 읽었을 때도 가구를 비롯한 작가의 해박한 인테리어 지식에 무척 감탄을 한 적이 있다.
또, 그녀의 글을 읽노라면 사회학자로서의 작가가 지닌 인간과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점은 유머집 같은 그녀의 소설이 자칫 새털보다도 가볍게 취급될 수 있는 약점을 잘 보완해준다. 소설마다 반복해서 다루어지는 여성들간의 우정의 문제, 사회에서의 여성의 역할과 지위, 고학력 여성의 진로문제, 여성에 대한 남성의 편견, 진정한 여성해방의 문제 등등 곳곳에서 사회를 바라보는 작가의 예리한 시각을 접하게 된다. 특히 지식인임을 자처하며 좌파 이론을 안주 삼아 건방을 떨어대는 인물의 묘사는 압권이다. 조금 과장되게 말해, 시사지나 해당 전문서적을 보는 것보다 현 독일 젊은이들의 모습이 한 눈에 더잘 들어온다고 할까, 그것은 또한 가까이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기에 그녀의 소설은 읽고난 후 꽤 생각을 하게 만든다.
지금까지 에바 헬러에 대해 너무 과찬을 한 것 같은데 다소 실망스러운 점도 물론 있다.
우선 구성에 있어 너무 단조롭다는 것이다. <다른 남자를 꿈꾸는 여자> <나에게 의미 있는 남자> <복수한 다음에 인생을 즐기자> 세 소설 모두 거의 비슷한 모양새를 가지고 있다. A라는 여자 주인공, 현재 사귀고 있거나 떠나간 별 볼 일 없는 남자 B, 새롭게 조용히 다가오는 괜찮은 남자 C, 여자 주인공 A를 둘러싼 여러 유형의 남자들과 여자들 D E F G.
이들 등장인물들의 성격도 대개 정해져있다.
A-처음엔 어리숙하게 보이지만 점점 강해진다. 꿋꿋하게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간다.
B-겉과 속이 완전히 다르다. 겉보기 등급은 에이 플러스, 실제 등급은 에프.
C-진흙속의 보석과 같은 존재. 완전히 B와는 반대 등급의 인물. 대개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으나 겸손하여 잘난척하지 않는다.
DEFG-굉장히 합리적이어서 가려운 곳을 박박 긁어주며 주인공을 돕는 인물 한 명과 대단히 독특한 개성을 가진 한심한 이들이 섞여 나온다.
솔직히 위와 같은 구성의 반복으로 <복수한 다음에 인생을 즐기자>를 읽을 땐 그다지 신선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하지만 무겁다면 무거운 주제를 결코 무겁지 않게 다루는 에바 헬러 소설이 주는 특별한 매력은 여전했다. 나를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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