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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갠 후의 지렁이 |  | |
| 데이비드H.샤피로 : <비갠 후의 지렁이>
역자 : 김성기 / 출판사 : 국일미디어 / 출판일 : 2001/1/20 / 쪽수 : 152
이 책의 카피가 가슴을 찔렀다. ˝호오?˝ ˝살아가는 것이 즐겁습니까?˝라고 물었다. 아니! 아냐.∼ 모든 게 싫어진 지렁이의 이야기란다. 나랑 똑같은 놈이 주인공이군. 흥미가 당겼다.
귀엽게 생긴 지렁이가 환하게 웃고 있는 책인데 나같이 모든 게 싫어졌다고? 뒤 카피도 재미있다. 열심히 살아가지만 갑자기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님을 깨달을 때 이 이야기를 읽어보라고 권한다.
그래, 난 정말 살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어. 열심히 안 산다고 할 수 없지. 하지만, 왜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즐겁지 않냐구?
이야기를 읽었다. 첫 장의 이야기가 무지 마음을 찔러댔다. 흙 파먹고 사는 게 전부인 지렁이의 심각한 권태와 지렁이로 살아가기 싫음은 생각할 여지가 많았다. 정말 단순한 놈이 지렁이야∼ 그럴 만하군 하고 생각했더니, 사실 요놈 지렁이와 우리네 살아가는 것이 별반 다르지가 않다. 매일아침 튕겨지듯 자리에서 일어나 아침도 못 먹고 학교로 달려간다. 학교에서 하는 일은 지렁이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흙을 옮겨놓는 일과 그리 다를 것도 없다.
맨날 그게 그거니까. 퇴근 후라야 볼 것 있나. 집에 돌아와 TV리모콘만 만지작거리다 잠이 든다.
이 지렁이가 심각한 깨달음을 준다. 뭐야, 우리도 정말 징글맞게 단순한 생활을 하고 있군. 그래서 가끔 모든 게 다 싫어지는 건가? 지렁이는 무지개를 찾아 나선단다. 그건 좀 식상하다고 생각했다. 근데 결말은 의미성이 있다. 한바탕 심각하게 자신의 존재에 대해 회의하고 다른 벌레들의 생활을 들여다보고 돌아온 지렁이가 똑같은 포즈로 흙을 옮기고 있건만 이제는 별로 싫지가 않단다.
그건 참 공감이 가는 대목이다. 우린 늘 살아가는 것에 싫증내고 방황하고 다른 것을 찾지만 우린 또 늘 그 자리에 그렇게 살아간다. 그러나, 그런 모든 방황이 필요한 것은 결국 그렇게 살아가는 것에 그다지 싫지 않게 함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이야기의 지렁이는 몹시도 철학하는 지렁이임에 분명하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들이 늘 애매 모호한 품위를 지켜가며 성직자의 냄새를 풍기는 것이 좀 아니꼬웠다.
이 책은 오히려 그런 류의 어른들을 위한 동화보다 훨씬 어른들을 위한 동화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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