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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그림자
아버지의 그림자



“영아, 아가! 우리 큰딸. 옛날에 돈도 안 주고 술 사 오라고 쫓아내서 미안하다. 나 죽거든 그 일 가슴에 담고 있지 말거라.”



오랜만에 집에 전화를 했는데 술을 드신 아버지께서 울먹이며 하신 말씀이다. 나는 대답만 겨우 하고는 전화기를 붙들고 소리 죽여 꺼억꺼억 울고 말았다.



내가 어릴 적 알콜중독자였던 아버지는 집에 돈이 없어도 술은 드셔야 했으니 어린 딸을 술 사 오라고 밖으로 내몰기 일쑤였다. 안 한다고, 외상으로 어떻게 사 오냐고 문 밖에서 울먹이며 발만 동동 구르는 나를 아버지는 “저 망할 년 잡히기만 해봐라” 하며 무서운 얼굴로 쫓아오셨다. 그 좁은 동네를 정말 죽기 살기로 뛰었다. 잡히면 맞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아버지 시야에서 겨우 벗어나 동네 대나무숲이나 산에 숨어 있다 아버지가 잠이 드신 뒤에야 내려오곤 했다. 형제가 다섯 명인데 유독 큰딸인 내게만 그러셨다. 그땐 아버지가 어찌나 원망스러웠던지….



그런데 그 일도 세월이 지나 시집가서 애 낳고 살다 보니 모두 아스라이 잊히었다. 형제들끼리 그 시절 이야기가 나와도 아픈 기억이 아니라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는 추억인데, 아버지는 내내 가슴에 사무치시나 보다. 당뇨합병증이 와서 무릎 밑을 잘라 내는 수술을 하신 뒤 술을 또 드시기 시작했다. 거의 10년 동안 안 드셨는데, 얼마나 충격이 크셨으면….



아버지 저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이제는 우리 애들에게 즐거운 추억처럼 얘기해 주는 걸요. 덕분에 저 학교 다니는 동안 달리기 성적도 아주 좋았잖아요. 당뇨 때문에 고생하시는 아빠, 나이 서른 넘은 딸에게 “우리 아가, 우리 영아 큰딸” 하고 불러 주시는 다정한 아버지. 이제 술 그만 드시고, 마음에 드리운 그림자 훌훌 털어 내세요.


문미영 님 / 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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