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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야 1 |  | |
| 홋타 요시에 : <고야 1>
역자 : 김석희 / 출판사 : 한길사 / 출판일 : 1998/1/20 / 쪽수 : 426
<영혼을 그린 대화가, 고야>
작년 늦가을부터 덕수궁미술관에서는 ´인상파와 근대미술전´이라는 제목으로 오르세미술관 한국전이 열렸다. 익히 그 명성과 인쇄된 화첩을 통해 친숙해진 고갱, 고호, 모네, 밀레와 르노와르 등 참으로 보는 이의 눈을 얼어붙게 만드는 명화들이 전시되었다.
나는 덕수궁미술관에 세 번 정도 다녀왔다. 손에 든 입장표에는 오르세미술관 한국전이라는 전시회명이 찍혀 있었지만, 미술관 입구에 들어서자 말자 나의 발걸음은 2층에 있는 3, 4전시실로 향했다. 마치 오르세전 관람의 덤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하고 여겼던 이들도 있겠지만, 내가 세차례나 이곳을 찾았던 이유는 바로 전시회 ˝고야 : 얼굴, 영혼의 거울˝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곳에는 나의 숭배자 고야가 낡은 판화집을 펼쳐 보이며 하얗게, 아니 검게 웃고 있었다.
프란시스코 고야 이 루시엔테스(1746∼1828). 나는 어릴 때부터 고대 그리스의 조각작품에서 현대회화에 이르기까지 미술사에 관심이 많았다. 흠모하고 열광했던 화가와 작품들도 샐 수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이제는 가장 좋아하는 화가를 들라하면 서슴없이 프란시스코 고야라고 말한다. 이렇게 나를 고야의 예술 세계로 이끌어준 것이 홋타 요시에의 고야 평전 4부작 <고야>이다.
홋타 요시에는 1952년 <광장의 고독>이라는 중편소설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면서 작가가 되었는데, 타고난 방랑벽과 10여년에 걸친 유럽체류 등을 통해 얻은 폭넓은 경험과 식견으로 뛰어난 저술을 많이 남긴 진보적 작가이다. 날카로운 역사관과 예술, 문화를 어우르는 심미관, 그리고 문학적 필력이 삼위일체가 되어 일궈낸 그의 저술들은 안이한 독자들의 의식을 일깨우기에 충분하다. 그의 대표작이랄 수 있는 <고야>는 진지하게 읽어가는 독자들을 깊숙한 숲으로 끌어들여 빠져나갈 수 없게, 나가고 싶지도 않게 만든다.
<고야>는 4부작으로 이루어진 대작이다. 1부 에스파냐-빛과 그림자(1974년), 2부 마드리드-빛과 초원(1975년), 3부 거인의 그림자(1976년), 4부 운명-검은 그림(1977년)이 풍부한 삽화와 함께 알찬 내용을 담고있다.
1부에서는 고야의 유년기와 청년기를 다루고 있는데, 여기서 독자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야심을 품은 사라고사 시골출신의 거칠고 무례한 청년 고야를 만나게 된다. 이 시기에 그린 초기작들도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이 야심 많은 청년화가가 어떤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 하는 궁금증을 자아내기에는 충분하다.
2부에서 고야는 궁정화가단의 말석에 있던 화가 프란시스코 바예우의 누이동생 호세파와 결혼함으로서 드디어 마드리드에 입성하게 된다. 난봉꾼이었던 고야의 아내라는 자리를 평생 묵묵히 지켜냈던 호세파는 결코 행복한 여인이 아니었다. 홋타 요시에는 이를 무척이나 동정했었는지 호세파를 다루는 대목에서는 저자가 눈물을 훔쳐가며 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고야와 호세파에게는 9명의 자녀가 태어났지만, 모두 영아기에 죽고 단 1명의 아들(하비에르)만이 살아 남았다.(저자는 이것이 하늘이 고야에게 내린 벌이라고 단정짓고 있다) 외아들 하비에르마저도 왜곡된 인격의 소유자로 장성하여 평생 무위도식하며 아버지 고야의 삶과 노동의 댓가를 축만 냈다. 고야는 가정적으로 무척 불운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고야느 끝임없이 그림을 그렸다. 사후에 걸작으로 남건 평작으로 남건간에 상관 않고 열심히 그렸다.
3부에서 중년이 된 고야는 출세의 정점에서(국왕 카를로스 4세의 궁정화가로 임명됨) 크나큰 좌절을 맞게 된다. 생사를 넘나드는 큰 병 끝에 귀머거리가 된 것이다. 그 무렵은 스페인의 정세도 어지러워져 고야는 청력을 잃은 대가로 얻은 깊은 시선으로 극악무도한 인간상을 목격하고 남몰래 동판화를 새기기 시작한다. 이와 같은 상황이 심화될수록 고야가 수석궁정화가인지 민중화가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대체 이처럼 세상에 대해 안하무인격이고 배포가 큰 사내가 있었던가하고 새삼 놀란다. 이 무렵 고야가 무수히 남긴 초상화들과 판화, 데생들은 걸작이라고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4부, 10년 이상 계속되는 스페인내전과 연이은 외세의 침입, 왕가의 몰락..... 그러나 귀머거리 노인 고야는 당당하고 의연하다. 그리고 천명인양 쉼 없이 그림을 그린다. 고야가 ´귀머거리의 집´에서 칩거하며 1,2층 벽면에다 그린 ´검은 그림´연작은 노화가 고야의 백조의 노래이다. 홋타 요시에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안내하는 길을 따라 검은 그림 한 점 한 점 앞에 서면 위대한 영혼의 대화가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내게는 간절한 꿈이 있다. 언젠가는 마드리드 시내에 있는 프라도미술관에 머물고 싶은 것이다. 프라도에는 프란시스코 고야의 걸작들이 살아있다. 덕수궁에 허술하게 걸려있던 판화에게서 받은 감동을 떠올리면 프라도에 가는 것이 두렵기도 하다.
역자(김석희)의 말을 인용하며 끝맺는 말을 대신한다.
˝이 책을 번역하는 동안 그 무게와 매력에 압도당한 나머지, 나는 아직도 울창한 숲을 다 벗어나지 못한 느낌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고야의 파란만장한 삶과 창조적 열정도 그렇거니와, 그 고야의 인생과 예술을 활달한 필력으로 서술해낸 작가의 문학적 성취에 대해서도 나는 그저 숨이 막힐 뿐입니다. 위대한 삶과 위대한 글이 행복하게 만난 예를 이 책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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