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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의 눈
헤밍웨이 : <킬리만자로의 눈>

역자 : 오미애 / 출판사 : 범우사 / 출판일 : 1999/11/20 / 페이지수 : 234

영원한 나의 벗 해리에게
잎새 한 장 걸치지 못하고 찬바람을 이겨내는 거리의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애처로운 겨울이다. 거친 바람에 심하게 떨어대는 그것들을 보며, 나는 머나먼 킬리만자로의 품에서 하얗게 식어간 해리를 떠올린다. 내가 너를 떠올리는 지금 이 순간, 너는 하늘에 맞닿은 킬리만자로 꼭대기에서 세상의 갑갑함에 힘없이 나부끼는 나를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겠지. 너의 길고도 고되었을 육신의 죽음 앞에서 나는 너를 지켜만 보았다. 그러나 나는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비록 너의 육신에는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었을망정, 내가 너무나도 사랑했던, 자신감에 차 있고 선량했던 너의 영혼은 한여름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고깃덩이보다 더 부패해 있었다. 너는 너를 잃고 너 아닌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고 있었다.
사랑하는 해리! 닿을 수 없는 킬리만자로의 새하얀 눈이 되기 전에 너는 이미 내가 아는 네가 아니었다. 언제부터일까? 너는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선함과 예술적 재능을 오만과 자만이라는 두꺼운 껍데기 속에 가두어버렸다. 무엇이 너를 그렇게도 참을 수 없는 고통의 암흑으로 내몰았던 것일까? 너는 무엇 때문에 너무나 사랑스런 네 모습을 그리도 차가운 껍데기에 꽁꽁 감추어야만 했을까? 그 때는, 너의 영혼이 킬리만자로 꼭대기에 살포시 내려앉던 그때에는, 정녕 나는 알지 못했다. 너에게 있어 너를 사랑한다 했던 모든 이들의 무관심이 오히려 물리적 힘에 의해 가해지는 폭력보다 더 큰 아픔을 가져다 주었다는 것을 그 무렵 나는 알지 못했다. 너의 영혼은 아프리카로 떠나기 전 이미 나를 포함한, 무관심했던 방관자들에 의해 갈기갈기 찢어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조금은 먼 듯한 킬리만자로 꼭대기에서 너는 아무런 걱정도 없이 행복한 미소를 간직한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으리란 것을... 너의 육신과 영혼의 분리를 지켜보면서 나는 너와의 영원한 헤어짐이 너무도 가슴 아팠다. 그러나 너무나 숭고하고 위대했던 너의 투쟁의지는 너의 영혼에 따스한 바람을 불어넣었고 비록 너의 심장은 멈추었지만, 너의 영혼은 세상에서는 갖지 못했던 평온과 안락을 얻었으리라.
사랑하는 나의 벗 해리! 모든 인간은 어찌하여 죽음 앞에서만 진실해지고, 또 순수해질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은 결국 죽음 속에서만 진정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단 말인가? 해리! 나는 도대체 아무 것도 알 수가 없구나. 너를 죽음으로 몰고 간, 또한 나 역시도 깊은 고뇌의 암흑 속으로 몰고 간 이 세상의 수많은 모순들이 그저 원망스럽기만 하구나! 그러나 나는 결코 쓰러지지 않으리라. 그 모순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면, 나는 당당히 거대한 그 힘들에 맞서 싸울 것이다. 절대 내 자신을 가만히 두지 않으며, 절대 내 자신을 그냥 잊지도 않을 것이다. 영원한 나의 벗아!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깊은 어둠 속에서 너는 나의 마음 속에 한줄기 빛이 되어 분명 나를 인도하리라.
너는 이 세상에, 그리고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씨앗이 되어 영원히 내 뜨겁게 뛰는 가슴 속에 깊이 간직되리라. 언젠가 그 씨앗이 더 깊숙이 내 가슴속에 뿌리내릴 때 나는 너와 함께 영원한 안락의 세계, 머나먼 킬리만자로의 하얗게 빛나는 눈이 되리라.
언젠가 미소 가득히 하고 만날 너와 나의 재회를 기다리며 오늘도 나는 너를 생각한다. 잊지 못할 내 벗아, 사랑하는 내 벗아!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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