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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내가 은희경님을 알게된 건 내 푸르름이 묻어있던 갓 20을 넘긴 아니면 두 세 고개를 더 넘긴 나이였으리라..
창문사이로 비춰드는 햇빛을 스포트라이트인양 의식하며 그 속에서 책을 들여다보는 내가 마냥 드라마틱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만의 특별한 분위기, 생각 등등 여느 사람과 달라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그때 내가 선택했던 게 아마도 풍부한 감수성과 때로는 이지적인 사고(思考)를 위해 책을 읽었던 것 같다.
그래서 참 많은 책을 읽었다. 처음엔 대부분 여류작가들의 소설과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많이 읽었었다.(언젠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말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의 소설속의 인물들을 너무 너무 좋아한다.)
그 중 은희경님의 ˝새의 선물˝을 읽고 은희경님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대개의 386세대 여성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80년대 아픔의 잔재라든가 매번 똑같은 불륜을 다루는 태도(예를 들면 얼마전 김윤진이 나왔던 밀애라는 영화의 원작 전경린의 ´내 생애에 꼭 하루뿐인 특별한 날´-개인적으론 좋아한다)읽고 나면 한없이 쓸쓸해지는 그런 비관적인 시각등이 있긴 하지만 은희경님은 남녀를 불문하고(´마이너리그´를 보면 알 수 있다), 세상에서 격리된, 혹은 타인과 단절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그들은 친밀한 의사소통이 사라진 현실을 지극히 외로워하며 그 탈출을 시도하는 한편, 그 외로움과 단조로움을 받아들이고 타인에 대한 구차한 의존으로부터 벗어나려고도 한다. 그런 당돌하면서도 슬픈 그러나 또 다른 희망으로 가득차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나면 왠지 모를 여운이 오랫동안 남아있다.

´나는 네 웃음소리를 좋아했어´라고 시작하는 이 소설은 죽은 남자를 향하고 있는 한 여자의 독백이다.
어머니가 암으로 죽어갈 때 만난 남자. 그 남자와 가까워졌는데, 어느날 갑자기 그 남자가 공중전화부스에서 죽었고, 그 죽음은 자살로 추정된다. 그리고 그녀는 사진을 들여다보며 죽은 남자를 향해 말한다.
죽었다고 해서 갑자기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으니 그냥 죽은 너를 사랑하겠다고, 너 없이 내일을 살아가야 하는 내가 죽은 너보다 더 불행하고, 그리고 너를 얼마나 사랑했었는지에 관해 이야기하며 과거를 회상한다.
그 남자는 그녀가 어렸을 적 잠깐 만난 적이 있는 엄마 친구의 아들이고 사실은 그녀와 이복 남매라는 것이다.
결혼전 어머니가 사랑했던 남자의 약혼식에 갔던날 그녀가 생겼고 그녀의 죽은 애인은 아버지의 또 다른 자식이다.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는 말은 그 남자가 죽던 날 그녀가 남자에게 한 이야기이다. 오래도록 비를 맞으며 걷고 집으로 돌아온 남자의 머리를 감겨주었을 때 문득 고개를 들어 몇 시냐고 물어보는 남자를 향해 그녀는 농담처럼 말했다.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아라고. 불가항력적으로 다가오는 운명을 알지 못한, 찰나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인생의 아이러니가 극대화되는 순간이다.

처음 제목을 보고 생각한 것은 시간 가는 것을 모를 정도의 행복함이란 과연 무엇일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작품을 다 읽었을 때는 제목에서 주는 따뜻함과는 반대로 상당히 서늘한 느낌을 받았다. 항상 일정한 시간동안 일정한 간격을 움직여 변하지 않는 삶의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시계는 규칙적이고 정상적인 느낌을 준다.
그런점에서 이 작품 속의 인물들은 시계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자신쪽으로 자꾸 되돌아오는 시계바늘에 찔려 가슴에 푸른 멍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운명과 싸울수도 없고 운명을 거부할 수도 없고, 같은 아픔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상처를 치유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것이 인생의 잔혹함인 것일까..

예전에 읽었지만 다시 한번 더 보게 된 이유가 있다.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고 하는데 요즘의 나는 시계를 자주 본다.
시간에 쫓겨 머리속 생각은 바쁜데 나의 몸은 앞으로 나가지 않는 그런 꿈을. 얼마전에 꾸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봄처녀 바람난다는 그 봄이 성큼성큼 다가와서 진한 사랑에 생각 두근거리는 것일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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