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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장 |  | |
| 죽음으로 거듭나는 영혼, 그리고 사진
죽은 지 얼마 안된 시체가 고원에 버려진다. 죽은 생물만 먹는다는 영험한 새 ‘벌쳐’(Vulture, 티베트 지방에 서식하는 독수리)떼가 날아들어 시체를 뜯어먹는다. 채 썩기도 전에 살점이 뜯겨나간 시체는 그러나, 의외로 깨끗해 보인다. 고원을 뒹구는 해골바가지들이 마치 막 할례의식을 치른 아이의 얼굴 같다. 동공이 어둡게 열리고, 앙상하게 드러난 뼈와 뼈 사이로 영혼이 거닐던 육체의 빈 터가 하늘을 향해 열린다.
휘리릭∼. 새카만 바탕의 사진 위로 문득 바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배를 채운 독수리가 흘린 깃털이 어딘가 떨어져있을지도 모른다. 들여다볼수록 시체 썩는 악취가 진동하지만, 끔찍함과 숭고함이 겹치는 그 냄새는 이미 이 세상의 냄새가 아니다. 삶과 죽음의 윤회. 그것들을 담아낸 어둡지만, 밝은 사진들. 윤생을 믿는다면 죽음이란 삶의 원천에 다름아니라는 듯, 때절은 여자아이의 표정이 사뭇 영험해 보인다.
「천장」은 티베트인들의 정신세계가 담긴 죽음의 의식을 사진으로 담은 책이다. 고깃덩이가 된 시체를 새들에게 먹여 영혼을 하늘로 실어보낸다는 장례의식은 대개 ‘조장(鳥葬)’이란 풍습으로 알려졌다. ‘천장(天葬)’은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티베트인들은‘영혼이 떠난 시신이란 앞날의 윤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쓸모없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천장’은 영혼이 떠난 후에도 여전히 육신에 붙어있는 영혼의 흔적들을 처리하는 의식이다. 본래 인도에서 시작된 이 의식이 뿌리내린 지방이 티베트다. 사진작가 박하선은 1997년 쓰촨성 동북쪽에 있는 티베트의 라롱(La Rong) 마을에서 40일간 체류하며 독수리들에게 살점이 뜯기는 시체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카메라에 담았다. 작가는 사진촬영을 거부하는 현지인들에게 얻어맞기도 하고 카메라를 망가뜨리면서까지 영혼을 하늘로 돌려보내는 과정을 필사적으로 좇았다. 흑백으로 현상된 사진들에선 현장의 악취와 사자의 넋을 달래는 주술이 물씬 풍겨난다.
천장의 순서는 이렇다. 몇 구의 시체가 사원 앞에 놓이고 여러 스님들이 둘러앉아 염불을 왼다. 이 의식을 티베트에선 ‘포와의식(Powah ceremony)이라 부른다. 시체가 들어있는 관의 뚜껑은 열려있고, 시체를 담은 자루의 정수리 쪽은 약간 찢어져 있다. 티베트 사람들은 그 찢어진 틈으로 시체의 영혼이 빠져나간다고 믿는다. 사원 앞에서의 예식을 마친 시체는 천장터로 향한다. 때로는 ‘포와’를 거치지 않고 바로 천장터로 향하기도 한다. 굶주린 독수리들이 고원 한쪽에 도사리고 있는 이곳에선 ‘추판(Chuphan)’이란 이름의 천장사가 시체의 뼈들을 망치로 잘게 쪼고 살을 다져 독수리들이 먹기 편하게 발라준다. 맨손으로 시체의 피부를 벗겨 독수리들에게 건네는 그의 몸엔 오물과 악취가 진동한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삶과 죽음의 윤회에서 한발 비껴 선 듯 무심하기 그지없다. 그 성스러운 도륙의 현장을 여과없이 찍어낸 작가는 그가 처음엔 저승사자 같았다가 나중엔 성자처럼 보였다고 고백한다.
이 책엔 글이 거의 없다. 배경으로 깔린 흑백의 여백은 마치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나누듯 선연하게 분할돼 있다. 사진 속에 잡힌 산 사람들의 얼굴이나 독수리에게 살점을 완전히 뜯긴 시체들의 모습이 그래서 한결같아 보인다. 인간의 언어 대신 이곳엔 광활한 침묵과 새들의 거친 날갯짓 소리, 그리고 죽은 영혼이 창공을 가르는 깊은 바람소리만 가득하다. 인간의 영혼이 빈 하늘을 향하고 남은 뼈들이 흙이 되는 과정에 무슨 말이 필요하냐는 듯, 이 책은 오래오래 숨죽인 채 기나긴 명상에 잠기게 한다. 그러니 이 책을 다 읽었다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이다. 죽음이 삶을 부르고 삶이 죽음 속에서 다시 사는 이 책의 여백은 정말 아무것도 읽을 게 없다. 그런 숭고한 침묵이 이 책을 더욱 아름답게 한다. (강정 igguas@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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