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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루, 색의 역사 |  | |
| 블루는 악마와 미개인의 색이었다
「블루, 색의 역사」는 고대 로마에서부터 20세기까지의 파란색의 역사를, 아니 더 엄밀하게는 파란색을 통해 서구의 문명사를 훑어보는 책이다. 일반적으로 색에 관한 이야기라면, 빨강은 흥분을, 파랑을 우수를, 보라는 신비감을 불러일으킨다는 등의 심리학적 접근이거나, 빛의 스펙트럼에 따라 색을 분류하고 그들 간의 관계를 분석하는 색채 과학적 접근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저자 미셸 파스투로에게 있어 색은 철저히 ´사회적 산물´이다. 색을 만들고, 정의를 내리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 모두는 사회가 하는 일이지 예술가나 심리학자의 몫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블루´인가? 그것은 인류의 역사에 있어 부침을 거듭한 파란색의 운명 때문이다. 사실 고대인들에게 파란색은 천대 받는 미개인의 색이었다. 그러나 지금 파란색은 현대인이 가장 사랑하는 색 중에 하나다. 수세기가 흐르면서 가치가 완전히 뒤바뀐 파란색의 이러한 반전에 저자는 역점을 둔다. 색의 진정한 역사적 문제를 제기하는 데 파란색이 낙점된 것이다.
˝살이 엄청나게 찐 거인의 몸집에다 짧고 곱슬곱슬한 붉은 색 머리, 그리고 파란색 눈동자에 마치 해골같이 창백한 얼굴을 한 사람.˝ (p.13) 로마의 희극작가 테렌티우스가 그의 희극〈헤키라〉에서 우스꽝스러운 인물을 묘사한 부분이다.
당시 로마인들이 혐오하던 외모에는 파란색 눈이 빠지지 않았으며, 모든 악마는 파란색으로 그려졌고, 파란색을 지칭하는 정확한 말도 없었다. 심지어 무지개에서도 파란색을 배제했다고 하니, 파란색이 얼마나 괄시 받는 색이었는지는 짐작하고도 남겠다. 당시 사회를 지배하는 색은 오직 빨강, 검정, 하얀색이 전부였으며, 색의 모든 체계와 사회적 규칙은 이 3색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천대와 무관심 속에 있던 파란색의 운명이 일대의 전환기를 맞게 되는 것은 중세의 성모마리아가 파란색으로 옷을 바꿔 입으면서 부터다. 종교 권력이 하늘을 찌르던 중세에 성모마리아가 입은 옷의 색깔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먼저 왕들이 청색 옷을 입기 시작했고, 그 후에는 왕자와 제후들이, 나중에는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그것을 모방했다. 청색 염색업자들은 붉은색 염색업자들을 제치고 당시 염색업계의 선두에 섰으며, 사회의 모든 질서가 파란색 위주로 서서히 재편되고 있었다.
이후 괴테의 베르테르가 하늘색 연미복을 입고 권총자살을 함으로써 파란색은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색이 되었고, 프랑스 혁명을 거치면서는 진보의 색으로, 자유주의를 맞이하면서는 중립과 합의의 색으로 변화를 거듭했다. 지금은 반항과 자유의 상징인 청바지의 푸른색도 당시에는 신교도들의 금욕과 절제에 가장 잘 부합한 색이었다고 하니, 색의 역사는 곧 사회의 역사임이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청바지 브랜드 ´리바이스´를 필두로 파란색이 19세기 자본가들의 가장 인기 있는 색으로 군림하면서 반전과 변화를 거듭한 파란색의 역사는 끝을 맺는다. 저마다 다른 모양과 농도로 역사의 구비를 물들인 ´블루´의 이야기 속에는 ´색의 사회성´이라는 일관된 주제가 향기로운 한 잔의 차 처럼 잘 우러나 있다. 이 책은 ´블루´의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동시에 색 자체의 역사이며, 색을 매개로 한 문화사이다. 실제로 염색, 의상, 종교, 예술 등 그 자료적 근거가 너무나 방대해 서구인의 인식체계와 그들의 문화사 전체를 훑어본 느낌이다.
축구 열기가 뜨겁다. 온통 함성과 붉은 티셔츠 투성이다. 경기장을 가득 매운 ´붉은 악마´를 파스투로가 보았다면, 분명 ´레드, 색의 역사´를 쓰고 싶었을 것이다. 레드 컴플렉스로 점철되어 늘 거부감과 감시의 대상이었던 붉은 색이 한국을 대표하는 응원단의 유니폼이라니, 이처럼 통쾌한 색의 승리가 또 있을까? 사회는 변하고, 색은 그것을 정직하게 비춰낸다는 것. ´붉은 악마´ 를 통해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된다. (김연정 joy@libro. 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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