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서에 법적 구속력이 있나요
각서 마스터·10분·
구속력은 있습니다. 그러나 집행력은 없습니다. 서명한 각서는 적힌 대로 지킬 의무를 만들지만, 그 종이만 들고 상대의 재산에 손을 댈 수는 없습니다. 재판이나 지급명령을 거쳐 집행권원을 따로 만들어야 합니다.
서명·날인·무인이 인정되면 민사소송법 제358조에 따라 문서 전체의 진정성립이 추정됩니다 · 강제집행은 민사집행법 제24조와 제28조 제1항이 요구하는 집행권원과 집행문이 있어야 시작됩니다
각서 한 장으로는 되지 않는 일
- 상대방 통장을 곧바로 압류하기
- 부동산에 바로 경매를 넣기
- 재판 없이 급여를 가져오기
- 약속을 어겼다는 이유로 형사 고소하기
- 적어 둔 금액을 다툼 없이 확정하기
각서 한 장이 실제로 해내는 일
- 약속의 존재와 내용을 남기기
- 누가 무엇을 언제까지 하기로 했는지 특정하기
- 서명이 인정되면 진정성립의 추정을 받기
- 다툼이 생겼을 때 상대가 뒤집을 부담을 지게 하기
- 재판이나 지급명령에서 핵심 증거가 되기
각서라는 이름은 법이 붙인 것이 아닙니다
효력을 만드는 것은 표지에 적힌 낱말이 아니라 그 아래에 적힌 약속입니다.
각서에 힘이 있는지를 묻기 전에 먼저 정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민법이 정하고 있는 것은 계약과 의사표시와 법률행위이고, 그것을 적어 둔 종이의 이름을 정한 조항은 민법에 없습니다. 각서도 확인서도 지불각서도 이행각서도 민법이 정한 문서 유형이 아니라 실무에서 굳어진 부름말입니다.
그래서 표지를 각서라고 붙였는지 확인서라고 붙였는지에 따라 효력이 갈리지 않습니다. 갈리는 것은 그 안에 어떤 의사표시가 담겼는가입니다. 아무 약속도 담기지 않은 종이에 각서라고 크게 적어도 지킬 의무는 생기지 않고, 반대로 제목 없이 넉 줄만 적힌 종이라도 약속이 특정되어 있으면 그 약속은 살아 있습니다.
이 출발점을 놓치면 뒤의 설명이 전부 어긋납니다. 검색을 하면 문서 이름별로 효력의 순위를 매겨 놓은 글을 자주 만나게 되는데, 법으로 갈린 개념이 아닌 것을 갈라 놓은 것이라 근거로 삼을 수 없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각서에 구속력이 있느냐는 물음은 사실 각서라는 문서에 관한 물음이 아니라, 거기 적힌 약속이 법이 지켜 주는 약속이냐는 물음입니다. 그리고 그 답은 대체로 그렇다입니다. 다음 절부터 그 근거를 봅니다.
다만 근거가 되는 조문은 민법이 아니라 민사소송법 쪽에 있습니다. 약속이 유효하다는 것과 그 약속이 있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이고, 각서를 받아 두는 실익은 뒤쪽에 있기 때문입니다.
각서는 처분문서로 다루어집니다
증명하려는 약속이 그 종이 위에서 이루어졌다면 그 문서는 처분문서입니다.
소송에서 문서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뉩니다. 하나는 증명하려는 법률행위가 그 문서 자체에 의하여 이루어진 문서이고, 다른 하나는 작성자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적어 둔 문서입니다. 앞의 것을 처분문서, 뒤의 것을 보고문서라고 부릅니다.
계약서와 차용증과 유언서, 어음과 수표가 앞쪽 갈래에 듭니다. 진단서와 영수증과 장부는 뒤쪽 갈래입니다. 사법상의 의사표시를 담고 있는 각서는 앞쪽, 곧 처분문서로 다루어집니다.
이 구분이 중요한 까닭은 문서를 대하는 법원의 태도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보고문서는 적힌 내용이 사실과 다를 수 있다는 전제에서 다른 증거와 견주어 봅니다. 처분문서는 그 문서에서 약속이 이루어진 것이므로, 문서가 진정하게 만들어졌다는 점만 인정되면 적힌 내용을 쉽게 물리치지 않습니다.
문서가 진정하게 만들어졌다는 점은 어떻게 인정될까요. 조문이 두 줄로 답을 정해 두었습니다.
| 갈래 | 무엇을 적은 문서인가 | 예 | 적힌 내용을 대하는 방식 |
|---|---|---|---|
| 처분문서 | 그 문서로 약속이 이루어진 문서 | 각서 · 계약서 · 차용증 · 유언서 · 어음 | 진정성립이 인정되면 함부로 배척하지 않는다 |
| 보고문서 |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적어 둔 문서 | 진단서 · 영수증 · 장부 | 다른 증거와 견주어 사실 여부를 따진다 |
제357조(사문서의 진정의 증명) 사문서는 그것이 진정한 것임을 증명하여야 한다. 제358조(사문서의 진정의 추정) 사문서는 본인 또는 대리인의 서명이나 날인 또는 무인(拇印)이 있는 때에는 진정한 것으로 추정한다.
민사소송법 제357조 · 제358조
제358조가 요구하는 것은 서명이나 날인 또는 무인 가운데 하나입니다. 셋을 다 갖추라는 조문이 아니고, 도장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조문도 아닙니다. 손으로 이름을 적었으면 그것으로 이 조문의 요건은 채워집니다.
대법원 2021. 9. 30. 선고 2019다245457 판결은 이 흐름을 한 줄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작성명의인이 서명이나 날인 또는 무인을 하였음이 인정되면 문서 전체의 진정성립이 추정되고, 처분문서는 진정성립이 인정되면 기재 내용을 부정할 만한 분명하고도 수긍할 수 있는 반증이 없는 한 적힌 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속력이 있다는 말의 실제 내용
서명한 쪽이 아니라 뒤집으려는 쪽이 증명을 떠맡습니다.
앞의 두 조문과 판례를 겹쳐 놓으면 각서의 무게가 드러납니다. 서명이 내 것이라는 점이 인정되는 순간 문서 전체가 진정한 것으로 추정되고, 처분문서이므로 그 안의 약속이 그대로 인정됩니다. 남는 것은 그 추정을 깨뜨릴 반증을 내놓는 일인데, 그 일은 각서를 써 준 쪽의 몫이 됩니다.
구속력이라는 말이 실무에서 뜻하는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 상대가 약속을 증명해야 하는 자리에서, 각서 한 장은 그 증명을 끝내 놓고 시작하게 만듭니다. 각서를 써 준 사람은 이제 사정을 설명하는 쪽이 아니라 적힌 것을 뒤집는 쪽에 서게 됩니다.
그래서 각서가 무서운 까닭은 흔히 생각하듯 집행이 빨라서가 아닙니다. 다툼이 시작되는 자리가 이미 한참 뒤로 밀려 있어서입니다. 아래 세 줄이 그 이동을 요약한 것입니다.
- 문서 전체 추정서명이 인정되면
- 기재대로 인정처분문서이므로
- 분명한 반증 필요뒤집으려면
여기서 한 가지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조문이 쓴 낱말은 추정한다이지 확정한다가 아닙니다. 뒤집을 길이 조문 안에 열려 있고, 그 길이 어디로 나 있는지는 이 글의 마지막 절에서 짚습니다.
그런데 집행력은 따로 있습니다
약속을 지키게 만드는 힘과 재산에 손을 대는 힘은 같은 힘이 아닙니다.
여기서 이 클러스터의 가장 큰 오해가 나옵니다. 각서를 받아 두었으니 상대가 약속을 어기면 곧바로 통장을 묶으면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강제집행은 아무 서류로나 시작할 수 없습니다. 민사집행법이 무엇을 근거로 집행하는지, 그리고 그 근거에 무엇이 덧붙어야 하는지를 두 조문으로 못 박아 두었습니다.
아래 두 줄을 읽고 나면 각서가 어느 자리에도 들어가지 못한다는 점이 분명해집니다. 각서는 확정된 종국판결도 아니고 가집행 선고가 붙은 판결도 아니며, 집행문이 부여될 수 있는 판결정본도 아닙니다. 사문서일 뿐입니다.
제24조(강제집행과 종국판결) 강제집행은 확정된 종국판결이나 가집행의 선고가 있는 판결에 기초하여 한다. 제28조(집행력 있는 정본) ① 강제집행은 집행문이 있는 판결정본이 있어야 할 수 있다.
민사집행법 제24조 · 제28조 제1항
반대입니다. 집행권원을 만드는 재판이나 지급명령에서 각서가 핵심 증거가 됩니다. 각서가 없으면 그 절차부터 어려워집니다.
그 문언은 각서 본문이 아니라 공증인이 작성하는 공정증서에 적혀야 뜻이 있습니다. 사문서에 같은 문장을 적어 넣는 것만으로는 집행권원이 되지 않습니다.
공증인이 작성한 공정증서로서 일정한 금액의 지급 등을 목적으로 하고 강제집행 인낙 문언이 적혀 있으면 집행권원이 됩니다. 그 요건은 각서를 공증하면 무엇이 달라지나에서 조문과 함께 다룹니다.
요약하면 각서는 구속력의 문서이고 집행력의 문서가 아닙니다. 이 둘을 한 낱말로 뭉개 놓은 설명을 만나면 그 글은 걸러 읽는 편이 좋습니다.
추정은 확정이 아닙니다
적힌 대로 인정된다는 원칙에는 되돌리는 길이 조문 안에 함께 있습니다.
앞에서 본 추정은 강한 출발점이지만 결승선은 아닙니다. 서명이 내 의사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면 추정의 전제부터 무너지고, 서명은 내가 했더라도 그 의사표시에 흠이 있었다면 다른 조문이 개입합니다.
다만 그 길들은 각서를 받은 쪽이 아니라 써 준 쪽이 스스로 걸어야 하는 길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각서는 적힌 대로 남습니다. 이 점이 특히 강요를 받고 쓴 경우에 중요합니다. 그런 각서도 저절로 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각서를 써 준 뒤 이상하다고 느꼈다면 확인해야 할 것은 두 가지로 좁혀집니다. 하나는 내 의사표시에 흠이 있었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그 흠을 다투는 데 시간 제한이 붙어 있는가입니다. 아래 목록이 그 확인을 순서대로 옮긴 것입니다.
각서를 써 준 뒤 확인할 것
넷째 줄과 다섯째 줄은 서로 다른 조문이 맡습니다. 급한 사정을 이용당한 경우와 협박을 당한 경우는 근거도 결과도 다르고, 약속의 내용 자체가 문제인 경우는 또 다른 조문입니다. 각각을 강요로 쓴 각서의 효력과 무효가 되는 각서 조항에서 나누어 다룹니다.
마지막 줄은 미루면 손해가 나는 항목입니다. 흠이 있는 의사표시를 다투는 데에는 기간이 정해져 있어 그냥 두면 다툴 수 있는 자리가 닫힙니다.
자주 묻는 질문
각서를 쓰면 법적으로 지켜야 하나요?
적힌 약속이 유효한 것이라면 지킬 의무가 생깁니다. 각서는 처분문서로 다루어져, 서명이 인정되면 문서 전체의 진정성립이 추정되고 적힌 내용이 그대로 인정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각서만 있으면 바로 압류할 수 있나요?
할 수 없습니다. 강제집행에는 집행권원과 집행문이 필요한데 각서는 사문서일 뿐이어서 그 어느 것도 아닙니다. 판결이나 지급명령으로 집행권원을 먼저 만들어야 합니다.
도장을 안 찍고 이름만 적었는데 효력이 있나요?
민사소송법 제358조는 서명이나 날인 또는 무인을 나란히 놓고 그중 하나가 있으면 된다고 정합니다. 도장이 없어도 서명이 있으면 추정의 요건은 채워집니다.
각서라고 안 쓰고 확인서라고 적었으면 약한 문서인가요?
제목이 효력을 정하지 않습니다. 민법이 정한 문서 유형이 아니라 실무의 부름말이므로, 갈리는 것은 표지의 낱말이 아니라 안에 담긴 약속의 내용입니다.
처분문서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요?
증명하려는 법률행위가 그 문서 자체에 의하여 이루어진 문서를 가리킵니다. 각서와 계약서가 여기에 들고, 진단서나 영수증 같은 보고문서와는 다루는 방식이 다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