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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휘청거리는 오후 |  | |
| 박완서 : <휘청거리는 오후>(박완서소설전집 1)
출판사 : 세계사 / 출판일 : 1993/5/1 / 쪽수 : 546
<한국 사회 천민 부르주아의 속물 근성에 대한 박완서의 문화사>
박완서의 초기작으로 1970년대 후반 작품이다
중매 결혼과 연애 결혼의 대립이라는 ´주요 모순´은 단지 이 작품 내의 주요 대립 구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일 쇼크와 금값 하락, 중동 진출 등으로 기억되는 박정희 대통령 시기의 또 하나의 주요한 사회적 이슈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 친구들 중 특히 여자대학을 나온 친구들에게는 여전히 중매 결혼이냐 연애 결혼이냐가 일생의 가장 결정적인 선택일 수 있다는 것을 볼 때 그 모순은 현재적인 것일 수도 있다.
줄거리를 미리 다 말하면 흥미가 반감되므로 결말은 숨기기로 하자. 윤곽만 말하자면, 작가는 천민자본주의의 부실한 기초를 당시부터 헤아리고 있었고, 오직 물질적 생활 환경의 안락함을 결혼을 통해 얻는 것이 지상 목적인 초희와 연애지상주의자로서 물질 세계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낭만주의자인 우희를 대비시킨다, 막내 말희가 정신과 물질이라는 두 가지 요구를 충족시키는 결혼을 할 것이라는 예측으로 매듭짓는 것을 보면, 정-반-합이란 헤겔 변증법의 명쾌함은, 반헤겔주의의 시대에 오히려 그리워지는, 생생한 삶을 보여줄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작품엔 커리어우먼은 아직 등장하지 않는다. 80년대 강석경 소설에서도 그야말로 꽃 같은 20대를 보내며 결혼을 준비하는 여성들이 자기 모순을 느끼지 않고 있으니까 90년대 소설에 와서야 비로소 일하는 여성이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작가가 시점을 같이할 수 있는 것이 부모 세대이므로, 초희 우희 말희의 부모인 허성씨와 민 여사의 묘사가 가장 실감난다. ´주책없이´ 작은 일에도 어쩔 줄 몰라하며 물욕은 엄청난 민여사와, 결혼 이후의 실제적 생활(정신생활 또는 물질생활)은 상상하지 못하도록 철딱서니없는 딸들의 혼수감 마련에, 공장에서 잘린 왼손을 떳떳해하지 못하면서도 마냥 돈을 벌어들여야 하는 전직 교감 허성씨가 가엾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남자로부터 부양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그 피부양 상황을 지속시키기 위해 인간성의 어느 특정 부분만을, 그것도 ´보여주기 위해´ 발전시키면서 여성은 자기 분열을 일으키게 된다.(경제력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남성도 일그러지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사회가 여성이 이미지로만 존재하기를 바라는 것은 21세기인 지금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쩌면 신체 지배가 더 정교해지고 고도 자본주의화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네 미장원´이며 ´옷을 맞추는´ 양장점이며 명동과 미도파 등의 ´시내´ 문화 코드가 어딘지 정겨웠다. 김장김치라는 게 있었고..... 그러고 보니 유난히 손톱을 길게 길러 빨갛게 칠하곤 했었다. 여자들이 모여 앉아 줄칼로 손톱 다듬고 있고, 담장의 덩굴장미도 유행이었던 것 같고...
허성씨는 가내공업 수중의 영세 사업장의 자본가로서, 자신의 작업장에서 저임금으로 혹사당하는 소년공들의 모습과 , 자신의 가정의 여성스러운 화사함이 번드레한 화려함으로 겉치레의 화려함이 다시(마담뚜를 포함한, 혼수물자도 포함한) 결혼 신화로 발전해나가는 양상 사이의 처연한 대조를 인식하고 있지만, 그는 그를 옭아맨 남성성을 인정받으라는 그물은 인식하지 못하며, 단지 가족주의 이데올로기에 봉사하는 것으로만 여긴다, 계급갈등의 문제는 전태일 이후 자의식을 가져나가게 되었을 노동자들과 자본가 집안 사이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소자본가와 대자본가 사이의 간격 그리고 소자본가 가족의 상승욕구를 통해 주로 표현된다.
맺으며, 박완서가 (다른 작품에서) 회상하는 50년대 구호 물자들과 초기작의 70년대 혼수물자들...이 계보를 잇는 90년대의 무엇이 있었을까? 글쎄, 정신-물질이란 이분법도 사라진 지 오래인데, 80년대에 형성된 강남이라는 경제적 중상계층 거주 지역의 욕망이 90년대 과시적 소비 문화로 나타난 것? 그런데 문화라거나 담론이라거나, 이런 말들 아닌 구체적인, 살아있는 이름을 듣고 싶다. 만져볼 수 있는 것들을.
by http://www.edu.co.kr/kwank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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