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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둔 통장
내 친구 영주는 심장병 환자였다. 어린시절 영주는 달리거나 몸을 많이 움직이는 놀이에는 늘 빠졌고, 학교에서도 체육 시간이면 늘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아이들이 운동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영주는 스물 둘인가 셋인가 하는 나이에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이었다.

영주는 교제하는 남자들로부터 번번히 퇴짜를 맞았다. 결혼이야기가 나올 때쯤이면 영주는 수술한 이야기를 했고, 그러면 남자쪽에서 몸을 사리며 멀어지곤 했다. 그런 영주가 시집을 갔다. 형부가 반 강제로 소개 시켜 준 어떤 남자를 몇 번 만난 뒤, 얼마 후 그녀는 결혼식을 올렸다. 몇 달 후 집들이 초대를 받아 친구들과 함께 영주의 아파트를 찾았다.

˝너 몸 약하다고 구박은 없었어? 너한테 잘해주니?˝

영주는 슬며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결혼하기 전에 영주는 지금 남편이 된 남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자기는 심장병 환자였으며 수술해서 다 나았지만 가슴에 굉장히 큰 흉터가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결혼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 해 보라고. 그러나 남자는 괜찮다고, 사랑하니까 그런 건 상관없다고 했다. 결혼 날짜를 잡고 혼수를 장만했다.

하지만 영주는 가난했다. 하루는 그 남자가 통장을 하나 건네 주며 전세 얻을 돈을 뺀 나머지라며 혼수 준비에 보태라고 했다. 고맙고 또 고마웠다. 그런데 며칠 후 영주는 우연히 그 남자에게 또 다른 통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기에는 지난번에 건네 준 통장에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이 들어 있었다. 영주는 조금 섭섭했다. 며칠 후 그에게 물었다.

˝나 몰래 딴 주머니 차려고 그래요?˝
그랬더니 그 남자는 쑥스러워 하며 말했다.

˝그게 말이야. 영주씨 나중에 혹시, 혹시 말이야. 병이 재발하면 병원비 쓰려고 비상금으로 마련해 둔거야.˝

그날 영주는 엉엉 울었고, 그날 이후로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여자가 되어 지금은 연년생인 두 아들의 엄마가 되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88가지 행복이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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