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서를 어겼을 때의 책임
각서 마스터·9분·
각서를 어겼다고 곧바로 재산에 손을 댈 수는 없고, 집행권원을 먼저 만들어야 합니다. 그 통로가 지급명령과 소송입니다. 각서는 그 절차에서 청구를 세워 주는 증거로 쓰입니다.
지급명령이 확정되면 민사소송법 제474조에 따라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이 생기고, 소송목적의 값이 3,000만 원을 넘지 않으면 소액사건으로 다루어집니다
어겼다는 사실만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약속을 어긴 순간과 재산에 손이 닿는 순간 사이에는 절차가 통째로 하나 들어 있습니다.
각서를 받아 둔 쪽이 가장 자주 겪는 낙차가 여기 있습니다. 기한이 지나도 상대가 움직이지 않아 각서를 들고 어디론가 가면 될 줄 알았는데, 정작 그 종이를 받아 주는 곳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입니다.
앞 글에서 본 대로 각서는 사문서일 뿐이어서 그 자체로 집행의 근거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니 각서를 어겼을 때의 책임을 묻는 일은 두 단계로 나뉩니다. 먼저 그 약속이 있었다는 것과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을 법원이 인정한 문서를 만들고, 그다음에 그 문서로 집행에 들어갑니다.
이 순서를 알고 있으면 각서를 받을 때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각서에 무섭게 적어 두는 것보다 나중에 첫 단계를 빠르게 통과할 수 있게 적어 두는 편이 실제로는 훨씬 강합니다.
그리고 첫 단계로 가는 문이 하나가 아닙니다. 아래에서 그 갈래를 봅니다.
- 각서에 적힌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기한이 지났고 이행이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는 지점입니다.
- 집행권원을 만든다지급명령을 신청하거나 소송을 제기해 법원의 판단을 문서로 받습니다.
- 집행에 들어간다집행권원에 집행문을 받아 비로소 강제집행 절차가 열립니다.
가운데 칸이 이 글의 본론입니다. 첫 칸은 이미 벌어진 일이고, 마지막 칸은 앞의 두 칸이 끝나야 시작됩니다.
마지막 칸의 절차를 이 글에서 단계로 풀지는 않겠습니다. 집행문을 어떻게 받는지와 무엇이 필요한지는 사안마다 갈리고, 여기서 확인한 것은 그 단계가 별도로 존재한다는 사실까지입니다.
가장 가까운 문 — 지급명령
다투지 않는 상대라면 재판을 열지 않고도 확정판결과 같은 문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돈을 받아야 하는 사안에서 먼저 검토되는 것이 지급명령입니다. 법정에 나가 다투는 절차가 아니라 서류로 진행되는 절차여서 부담이 작습니다.
다만 아무 청구에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조문이 대상을 정해 두었고, 거기에 조건 하나가 단서로 붙어 있습니다. 이 단서가 각서 사안에서 실제로 걸리는 자리입니다.
제462조(적용의 요건) 법원은 금전, 그 밖에 대체물이나 유가증권의 일정한 수량의 지급을 목적으로 하는 청구에 대하여 채권자의 신청에 따라 지급명령을 할 수 있다. 다만, 대한민국에서 공시송달 외의 방법으로 송달할 수 있는 경우에 한한다. 제474조(지급명령의 효력) 지급명령에 대하여 이의신청이 없거나, 이의신청을 취하하거나, 이의신청이 각하된 때에는 지급명령은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이 있다.
민사소송법 제462조 · 제474조
앞 조문의 본문을 보면 대상이 금전이나 대체물, 유가증권의 일정한 수량의 지급으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앞 글에서 본 공정증서의 요건과 닮았습니다. 무엇을 하겠다는 행동의 약속은 이 문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단서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공시송달을 배제하고 있어서 상대에게 서류가 닿지 않으면 절차가 앞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각서를 받을 때 주소와 연락처를 적어 두는 실익이 여기서 드러납니다. 사람을 찾지 못하면 가장 빠른 문이 닫히기 때문입니다.
뒤 조문은 결과를 정합니다. 상대가 이의를 하지 않고 기간이 지나면 그 지급명령은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을 갖습니다. 곧 집행권원이 만들어집니다.
이의가 들어오면 소송으로 넘어갑니다
상대가 다투기 시작하면 서류만으로 끝나던 절차가 법정으로 옮겨 갑니다.
지급명령의 장점은 상대가 다투지 않을 때 빛납니다. 반대로 상대가 이의를 하면 그 사건은 통상의 소송 절차로 넘어가게 됩니다. 그때부터는 약속이 있었는지, 얼마인지, 이미 일부를 갚았는지를 두고 다투게 됩니다.
여기서 각서의 값어치가 드러납니다. 처분문서인 각서는 그 약속이 있었다는 점을 세워 주기 때문에, 다툼의 무게중심이 있었느냐에서 지켰느냐로 옮겨 갑니다. 각서가 없으면 그 앞 단계부터 세워야 합니다.
소송으로 넘어갈 때 사건의 크기에 따라 다루는 방식이 갈립니다. 그 경계가 소액사건이고, 자주 인용되는 3,000만 원이라는 숫자가 여기 붙어 있습니다.
| 갈래 | 언제 쓰는가 | 무엇이 남는가 |
|---|---|---|
| 지급명령 | 돈을 청구하는 사안이고 상대에게 송달이 가능할 때 | 이의가 없으면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 |
| 지급명령에 이의 | 상대가 액수나 존부를 다툴 때 | 통상의 소송 절차로 이행 |
| 소액사건 | 소송목적의 값이 3,000만 원을 넘지 않을 때 | 판결 |
| 통상의 민사소송 | 그 밖의 경우 | 판결 |
표의 둘째 줄을 미리 염두에 두는 편이 좋습니다. 상대가 다툴 것이 뻔한 사안이라면 지급명령으로 시간을 쓰기보다 처음부터 소송을 고르는 선택도 있습니다.
셋째 줄의 숫자가 어디에 적혀 있는지는 다음 절에서 봅니다. 이 숫자를 두고 오가는 설명 가운데 출처를 잘못 짚은 것이 많습니다.
3,000만 원이라는 기준은 법률에 없습니다
법률은 범위를 정할 권한만 넘겨 두었고 숫자는 대법원규칙에 있습니다.
소액사건 이야기를 하면 소액사건심판법에 3,000만 원이라고 적혀 있다는 설명을 자주 만납니다. 사실과 다릅니다. 법률은 어떤 사건을 소액사건으로 할지의 범위를 대법원규칙에 넘겨 두었고, 그 숫자는 규칙에 있습니다.
사소해 보이지만 이 구조를 알아 두면 쓸모가 있습니다. 법률에 박힌 숫자가 아니라 규칙에 있는 숫자라는 것은, 국회의 법 개정을 기다리지 않고도 조정될 수 있는 자리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래된 글에 적힌 금액을 그대로 믿으면 안 됩니다.
아래는 두 법령을 겹쳐 읽었을 때의 내용입니다.
지방법원 및 지방법원지원의 제1심 사건으로서 제소한 때의 소송목적의 값이 3,000만 원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금전, 그 밖의 대체물이나 유가증권의 일정한 수량의 지급을 목적으로 하는 제1심 민사사건을 소액사건으로 한다.
소액사건심판법 제2조 제1항 · 소액사건심판규칙 제1조의2 — 금액 기준은 법률이 아니라 대법원규칙에 있습니다
기준이 되는 것은 각서에 적힌 금액이 아니라 소를 제기할 때의 소송목적의 값입니다. 두 값이 대체로 겹치지만 언제나 같지는 않습니다.
소액사건에 어떤 절차상의 특례가 있는지는 이 글에서 다루지 않겠습니다. 확인한 것은 경계가 되는 금액과 그 금액이 어느 법령에 적혀 있는지까지입니다.
책임의 내용은 조항이 정합니다
어겼을 때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는 각서에 적어 둔 문장이 정합니다.
여기까지가 절차의 이야기였다면, 남은 것은 무엇을 청구할 것인가입니다. 각서를 어긴 데 따르는 책임의 내용은 그 각서에 무엇을 적어 두었느냐에 따라 갈립니다.
금액과 기한이 적힌 지급 약속이라면 청구할 것이 분명합니다. 반면 어기면 책임을 진다는 정도로만 적혀 있으면, 실제로 얼마의 손해가 생겼는지를 따로 세워야 합니다. 이 차이가 소송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크게 가릅니다.
각서에 위반 시의 금액을 미리 적어 두는 방법도 있습니다. 다만 그 조항이 어떻게 다루어지고 왜 이름대로 되지 않는지는 별도의 물음이어서, 각서 위반 시 조치를 적는 법에서 조문과 함께 다룹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갈라 둡니다. 각서를 어긴 것 자체는 형사 문제가 아닙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처벌이 따르지는 않으며, 이 글이 다룬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민사 절차입니다.
각서를 받아 둘 때 미리 맞춰 둘 것
셋째 줄을 특히 강조하는 까닭은 앞에서 본 단서 때문입니다. 각서를 아무리 잘 써 두어도 사람을 찾지 못하면 절차가 시작되지 않습니다.
넷째 줄은 다툼이 붙었을 때를 위한 것입니다. 무슨 일로 생긴 의무인지가 적혀 있으면 상대가 이 돈이 왜 내 돈이냐고 나올 여지가 줄어듭니다.
자주 묻는 질문
각서를 어기면 바로 압류할 수 있나요?
할 수 없습니다. 강제집행에는 집행권원이 필요하므로 지급명령이나 소송으로 그 문서를 먼저 만들어야 합니다.
지급명령은 어떤 경우에 쓸 수 있나요?
민사소송법 제462조는 금전이나 대체물, 유가증권의 일정한 수량의 지급을 목적으로 하는 청구를 대상으로 하고, 공시송달 외의 방법으로 송달할 수 있는 경우로 한정합니다.
상대가 이의를 하면 어떻게 되나요?
통상의 소송 절차로 넘어갑니다. 이의가 없거나 취하되거나 각하되면 지급명령은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을 갖습니다.
3,000만 원 기준은 어느 법에 있나요?
소액사건심판법이 범위를 대법원규칙에 넘겨 두었고, 금액은 소액사건심판규칙 제1조의2에 있습니다. 법률에 적힌 숫자가 아닙니다.
각서를 지키지 않으면 형사처벌을 받나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처벌이 따르지는 않습니다. 각서 위반은 민사의 영역에서 다루어집니다.
상대의 주소를 모르면 어떻게 하나요?
지급명령은 공시송달을 배제하므로 송달이 되지 않으면 절차가 진행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각서를 받을 때 인적사항을 적어 두는 것이 실질적인 대비가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