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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조성과 고통 |  | |
| 그들의 싸움을 증언한다
이 책은 치명적인 질병으로 고통받았고, 심지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에 질병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집요하게 탐구한다. 인류의 정신사를 써온 거장들은 이처럼 육체를 갉아먹고 정신을 희롱하는 무서운 질병의 고통과 싸우며 가망 없는 자신들의 싸움을 캔버스와 오선지, 공책에 기록했고 이 책은 하나의 ´증언´인 셈이다.
프랑스의 오베르 쉬르 우아즈라는 작은 마을에는 죽을 때가지 발작의 고통과 두려움으로 몸을 떨었던 화가 반 고흐가 잠들어 있다. 그는 이 마을에서 생애 마지막 70일을 살며 마치 쫓기듯이, 숙제를 해치우듯이 맹렬하게 작업을 했고(관광안내소에서 상영하는 영화의 나래이터는 그가 매일 그리고, 그리고 또 그렸다고 말한다.) 변함없이 동생과 동료들에게 그 유명한 편지를 썼다.
<새들은 털갈이를 한다. 솜털이 떨어져 나가고 억센 털이 돋아나는 거야. 사람에게도 견디기 어려운 불행의 순간은 있는 법이야. 털갈이를 마다하는 사람도 있지. 그러나 털갈이를 겪고 나면 새로운 시작이 있다고 생각해. 모든 고통을 혼자서 겪어내는 것도 배워야지.>
동생 테오에게 보낸 이 짧은 편지는 자신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불행에 직면한 예술가의 고요한 결의와 겸손한 태도, 그리고 (질병을 비롯한) 우리 삶의 고난을 바라보는 견고한 시선을 담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병에 걸린다. 삶 곁에 죽음이, 죽음 곁에 삶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듯이 질병 역시 인간 삶의 한 계기일 뿐이다. 생래적으로 고통을 느낄 수 없도록 태어나는 사람은 서른이 넘기 전에 죽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고통이 가르치는 경각심, 위험을 회피하는 감각, 육체와 정신의 연단이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치명적인 질병으로 고통받았고, 심지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에 질병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집요하게 탐구한다. 질병이라는 무쇠팔이 칼로, 베토벤, 반 고흐, 밀턴, 키츠, 브론테 자매의 등을 후려친다.
칼로와 고흐는 자살해버렸고, 횔덜린은 미쳤으며, 클레와 키츠 브론테 자매는 저벅저벅 발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죽음의 신을 빤히 바라보며 슬프게 하소연한다.
인류의 정신사를 써온 거장들은 이처럼 육체를 갉아먹고 정신을 희롱하는 무서운 질병의 고통과 싸우며 가망 없는 자신들의 싸움을 캔버스와 오선지, 공책에 기록했고 이 책은 하나의 ´증언´인 셈이다.
의사이자 예술 애호가인 저자는 전문적인 지식과 폭넓은 교양으로 질병과 예술가, 질병과 작품 간의 관계를 추적하지만 어떤 결론을 내리고 있지는 않다. 예술 창작에 반드시 질병과 같은 시련이 필요한 것은 아니며 건강한 육체와 정신으로 걸작을 남긴 예술가도 많다. 하지만 질병으로 인해 그들은 인간의 어두운 심연을 들여다보았고 고통 속에서 동시대 인간의 보편적인 고난과 슬픔을 껴안아 자신들의 작품 속에 녹여내었다. 또한 정신을 더욱 정화하고 단련시켰으며 억압된 창조성을 해방시켜 영원히 남는 노래를 우리에게 물려주었다.
밝고 영광스러우며 굴곡 없는 화사함은 삶의 반쪽 얼굴일 뿐이다. 고통과 질병, 죽음은 다른쪽 얼굴이다. 이 둘을 함께 껴안고 고투했던 거장들의 맨얼굴을 우리는 본다. 영웅과 천재, 신적인 정신이라는 갑주를 벗겨내고 나면 창조해야 하는 숙명을 타고 태어났기에 더욱 불행한 ´인간의 얼굴´이 보인다. 어찌됐건 예술은 이렇게 태어났고,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병을 비롯한 갖가지 고통이 크게 보아 우리 삶을 더 풍요롭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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