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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여자의 열매 |  | |
| 한강 : <내 여자의 열매>
출판사 : 창작과비평사 / 출판일 : 2000/3/15 / 쪽수 : 328
<연애에 대한 갈망과 페미니즘>
명상법에 관법이라는 것이 있다. 잡념을 거두고 생각을 비우는 명상이 아니라 명상을 하면 끊임없이 침범해오는 잡념을 인정하고 오히려 그 잡념의 꼬리를 쫓아 자신을 관조함으로써 생각을 비우는 방법이다. 단편 <붉은 꽃 속에서>에서도 약간의 언급이 나오지만 작가는 이러한 잡념을 관조함으로써 생각의 끄트머리를 쫓는 방식으로 소설을 기술하고 있다. 명상을 하고 나면 사고가 맑아진다. 소설에서는 관조에 의해 잡념이 투명해지면서 말미에서 화해를 이룬다. 하지만 그 화해는 열정이 아닌 차분한 덤덤함으로 남아있다. 이러한 작가의 글쓰기는 그 잡념이 독자의 코드와 일치할 경우 많은 공감을 일으키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다소 지리하고 하찮은 작업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작가의 잡념은 연애에 대한 갈망에서 나온다. 갈망은 완벽한 남자에 대한 동경과 불완전한 남자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의 체념에서 비롯한다. 소설에서 여자는 남자보다 정신적인 노동에 종사하고 있다. 또 남자에 대한 선택이 정신적 교감에서보다는 남자의 외모나 모성애와 같은 동기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연애에 대한 갈망은 갈등으로 표출된다. 하지만, 작가는 갈등을 섣부른 화해로 중화시키거나 희망으로 바꾸지 않는다. 여자는 남자를 버리고 떠나기도 하고 다시 남자를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결코 남자에게 종속되지 않는다. 작가에게 여자는 홀로 서있는 존재다.
결국 연애에 대한 갈망이라는 잡념에서 출발한 작가는 명상을 통해 사고가 점점 투명해지면서 페미니즘에 도달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남자는 단순하고 형체만 남아있을 뿐이다. 왜 남자가 단순하고 속물적인지에 대한 설명조차 필요 없다. 반면 여자는 자신의 내면을 가꾸는 것을 끊임없이 추구한다. 여자는 때로는 남자를 포용하더라도 남자보다 우위에 있다.
<어느 날 그는>에서의 여자는 교정을 보고 대학공부를 하지만 남자는 책을 배달하는 무지하고 희망이란 없다. 여자는 남자에게 몸을 주지만 단순하고 체바퀴 돌듯 탈출구 없는 남자를 떠나간다. <아기부처>에서는 그림을 그리고 생각을 하는 여자는 온몸에 화상 흉터로 얼룩지고 남의 글이나 읽는 아나운서인 남편을 무관심으로 대한다. <해질녁의 개는>에서 꽃을 팔던 어머니는 고향인 과수원을 그리워하며 붕어빵을 파는 아버지를 떠난다.
<붉은 꽃 속에서> 여자는 가족내에서 남녀차별이라는 관습에 편승하여 여동생을 괴롭히는 오빠를 떠나 수도승이 된다. 그리고 표제작 <내 여자의 열매>에서 여자는 세상 끝으로 떠나는 꿈을 접고 결혼을 하지만 결국 남편을 버려두고 차라리 식물이 되어 다시 자신의 꿈을 꾼다.
작가의 치열함이 연애의 갈망을 페미니즘으로 이끌고 있으나 여성 독자가 아닌 남자인 나에게까지 공감하는 보편성을 주는 것 같지는 않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내가 남자이기 때문이겠지만 작가의 사물에 대한 관찰력의 빈약함에도 있는 듯하다. 지나치게 많은 비유가 참신함보다는 생경함으로 느껴지고 소설의 시점이 혼재되어 논리성을 상실하고 있는 부분도 있다. 작가의 치열함이 페미니즘의 둘레를 벗어나 보편성에 다다르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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