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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재
심경석 : <이상재>

출판사 : 규장문화사 / 출판일 : 1993년 3월 1일 / 페이지수 : 160

1850년에 태어난 이상재는 정치가, 종교가, 독립 운동가로서 많은 활동하였다.
7세부터 서당에서 한학을 배웠고, 18세에 첫 과거를 보았으나 노력 부진으로 낙방하였다. 그 뒤, 박정양을 찾아가 13년간 식객 생활을 하였다. 13년이라는 세월은 결코 짧지만은 않은데... 힘겨운 날들이 많았을 것이다.
1881년 신사 유람단의 일원으로 일본을 시찰했고, 1882년 처음으로 우정국 주사라는 벼슬자리에 올랐다. 벼슬에 올라 얼마나 좋았을까?
1887년 일들 서기관으로 미국에 건너갔다가 이듬해 귀국, 외국어 학교 교장 등을 역임했다. 1896년 독립 협회 창립에 참가했으며, 이후 만민 공동회의 지도자로 활동했다. 만민 공동회의 지도자가 얼마나 힘겨운데, 정말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1904년 황성 기독교 청년회(YMCA)에 가입하여 총무를 역임하는 등, 이 때부터 청년운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1924년 조선일보사 사장에 취임하였으며, 1927년 신간회 회장직을 맡아 항일 투쟁을 펼치다가 1927년에 숨졌다.
나라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 놓았던 이상재. 더욱 더 존경하고 본받아야겠다.
그가 죽기 전의 소원은 독립이었다. 평생을 오로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젊은이들과 함께 한 이상재. 정말로 존경하고 싶은 인물이다. 내가 만약 이상재 라면은 일본에 복종하며 조용히 살다 죽었을 지도 모른다. 무턱대고 겁 없이 독립운동은 참가 못했을 것 같다. 이상재는 고문과 고통이 두렵지도 않은 채 독립운동을 한 사람이다. 어쩜 이런 사람들 때문에 우리가 지금 일본의 지배가 아닌 곳에서 살 수 있는 지도 모른다.
공사관에 있는 고종에게 이상재가 갔을 때 일이다. 웬 낯선 보자기 하나가 고종 앞에 있었다. 그러나 이상재는 보자기를 풀어 보지도 않고도 그것이 친러파 대신들이 돈을 받고 판 벼슬 임명장임을 알고, 상감마마께서 계신 방이 춥다며 그 보자기를 난로에다 처넣어 버렸다. 그리고는 고종 앞에 엎드려 운 사실이 있다.
그 후 이상재는 내 한 몸 바쳐 기우는 나라를 바로 세울 수만 있다면 부서져 가루가 될 때까지 이 나라에 몸 바치리라! 하며 우리 나라를 지켜 왔던 것이다.
항상 나라를 사랑하는 이상재의 애국심을 마음 속 깊이 느끼게 되었고, 이처럼 그가 걸어왔던 길을 우리도 되새기며 걸어갈 수 있다면, 우리 나라는 더욱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함에 대하여 너무나도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앞으로도 이런 인재가 양성되어 우리 나라를 더욱더 밝혀주었으면 좋겠다. 앞으로 우리 나라를 사랑하고 아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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