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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화당 인생 |  | |
| 단절이 걸어오는 대화, 그 행복한 사각형
만화란 근본적으로 불온한 장르다. 서사를 근간으로 펼쳐나가긴 하되, 소설임을 거부하고 회화의 위력을 발휘하되 거기에 매몰되지 않는다. 더구나 그 총합은 언제나 예술의 메인스트림이 주둔하는 곳과는 적대적 거리를 둔 채 자신만의 길을 걸어왔다. 문학과 미술, 그들과의 교집합은 넓었지만 조화보다는 부분적인 교감만을 택했다.
시인이자 건축가인 함성호가 그런 만화들에 대해 헌사를 바쳤다. 어린 날 아버지의 심부름으로부터 시작된 만화 보기가 자신의 인생과 문학과 직업에 얼마나 거대한 영향을 끼쳤는가 하는 것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고백했다.
책에 실린 만화들은 하나같이 명작이라고 할만한 것들이다. [마스터 키튼]. [묵공],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스노우캣] 등 온-오프라인, 디지털/아날로그를 망라한 십여개의 최고작들이 함성호 특유의 글솜씨와 맞물려 유려하게 빛나고 있다. 이야기 자체에만 시선을 고정하지 않고 그림체와 배경, 상징하는 바와 고민 등을 알차게 담아낸 저자의 내공이 눈에 띤다. 만화비평서들이 흔히 놓치는 서구만화와 디지털 만화에도 일정한 배려를 하고 있으며 내러티브의 함정에 속지 않고 냉정한 거리두기를 통해 의미가 이루어지는 시점을 포착한 것도 놀랄만하다. 특히 저자 자신의 건축가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필체의 연속성이나 구도 등을 조감해 낸 부분들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만화란 영화와 달라서 불연속이 연속을 만드는 장르다. 말풍선과 컷의 오밀조밀함뿐만 아니라 전 컷과 다음 컷 사이의 ´순간´이 이야기를 자유자재로 변형시킨다. 사각형 모양의 컷에 집중해 전반을 읽어내는 것도 재미있지만 컷과 컷 사이의 단절이 만드는 대화에 응답하게 되면 만화 읽기는 문학과 미술 텍스트 읽기의 수준을 넘어설 수 있게 된다. 저자 함성호는 특히 그 ´단절 읽기´에 뛰어난 비평가다. 편견없이 폭넓게 만화와 ´살아온´ 저자는 그 단절을 확대하여 그 안에 숨겨진 역사와 자아, 현실과 가상의 복합적인 교전을 눈 앞에 펼쳐준다.
이 책은 단순한 명작 만화비평서로서도 훌륭하지만 그 이상, 20세기 만화의 현실을 제대로 파헤친 문화비평서로 삼기에도 모자람이 없다. 단,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다면 앞쪽에 위치한 몇 개의 글들이 중반 이후의 그것들에 비해 다소간의 질적 하락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만화가 ´제9의 예술´이라 불리는 그래픽노블이 될 것인가 아니면 어두퀴퀴한 골방에 갇혀 담배연기에 찌들어 ´마이너의 주류´가 될 것인지는 아직 모른다. 근래 만화에 바쳐진 수많은 찬사들은 사실 만화보다는 그에 기반한 새로운 산업인 ´애니메이션´에 대한 아부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2차 대전 후 만화가 이루어 낸 엄청난 발전은 폭력과 섹스에의 지나친 경사에도 불구하고 결코 함부로 폄하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문화적 여건과 사회적 인식의 부족으로 고사 위기에 처한 한국만화에도 그 흐름은 크게 비껴가지 않았다. 만화를 바라보는 함성호의 시선은 너무나 따뜻해서 거부감이 들 정도이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아마 대부분은 그 따뜻함에 부드럽게 공감하게 될 것 같다.
만화라는 행복한 사각형의 집합을 만들어 내는 것은 작가, 독자, 그리고 비평가다. 나는 그러한 고전적 삼위일체의 가장 행복한 일치를 이 책에서 본 듯 하다. 모르긴 몰라도, 당신도 그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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