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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역사
알베르토 망구엘 : <독서의 역사>

역자 : 정명진 출판사 : 세종서적 / 출판일 : 2000/1/30 / 쪽수 : 460

천여 권의 책을 소장하고, 그 두 배 이상의 책을 보았다고 자부하며, 감명 깊게 읽은 책은 두세 번 열독도 서슴지 않기에 내심 독서가로 손색이 없다 자부하던 터였다. 청계천을 이 잡듯이 뒤져가며 귀한 책도 고르고 특히 아끼는 책은 방충제를 넣은 유리문 책장에 따로 관리하기도 한다.
자식에게 물려 줄 가장 비싼 재산으로 책을 삼고 자식 교육도 책을 던져 주는 것으로 손 턴다는 대계도 세워 두고 있다. 이만하면 꽤 진중한 독서가가 아닐까. 그런데 그 유리문 책장에 보관하는 책 하나가 ´나는 괜찮은 독서가´라는 자찬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소크라테스의 환생인 듯싶은 그 책은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의 역사>이다. <독서의 역사>는 나의 책 사랑이 딱지 맞기 딱 좋은 사춘기 풋사랑 같은 것에 지나지 않음을 일갈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니까 나는 독서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었던 셈이다. 여자의 마음을 전혀 모르는 숫총각처럼.
나는 독서에도 장구한 역사가 있다는 것은 짐작조차 못 했다. 뭐 그런 것이 있을 필요가 있겠으며, 책이 생긴 이래로 독서는 함께 존재했던 것이 아닐까. 이 단순하고 당연해 보이는 논리가 여태 내 눈을 가렸고, 나는 독서의 아버지들을 모르는 후레자식처럼 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 역시 독서의 고아가 아닌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독서가들의 맥락 그 언저리에 21세기의 어느 독서가로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지극히 정상적인 묵독이 고대 아우구스티누스에겐 경이로운 독서법이었으며 도서관이 책 읽는 소리로 난장판 같았다니 나로부터 또 다른 수백 년이 흐른 뒤엔 독서와 독서가의 관계에 또 어떤 변화가 나타날지는 상상조차 어렵다.
책이 가진 권위는 중세에 여성의 독서를 금지시키기도 했다. 여성들이 책을 읽으면 연애 편지 쓰는 데나 소용 있을 거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아내와 연애 시절 주고 받던 많은 연애 편지는 그 당시 책을 권위로부터 끌어내려 몰래, 끊임없이 독서한 아내와 같은 여성들의 노력에 빚지고 있는 셈이다. 우리 사랑의 결실에 공헌한 연애 편지를 쓰지 못했던 그때 아내와 내가 태어나지 않은 것은 천만 다행이다.
위대한 작가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훌륭한 독서가였다는 것이다. 바꾸어 얘기하면 위대한 작가들은 그 이전의 이름 없는 작가에게조차 유산을 물려받았다는 것이다. 카프카, 휘트먼, 보르헤스 역시 도서관에 책을 찾아왔다가 죽어서 영원히 도서관에 살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 어느 날 도서관에 가 보았는데 나는 거기서 책의 숨소리들과 저자들의 목소리들을 또렷이 들을 수 있었다.
그 유명한 미국 펭귄북이 신문 가판대나 잡화점에 놓이기 시작한 1935년도 이래로 오십 년이 조금 더 지나지 않아 책은 이제 없는 곳이 없어졌다. 지금은 인터넷으로 굳이 서점에 가지 않고도 원하는 책을 받아 볼 수 있다. 옛날에는 대대손손 물려 줄 재산 품목이었던 책은 오늘날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넘쳐나고 있지만 독서 인구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책이 없어서 책을 못 본 고대의 독자들보다 책이 넘쳐도 책을 안 보는 현대의 독자들이 더 메마르고 불쌍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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