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글 나누기
joungul.co.kr 에서 제공하는 좋은글 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엄마와 함께 칼국수를
김곰치 : <엄마와 함께 칼국수를>

출판사 : 한겨레신문사 / 출판일 : 1999/7/9 / 쪽수 : 317

<가족간 화해를 위하여>
우리에게 가족이란 무엇일까. 아버지는 한때 대학을 조금 다니기도 했으나 평생을 박봉의 철도노무공무원으로 일하며 항상 찡그린 얼굴을 하고 있다. 화가인 누나는 혼자 살며 불면으로 밤새 뜬눈으로 지내고는 오랜만에 하는 동생과의 전화통화에서 자신의 정신질환과 고통에 대해 지겹도록 이야기한다. 또 한 명의 누나는 시집가서 엄마가 병들어 아플 때에도 가사를 엄마에게 맡기고 학원을 차려 자기 욕심만을 채운다. 여동생 둘은 학교를 핑계로 가족일에 무관심하고 밤에는 방에서 텔레비전 연속극이나 본다.
그런데 엄마가 눈이 멀어져 가는 병에 걸리고 소개받아 찾아간 병원의 의사는 사기꾼이다. 병원을 바꾸어 진찰을 받아보니 시신경을 종양이 누르고 있어 수술이 시급하다고 한다. 종양이 뇌를 압박하여 어떤 장애를 가져올지 불안하다. 수술을 받게 되더라도 결과는 불확실하고 어쩌면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맹인으로 보내야할지도 모른다.
한때 부모님으로부터 법관이 되기를 기대 받았던 외아들인 현직은 서울에서 잡지사 말단기자로 일하고 있다. 현직은 엄마의 입원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가족들의 행태에 염증을 느낀다. 특히 아버지의 얼굴 찡그림, 민간처방에 대한 의존, 자식에 대한 서투른 애정은 아들의 아버지에 대한 애증과 결합하여 사사건건 참을 수 없는 갈등이 초래된다. 현직에게는 가족 모두 자신을 위해서 적당히 타협하고 행동할 뿐 누구도 엄마를 진정으로 위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느껴진다. 아버지의 엄마에 대한 관심은 지나친 자기과시와 책임을 모면하고자 하는 행위로 보이고, 동생들의 무관심은 지탄받아 마땅한 것으로 생각된다.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신뢰할 수 없다. 자신의 행동 또한 세상사람들의 눈을 의식한 위선으로 느껴질 뿐 엄마에 대한 애정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식구라고 하지만 모두들 위선 또는 무관심 둘 중의 하나로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엄마의 상태는 점점 악화만 되고 가족들을 점점 옥죄어 간다. 이러한 상황에서 탈출구는 어디에 있는가.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문제가 해결되는가? 상황이 보다 절박해짐에 따라 가족간에 서로 화해하고 기적이 발생하는가? 아니면 이 모든 갈등은 해소될 수 없고 엄마의 죽음과 함께 폭발하거나 그냥 덮어두게 되고 말뿐인가?
작가는 여기에서 문제에 답하지 않는다. 방향을 틀어 현실에 직면하는 대신 추억으로 돌아간다. 엄마와 지냈던 따뜻한 기억으로 문제를 덮는다. 어렸을 때 비오는 날 엄마가 끓여주던 칼국수. 다시 엄마의 수술 후 시장의 후미진 골목에서 먹게되는 칼국수. 지난날의 추억과 얼마 남지 않은 엄마와 보내게될 나날을 채워줄 추억들만이 남는다. 이렇게 과거와 미래의 추억들로 가슴속이 채워지자 버스 차창에 비춰지는 모든 것이 햇살을 받아 따뜻하게 들어온다.
작가의 현실 도피적인 문제해결이 다소 불만족스럽다. 하지만 애증으로 얼켜있는 가족에게 어디 쉬운 결론이나 논리적인 해결책이 있을 수 있을까? 이러한 점에서 오히려 가족간의 화해를 추구하는 단초로서 추억을 제시하고 있는 점은 설득력 있어 보인다. 애증의 추억 중에서 ´애´의 추억을 보다 소중히 간직하고, 남아있는 나날을 이것으로 채우도록 노력하는 것이 유일한 현실적인 처방이 아닐까. 현실의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따지고 대면하고 부딪히는 것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문제를 덮고 쉬운 화해를 모색하는 것도 좋은 덕목이다.

 
비즈폼
Copyright (c) 2000-2025 by bizforms.co.kr All rights reserved.
고객센터 1588-8443. 오전9:30~12:30, 오후13:30~17:30 전화상담예약 원격지원요청
전화전 클릭
클린사이트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