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joungul.co.kr 에서
제공하는 좋은글 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
|
|
|  | 일그러진 근대 |  | |
| 일그러졌던 한-일-영의 삼각관계
흔히 섬나라 사람들은 ‘콧대’가 세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예가 바로 일본과 영국이다. 이건 역사적으로도 증명된다.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표방하면서 세계를 호령했던 시절, 그들은 자신들만이 문명인이고 식민지를 건설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국호에 ‘The Great’라는 단어를 집어넣을 정도로 그들의 오만은 극에 달했다.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했던 일본에게 이런 영국은 흠모의 대상이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제2의 영국’ ‘동아시아의 영국’으로 불렀다. 영국으로부터 근대화와 ‘콧대’를 배운 일본은 군국주의, 제국주의로 나간다.
박지향 교수의 「일그러진 근대」는 100년 전 한국, 일본, 영국의 삼각관계를 이른바 ‘비교사’적 관점에서 살펴본 책이다. 19세기 영국으로 대표되는 서구 국가들은 본격적인 식민지 건설을 시작하면서 그 ‘명분’으로 근대화를 전면에 내세웠다. 데카르트의 이원론과 계몽주의, 서구의 오만함이 결합된 이것은, 쉽게 말해 “근대적 서양이 전근대적 비서양을 지배해야 한다”로 요약된다. 국가 주도의 근대화를 추구하던 일본에게 이 이론은 무비판적으로 수용되어 버린다. 그 유명한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입구(脫亞入歐)론은 이것의 일환이었다. 후쿠자와는 일본의 엘리트들에게 중국과 조선의 내정에 간섭하고, 그들을 문명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과 일본의 이런 밀월관계는 일본이 러-일 전쟁 승리 후 그들의 야심을 노골적으로 표시할 때까지 계속된다. 영국에게 일본은 ‘자신들을 따라올 수는 없지만 근대화를 충실히 수행하는 모범생 국가’였던 것이다.
반면 영국에게 한국(조선)은 한심하고 야만적인 나라였다. 저자는 한국을 방문했던 두 사람, 정치인 커즌과 여행가 비숍의 기록을 주요 텍스트로 해서 당시 영국인들이 한국을 어떻게 평가했는지를 보여준다. ‘영원히 클 수 없는 어린아이의 나라’ ‘문명퇴화의 전형적 본보기’가 당시 그들이 우리의 상황을 표현한 말들이다. 특히 커즌과 비숍은 한국 정부 고위관리들의 부패와 실정(失政)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차라리 일본이 식민통치를 해서라도 조선을 근대화시켜야 한다고 결론을 내릴 정도였다. 실제 ‘영일동맹’으로 동아시아의 경찰권을 넘겨받은 일본은 조선과 중국, 대만을 지배할 야욕을 꿈꾸게 된다. ‘콧대’끼리 통했던 것이다.
물론 일본과 영국의 밀월관계는 영원히 지속되지 못했다. 탈아입구론이 탈구입아론으로 바뀌면서 일본은 영국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독일을 선택한다. 그것의 정점이 바로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이처럼 19세기 말 20세기 초 한국, 일본, 영국의 관계는 일그러졌다. 일본을 아끼던 영국은 일본을 무시하다가 큰 코를 다치고, 한국은 영국의 묵인아래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는다. 일본은 파시즘과 군국주의로 무장해 독일, 이탈리아와 손잡고 세계대전을 일으켜 전범국가가 된다.
박지향 교수는 우리의 일그러진 근대를 남의 탓으로만 돌리지는 말자고 말한다. 지정학적 요인이니, 냉전체제니 하는 핑계를 대며 남의 탓만 한다면 진정 역사로부터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이나 일본이 우리를 본 시각이 왜곡되고 편견에 가득 차 있었다고 하더라도 일정부분 우리에게도 망국의 책임이 있는 것이다.
한국은 세계가 놀랄 만큼 ‘압축적으로’ 근대화를 이룬 나라이지만 여전히 전근대, 근대, 탈근대가 혼재되어 충돌하고 있다. 역사학자로서 저자는 이런 혼란의 뿌리가 100년 전 서양과 서양을 대리한 일본의 충격에 의해 형성된 우리의 근대성에 있다고 결론짓는다. 일본은 ‘유럽식 근대화’에서 ‘미국식 근대화’로의 정체성 혼란을 아직도 겪고 있다. 이건 비단 일본만의 혼란은 아니지 싶다. 우리도 여전히 ‘근대성’의 혼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혼란은 언젠가는 극복해야 할 ‘진통’일 것이다. (박수호 psh4039@libro.co.kr/리브로)
by www.libro.co.kr |
|
|
|
|
